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대형 쇼핑몰을 찾아 정말 오랜만에 옷을 샀다. 패딩 같은 코트인데 입어보니 꽤 오래 입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음에 들었지만 가격 때문에 고민을 하기도 했다. 사실 그렇게 비싸지도 않은데 곧바로 카드를 꺼내지 않는 내 자신을 보면서 나이가 든건지 철이 생겨가고 있는건지, 거울에 비친 작년하고도 또 달라진 내 얼굴을 보며 머쓱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학부시절 옷을 어디서든 보이면 샀다. 이때는 저렴한 게 타깃이 됐다. 돈이 없었지만 멋을 부리고 싶었다. 그렇다고 과한 패션철학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무난한 옷 가운데 내 돈으로 구매가능한 브랜드를 섭렵했다. 지금도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하는데 내가 갖고 있는 후드티와 맨투맨은 이때 다 산거라고. 적어도 두달 동안은 매일 다른 걸 입을 수 있을 정도로 많다.
이후 직장을 갖게 되면서 좀 더 비싼 브랜드가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고 해봐야 폴로나 라코스테 정도였다. 셔츠나 가디건을 사모으기 좋았다. 그리고 좀 더 시간이 지났을 무렵 메종 키츠네 같은 걸 살 수 있었다. 그렇게 내 옷장은 3개가 됐다. 빈공간들이 꽤 있었는데 이젠 꾸역꾸역 넣어야 될 정도로 공간이 없어졌다.
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 주로 셔츠를 입어야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옷들은 입는 시간이 줄게 됐다. 그나마 주말이 기회였는데 5일 동안 나름의 격식을 갖춰 입고 살아 주말 만큼은 좀 편안해지고 싶었다. 물론 이쁜 옷 갖춰 입으면 좋지만 단 이틀 동안을 위해 많은 옷을 파헤치는 건 머리속을 뒤죽박죽으로 만들기 딱 좋았다. 그래서 그냥 집히는 푸근한 옷들이 주말 일정에 나서게 됐다. 즐겨 입었던 가디건이나 코트 등은 알맞은 철이 다가와도 여전히 옷장에 있어야 했다.
이전에 내 즐거움은 옷을 사는 거였다. 물론 사는 것 뿐만 아니라 가서 구경만 해도 즐거웠다.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 중 가장 좋은 것이었다. 그런데 일을 하면서 한가지 종류로만 입어야 하니 다른 종류의 옷들을 못입게 되면서 흥미를 잃어가게 됐다. 이 사실은 처음엔 몰랐다. 당연히 예전처럼 관심이 있는줄 알았는데 최근 들어 어딘가에서 세일을 한다고 해도 감흥이 없는 걸 몇번 경험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됐다. 떨어진 관심 말이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않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물론 합리적인 소비 습관을 형성하는 데 좋은 징조이지만 내가 그동안 방만한 구매를 하진 않았다. 누구에게나 하루를 어김없이 살아갈 자신만의 탈출구를 마련해두니까. 내겐 옷이었는데 쇼핑몰을 방문해도 시큰둥해진 반응에 씁쓸해지기도 했다.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는 건데 그것이 꼭 반대가 돼 일을 하기 위해 사는 것 같고, 역전 현상은 삶을 지탱해주는 요소들까지 번진 것 같아서.
어제도 그랬다. 겉으론 집에 동일한 옷이 있지 않을까 고민했지만 이것의 근원은 앞서 언급했던 문제로부터 온 거다. 이날도 지난날들과 같이 "에이 뭘 사. 그냥 말자"라고 단념했을 거다. 현장에 같이 간 짝궁이 제발 좀 꼭 사라고 날 다독이지 않았으면 말이다. 내게 왜 그렇게 본인에게 소비를 하지 않냐는 말도 덧붙여줬다. 왜 젊은날 놀아본 사람만 이제 여한이 없어 그만한다고 하지 않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내 경우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다음날 다시 시작되는 한주를 두고 내일 입고갈 옷을 미리 꺼내두면서 고민할 때 일단 한숨을 쉬면서 셔츠 옷걸이들을 뒤적이는 걸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