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약 6개월 동안 함께 근무했던 인턴들이 퇴사했다. 시간이 벌써 그렇게 흘렀나 싶었다. 어느날 팀 단체 대화방에서 해당 소식이 전해지며 알게 된 사실이었다. 만날 시간이 없어 별다른 인사를 나누지 못했는데 인턴이 내게 문자를 보내왔다. 오늘 회사에 들어오냐는 것이었다. 회사와 저 멀리 현장에서 뻗치고 있던 나는 당연히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 했다. 그랬더니 인턴 동기와 우리를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했으니 나중에 꼭 챙겨라가고 당부하는 것 아닌가.
이번주 회식을 위해 회사로 들어갔을 때 인턴 친구들이 두고 간 선물을 가져왔다. 집에 가는 길에 열어보니 와인을 마실 수 있는 잔과 편지가 있었다. 2명이 손수 써내려간 편지였다. 사실 이런 헤어짐에서 쓰는 편지의 내용은 엇비슷하지 않나. 그런데 이 친구들은 인턴'기자' 아닌가. 우리가 보냈던 시간을 곱씹으며 진심을 다해 편지를 쓴 것 같았다. 편지의 마지막 말은 이것이었다. 언젠가 선배를 현장에서 동료로 다시 만나고 싶다고 말이다.
저 말에 수년전 신문사에서 했던 인턴 시절이 떠올랐다. 언론고시를 준비하지 않고 아무것도 몰랐던 내가 덜컥 인턴기자를 하게 됐던 바 있다. 기사는 고사하고 발제를 할 때부터 매번 머리를 쥐어 감싸야했다. 기사를 써가면 이게 기사냐며 편집국이 떠나가도록 혼이 나곤 했다. 대학생이 뭘 알겠는가 좀 친절히 알려주면 될 텐데 생각하며 인턴끼리 모여 데스크 뒷담화(?)를 하기도 했다.
그래도 인턴이 끝날 무렵 아쉬운 마음이 들기는 했다. 대학생이 언제 이런 큰 회사에서 일원으로 일을 해보겠나 싶었기 때문이다. 기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시간이 지나 나도 이런 멋진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다. 인턴을 하다가 다른 회사 정규직 채용이 이뤄진 동기들을 보면 더 그랬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이것이 가장 큰 고민이자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마 편지와 선물을 준비한 우리 인턴들도 비슷하지 않았었을까 싶다. 무엇보다 사회를 경험한 뒤 생각해왔던 환상과 마주쳤던 현실 가운데 여러 결정이 잇따라 준비되지 않을까. 그게 어떤 결정이든 충분히 숙고해 평생하고 싶고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냈으면 싶다. 도망치라고 숱하게 말했지만(?) 고민의 결론이 이곳이라면 최선을 다해 이뤄나가면 되는 것이고 말이다.
취업이 어렵다고 한다. 경력도 그렇지만 신입 채용은 도무지 뽑지를 않으니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은 얼마나 큰 고민을 안고 살까 싶다. 특히 모두가 가고 싶은 분야나 회사는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훨씬 어려우니 참 답답할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꾸준히 하는 말이 있다. 앞서 언급했던 마음을 잊지 않는다면, 그래서 내가 자신이 있다면 해내지 못할 건 없다는 거다. 내가 그 분야에 짱인데 어느 누가 나를 마다하겠나란 힘, 이게 원동력을 만들고 결국 원하는 목적지에 다다르게 해줄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