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하기로 아버지의 첫 해외여행은 회사 입사 후 동료들과 간 유럽여행이었다. 당시 동유럽을 돌아보셨는데 빛바랜 사진을 들고 나와 동생에게 자랑하셨던 모습을 기억한다. 이후에도 TV 등에서 자신이 방문했던 곳이 등장하면 어김없이 "내가 저기를 갔었는데"라며 경험담을 자랑스럽게 늘어놓으셨다.
이후 일본이나 동남아로 가족 여행을 다녀온 바 있지만 유럽과 같이 먼 나라로 여행을 갈 기회는 없으셨다. 형편이 안 되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 생각에 해외는 큰 맘 먹고 갈 수 있는 곳이라 여기시는 것 같았다. 또 "아들이 있어야 통역을 해줄텐데 엄마랑 둘이서 가면 말도 못하고 어쩌냐"는 말을 덧붙이시면서 말이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아버지가 늘 시청하셨던 TV프로그램과 유튜브 채널은 온통 해외여행이었다. 역사적 명소나 끝을 모르고 아름답게 늘어진 자연 경광이 나오면 "언젠가 한번은 가봐야 하는데"라고 말하시면서 말이다. 그 모습을 보며 마음 한켠으로는 늘 죄송했다. 기회는 미리 계획을 세워서 갖는 게 아니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몇달 전 아버지는 "미국을 갈 것 같다"고 하셨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회사에서 근속 포상 개념으로 동료들과 미국을 보내주기로 했던 거다. 이 이야기를 꺼내실 땐 확실치 않은 일정이었는데 최근 여행이 확정났다. 어머니께 일정을 공유하신 아버지는 유튜브를 통해 영어 공부를 하시기 시작하셨다.
영어 공부라고 특별한 건 없었다. 유튜브에 영어 문장이 하나씩 흘러나오는 영상을 꾸준히 시청하며 따라하시는 것이었다. 이게 뭐 공부가 되겠냐만은 아버지는 꾸준히 영상을 시청하시며 문장들을 읊조리셨다. 설거지를 하실 때나 잠자리에 들기 전 책상에서 말이다. 퇴직할 나이가 가까이 왔음에도 나보다 더 큰 열정을 뿜어내셨던 것 같다.
문득 아버지께 실전을 경험해드리고 싶어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네 외국인 친구에게 연락했다. 그리고 카페에서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게 했다. 아버지가 말은 고사하고 듣기를 잘 하실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웬걸, 외국인 친구의 이야기를 개략적으로 알아들으시는 거다. 아주 쉬운 영어단어가 전부였지만 원하는 말을 요리조리 하시기도 했다. 외국인 친구는 내게 엄치척을 슬쩍 들어보였다.
내가 영어를 할 수 있게 된 건 군대를 전역한 뒤 간 어학연수 덕분이었다. 바로 복학하겠다는 나를 부대 앞까지 찾아와 "인생이 바뀔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라며 떠나길 강하게 권하셨던 아버지였다. 실제로 영어는 물론이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귀한 시간이 됐다. 과연 내가 능력이 대단히 뛰어나서 이런 결과물을 얻어낸 걸까. 본인들보다 자식의 미래를 더 소중하게 여겼던 부모의 희생 덕분이란 걸 당시엔 전혀 알지 못했었지.
천천히 또박또박 대화를 이어가는 아버지를 보며 슬펐다. 가정을 꾸리고 자식이 생기며 '나'에서 '우리'로 삶의 목적을 바꾸어 머리가 하얘지도록 달려오셨겠지 싶어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는 "더 많이 공부해야겠다"고 하셨다. 아버지도 그저 평범한 꿈 많은 청년이었을 텐데, 있을 때 잘하란 말이 무척 무겁게 다가왔던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