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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May 19. 2024

뉴스가 싫어진 N년차 기자

가판대에서 신문들을 볼 때마다 타사 기자들에게 동병상련 마음이 든다. Paul 제공

난 처음부터 기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사람보다 좀 더 자신있게 할 수 있는 재능이 말하고 글쓰는 것이었고 이를 적용할 수 있는 직업 가운데 기자가 눈에 들어왔었다. 그렇다고 별다른 고민이나 대책없이 기자가 됐던 건 아니다. 글을 쓰는 직업 중 세상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게 기자라는 결론을 얻어 입직하게 됐다. 영향력의 크기는 가늠할 수 없지만 세상이 바뀌는 데에 적잖은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N년차로 접어든 요즘 이 일을 하며 뿌듯한 순간들도 많았다. 난 내 할 일을 한 것이지만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겐 마치 대단한 손길로 기사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월감에 취하진 않았다. 앞서 말했듯 이런 역할을 하기 위해 기자가 된 것이라 생각해서다. 물론 매번 이런 감사함을 느낄 순 없었다. 어떤 분야든 그 이면을 들춰봐야하니 좋은 것보다 나쁜 걸 더 많이 볼 수 밖에 없지 않나.


그게 문제다. 알고 싶지 않아도 되는 걸 굳이 내 머릿속에 넣어야하니 처음엔 참 괴로웠다. 모르는 게 약이란 말이 있지 않나. 어떤 일에 대해 세상에 아직 드러나지 않은 세세한 부분까지 알게 되니 어떨 땐 허무함이 몰려오기도 했다. 그렇다고 어렵게 시작한 일을 쉽게 포기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참다 보니 N년차에 접어들었고 이같은 일들도 무뎌질대로 무뎌졌다.


그러다보니 모든 상황에 대해 무뎌진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운전을 하다가 경찰차와 소방차가 지나가면 "어떡해"보다 뉴스에 나올 큰 사건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어떤 순간들에 대해 발제가 될지 여부를 따져보게 되기도 한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전하는 직업이기에 내가 혹은 누군가 겪는 일들이 아직 발굴되지 않은 원석으로 보인단 말이다.


주말이나 공휴일에 푹 쉬면서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면 낫지 않을까 묻는다면 애석하게도 그럴 수 없다. 일단 평일 공휴일은 그냥 차가 덜 막히는 날일 뿐 "부득이한 일정이 있으면 쉬라"는 공지만 우리에게 있다. 주말도 마찬가지다. 내가 출입하고 있는 곳들에 이슈가 쉬는 날이라고 터지지 않는 건 아니니 매순간 눈을 부릅뜨고 살펴야 한다. 남들 쉴 때 일하고 남들 일할 땐 똑같이 일한단 뜻이다.


언젠가 가족들과 휴가를 갔을 때 TV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속보를 보며 '난 쉬니까 다행이다'는 생각을 한 바 있다. 그런데 이제는 휴대전화에 설치한 연합뉴스 앱을 삭제해버리고 싶을 만큼 뉴스에 신물이 났음을 깨닫는다. 주변사람들이 어떤 이슈에 대해 "나 뉴스 안 봐서 몰랐어"라고 말할 때 어떻게 모를 수 있지 싶었는데 딱 그 사람처럼 살 때가 다가온듯 하다. 지속가능성을 아무리 고민해 봐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뭐 그리 대단한 목적을 갖고 산다고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 하루하루 살아가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언론사에서 좁디 좁은 문을 뚫고 들어가야 할 기자를 하고 있으니 배가 불렀다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난 감사할 줄 모르는 것과 내게 맞지 않는 옷이란 사실을 안다는 건 다르다 생각한다. 일을 하는 직장인이 얼마나 즐거울 수 있겠냐만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하루를 퀘스트처럼 숨에 헐떡이며 보내고 있다면 어떻겠는가. 일단은 참아보라고 말하기엔 세상은 넓고 아직 인생에 절반도 보내지 않은 젊은이 아닌가.


사실 최근 이제 막 입사한 후배들이 회사를 떠날 때 왜 저런 선택을 했을까 의아해하기도 했다. 이직처를 마련해놓지 않고서 나간 후배도 있었는데 대책이 없는 걸까 감히 판단해보기도 했다. 그 이유를 다 알 순 없지만 많은 것 가운데 한가지 이유는 지금 내 마음과 같지 않을까 싶다. 난 그걸 아는데 N년이 걸렸고 후배는 딱 1년 전후가 걸린 것이고.


우리네 부모님이 나를 어떻게 키웠을까 곱씹어 본다. 출근하기 싫은 직장을 꾸역꾸역 다니신 건 당신의 삶보다 가족과 자식을 생각해서였겠지. 그 과정에서 찾을 수 있는 감사와 행복이 동력이 돼 지금까지 오셨을 것이다. 내가 부모님 만큼 철이 들려면 한참 멀었지 싶다. 아마 그 꽁무니도 쫓지 못할 수도 있다. 어디가서 무슨 일을 하든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현재 모습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난 지금 행복하지 않다. 원하는 걸 찾아 나서도 부족한 틈 투성이가 인생인데 무언가 전환점이 있어야 할 시점이 아닐까 톺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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