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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Nov 23. 2024

근속 3년이 지났다

어제 3주년이었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를 다닌지 말이다. 벌써 3년이라니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갔구나 싶었다. 문득 이 회사에 면접을 보러올 때가 떠올랐다. 기자라면 한번쯤은 목표로 삼았을 그런 회사에 면접을 보게 된다는 사실이 참 떨리면서도 신기했다. 면접을 보러 회사가 있는 역에 도착했을 땐 그곳을 드나들던 모든 사람이 멋져보였다. 나도 합격해서 이 거리의 일원이 되면 어떨까 혼자 상상하기도 했다.


면접을 보러가는 길은 더 큰 떨림의 연속이었다. 회사 근처 다른 언론사에 이미 다니고 있던 동기와 면접 전 커피를 마셨는데 긴장한 내게 잘하라며 응원을 해준 바 있다. 사실 거사를 앞둔 사람이 무슨 이야기가 들리겠나. 어찌 시간이 흘러 면접이 코앞으로 다가왔고 마음을 차분히 다스리며 회사로 발걸음을 옮겼었다. 짧다면 짧은 거리엔 회사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목격했었는데 그땐 그 옷이, 회사 앞에 서서 허리를 뒤로 한참 젖혀야 보이는 로고가 그렇게 멋있었다.


천하태평인건지 모르겠지만 사실 난 별다른 면접 준비를 하지 않았었다. 자신감이라기보단 대책이 없었다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중대한 기로를 앞에 두고 너무 여유로웠나 이제라도 돌이켜봤다. 당시 면접장엔 나처럼 떨려하며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경쟁자들을 볼 수 있었다. 한 지원자는 수첩에 공부한 메모를 열심히 복기하고 있었다. 사실 이 모습을 목격하곤 좀 불안하기도 했다. 나는 내세울 강점이랄 게 없었기 때문이다. 긴장한 탓에 화장실 구경도 여러번 했었다.


드디어 시작된 내 면접, 무슨 말을 하고 나왔는지 기억이 나진 않는다. 다만 애써 침착한 척 말이 끊기지 않게 이어나가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면접을 보고 나온 뒤엔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나 떨어진 것 같다'란 후기를 한참이나 말했다. 최종이라봐야 몇명 안 되는 줄 알았는데 무슨 열댓명 넘게 왔으니 말이다. 잘난 것 없는 내게 기회가 주어질리 만무하다 생각했었다. 최종 합격 발표가 길어지며 체념이 커졌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날, 카페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무심코 날라온 인사팀의 연락을 받았고 합격했단 소식을 듣게 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 인생에 이직은 두번 다시 없을 줄 알았다. 언론계에서 최고라면 그렇다고 할 수 있는 곳에 입사했으니 이제는 두다리 쭉 뻗고 고민 없이 내 일을 해 나가면 되는 것 아닌가 착각했다. 회사를 다니며 만났던 좋은 선후배들도 이런 달콤한 착각을 이어가게 해줬다. 정말 많은 걸 누릴 수 있었고 스스로 만족한다면 흘러가는 시간을 아쉽지 않게 흘려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내 마음 속에 무언가 불편한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직하고 한 1년 반쯤 지나서였던 것 같다. 감사한 제목들이 줄줄이 엮여있는데 도대체 무엇이 불만이었던 걸까. 입직하고 나서 처음 썼던 단독 기사로 참 많이 고민했었다. 누군가를 인격적으로 낮추게 만든 결과물이 단독이었기 때문이다.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무언가의 가치를 만들어보겠다고 시작한 일, 누구도 쉬이 건드릴 수 없는 힘이 되어버린거다. 3년 전부터 몸담게 된 이 회사에 와서는 그것이 더 세졌다. '조질(비판) 수 있는'이란 날카로운 무기가 닳지 않는 최신형으로 업그레이드 된 거다.


무슨 말이냐고? 얼마 전 선배들과 회식을 하다 한 선배 입에서 나온 말이다. 어차피 우린 천국은 못갈 거니까란 말. 잡아내고 파헤치고 찾아내는 데 도가 튼 사람들인 우리는 다른 부연 설명이 없어도 무슨 뜻인지 단번에 이해했다. 그리고 난 이날밤 집에 돌아와 심각하게 고민했다. 이게 진정 내가 원하던 삶이었을까 싶어서다. 옛날에도 이런 고민을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사실확인을 쾅하고 해주는 저 말에 K.O를 당할 만큼 쓰라렸달까.


철이 없을 땐 '나 뉴스 안 봐'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한심하게 생각했다. 기본적인 교양이 없는 것으로 취급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기본적이란 단어 조차 우리의 기준 아니던가. 정치판에서 누가 뭘했는지, 오늘은 어떤 사건사고가 났는지 알게 무언가. 내게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후회 없이 살기도 바쁜 오늘날인데 말이다. 이런 결론들이 하나씩 쌓이고 나니 3주년을 크게 자축하지 못했다. 앞으로 3년을 또 보낼 자신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펜대를 굴려야겠다 생각했지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점검해봤나 돌아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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