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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Dec 04. 2024

어디 있든 전원 귀사한 날

부장의 복귀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서울 경기를 비롯한 전 지역에서 '넵'의 향연이 펼쳐졌다. Paul 제공

평화로운 저녁이었다. 모처럼 일찍 마쳐 집으로 복귀해 운동을 다녀왔다. 저녁도 알차게 먹고 간식도 먹었다. 시간을 때우다가 잠에 들면 완벽하게 마무리될 그런 하루였다. 그런데 휴대전화가 별안간 울리기 시작했다. 대통령실에서 엠바고를 걸어둔 일정이 있다는 거다. 무슨 내용인지는 출입하는 기자들에게도 비밀에 붙혔었다. 도대체 그게 무어냐 갑자기 회사 단톡방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뒤 대통령실의 라이브 방송이 시작됐다. 시작은 예산안이었다. 선후배들은 안도했다. 고작 이런 걸로 밤에 우리를 괴롭히나 장난스런 우스갯소리를 나누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의 천진난만함은 얼마 가지 못했다. 대통령의 말 때문이었다. 대통령은 시국이 우려스럽다며 갑자기 계엄령을 선포했다. 순간 귀를 의심했다. 언젠가 영화에서 봤을 법한, 지금 방영하고 있는 과거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에서나 설정할 법한 그런 단어가 들리는 것 아닌가.


우리는 몇번이고 확인했다. 회사 단톡방은 이전보다 더 빠르게 대화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약속을 하던 기자들은 자리를 파하고 곧장 현장으로 출발했다. 집에 있던 기자들은 일단 노트북을 열어두고 단톡방에 바로 답을 할 수 있는 자세를 잡았다. 곧이어 포고령이 발표됐다. 언론은 계엄사의 검열을 받는다. 이 문장이 나오자마자 단톡방엔 딱 한마디가 올라왔다. 모든 기자는 회사로 복귀.


혹시나 해 면도를 하고 있던 나는 재빠르게 옷을 주워입었다. 난 회사로 오지 말고 현장으로 바로 합류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밤 12시를 넘긴 시점이었는데 신호는 왜 계속 걸리던지. 과속카메라가 앞에 있을 때를 빼곤 할 수 있는한 최대로 속도를 냈다. 어쨌든 빨리 현장으로 가 다른 지시를 받아야 될 참이었기 때문이다. 차 안에는 덜그럭 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집에 들어올지 미지수였기에 잔뜩 챙겨온 짐들이 가방 안에서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있었다.


현장에 도착해 출입하는 경찰청으로 연락을 돌렸고 실시간으로 상황 파악에 들어갔다. 출입하고 있는 다른 부처로도 회신이 오도록 조처했다. 이런 가운데 새벽 1시쯤 국회에서 계엄해제안이 통과됐다. 상황은 해소되지 않았다. 그러다 백브리핑이 예정됐고 동료 선배와 함께 이동해 일정을 챙겼다. 휴대전화 녹음기를 들이밀고 노트북으로 워딩을 정리하고 넘기고. 여의도 상황은 어떤지 뉴스도 열어보며 뛰어다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상황이 어느정도 마무리되고 나니 새벽 2시 반쯤이 돼 있었다.


예정된 일정이 더 없다면 일단 집으로 들어가라는 지시를 받았다. 도저히 운전할 자신이 없어 택시를 불렀다. 택시에 타니 기사님은 DMB를 통해 뉴스를 보고 계셨다. 솔직히 좀 꺼달라고 요청하고 싶었다. 내내 그 말만 듣고 왔는데 집에 가는 길 마저 일의 연속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말이다. 애써 모른척 귀를 열심히 닫으며 멍을 때리고보니 집이었고 씻지도 않고 침대에 누워버렸다. 눈을 잠깐 감았는데 휴대전화 알람이 나를 깨웠다. 아침이 온 거다.


일어나 준비할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표정으로 최대한 빨리 씻고 어제 입은 옷을 다시 주워입고 나왔다. 택시를 타고 현장으로 가는데 역시나 라디오를 틀고 계셨고 주제는 어김없이 계엄이었다. 회사 단톡방은 시간 개념이 없어진 듯,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전화가 울리는 것처럼 대화가 계속 올라왔다. 잠깐을 놓치면 실수할까봐 집착하는 것처럼 전화기를 붙들었다. 현장에 도착해 지시를 받으면 다른 현장으로 이동해 취재를 진행했다. 그러다보니 오늘 하루가 지났다.


하루 동안 얼마나 많은 하품을 했는지 모르겠다. 내려오는 눈꺼풀에 커피를 벌컥벌컥 마셨다. 선배가 무슨 말을 하는데 그냥 로봇처럼 웃었다. 밥을 먹어야 하는데 고를 힘도 없어 주변에 있는 아무 음식이나 먹었다. 물론 먹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도저히 안 들어갔으니까.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 일이 끝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도 하루를 좀 마무리했다는 기분이 들어야 하는데 화장실 들어갔다가 깜빡하고 휴지를 안 쓴 느낌이랄까. 경제가 주저 앉고 외교가 엉망이 되고, 평범함이 지루하다고 하는데 사실 최고의 큰 감사인 걸 여러분은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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