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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Nov 06. 2024

가을의 완연함을 느꼈던 출장길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순간들이 있지 않나. 특별하지 않지만 이런 날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싶던 날이다. Paul 제공

퇴근을 하고 주말을 기다리던 어느날 저녁을 먹은 뒤 쉬고 있는데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통화 내용은 간단했다. 취재에 합류해야 하니 지방으로 내려가라. 전화를 끝내고 난 뒤 한 30분 동안 멍을 때렸던 것 같다. 갑작스러운 출장이었기 때문이다. 주말에 특별하진 않지만 나름 계획을 다 세워뒀는데 이렇게 팔려가다니.


아침 일찍 일어나야 했으니 시간을 지체하면 잠만 늦게 자게될 뿐이었다. 캐리어를 꺼내 옷을 챙기는데 문득 원론적인 궁금증이 생겼다. 도대체 몇일을 있어야 하는 건가. 짧으면 3일 길면 장담 못한다는 선배의 말에 우선 4일 짐을 챙겨보기로 했다. 옷이 없어서 올라와야 한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를 들이밀 생각이었다.


그렇게 회사 차를 타고 출발한 출장길, 차 안에는 모두 갑자기 잡혀온 이들이었다. 어쩌겠는가, 이 일을 한다면 운명처럼 받아들여야지. 모두들 나와 같은 생각인지 해탈한 얼굴로 현장에서 어떤 걸 해야할지만 이야기를 나눴었다. 너무 우울해질 때면 그 지역엔 뭐가 맛있다더라 같은 쓸데없는 이야기도 곁들이고 말이다.


몇시간이 걸려 도착한 현장은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정취를 느낄 새 없이 곧바로 취재에 들어갔다. 참 막연했는데 운이 좋게 얻어걸린 사건 덕에 우리가 출장을 왔던 목적을 조기에 달성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 철수할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이동할지 의사결정이 늦어지고 있던 찰나에 튀어나온 결과물이었다.


미션을 이르게 해낸 덕에 약간의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그래봐야 다음 일정들을 가기 전까지의 틈 정도였다. 이게 어딘가 싶었다. 정신없이 바쁘게 꾀죄죄한 몰골을 유지하며 출장을 보낼 줄 알았는데. 서울에서 즐겨 가던 스타일의 카페도 없었고 줄을 길게 늘어설 만큼의 맛집도 없었지만 좋았다. 내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살던 곳과 다른 환경이 말이다.


남쪽이라 11월이었음에도 무척 더웠는데 노랗게 물든 단풍이 눈에 자주 띄었다. 이전엔 그런 풍경을 뭐하러 담냐며 영(Young)하지 못하다 생각했는데 이젠 먼저 카메라로 담고 있는 나. 치열함과 복잡스러움은 상대적이겠으나 어쨌든 서울보다 덜 독한 이 도시의 삶이 괜스레 부러워지기도 했다.


출장 중 검찰 일정도 있었는데, 검찰청 안과 밖을 생각하게 되기도 했다. 학창시절엔 검찰청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돼야 성공한 것이라 보지 않나. 이 엇비슷한 부류의 직업을 가져야 행복하게 살 수 있을거라 배워왔으니깐. 그런데 막상 그들과 견주는 직업을 갖고 살아보니 학창시절 생각의 범주가 꽤 작았음을, 크기가 누구보다 크다고 착각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는 것 같다. 안과 밖이란 기준은 안에 있는 사람들이 정하고 있음을, 밖에서 살아도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음을 알게된 뒤부터 말이다.


때아닌 여유로움 속에 이런 생각을 많이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더 확고해지기도 했다. 수년간 잘 바텨왔던 이 직업이 내게 잘맞는 옷이 아니란 사실을 선명히. 그렇다면 뭐할래라고 물을 수도 있고 섣부르다 고래를 가로저을 수도 있겠다. 돈을 버는 행위를 하면서 좋은 것만 할 수 없고 백퍼센트 만족한다 말할 이 누가 있겠는가. 그런데 이런 현실적인 건 차치하고 막 더하고 싶고 뿌듯하며 즐거워 할 수 있진 않나. 매순간이라기보단 열에 여섯번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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