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부서 회식을 했다. 이 회식의 조건은 '되는 대로'였다. 1시간 후의 일도 알지 못하는 게 우리 일이니 저녁 약속을 예정하고 잡는 건 너무나도 큰 사치다. 다행스럽게도 별다른 이슈가 없어 이날 저녁엔 10명 가량의 기자들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됐다. 물론 약속 시간에는 절대 다같이 오지 못했고 조금씩 퍼즐 조각을 완성하듯 테이블이 늘어났다.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하는 웃픈 말이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벌써 다음주란 거였다. 눈을 뜨면 출근할 뿐 날짜나 요일 따위를 세고 있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못한거지. 최근 시국은 주말에도 평일 같은 업무량을 선사해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름 비싼 식당에서 잠자코 앉아 밥을 먹을 이날의 기회는 일단 말없이 흡입을 해야 하는 거였다. 다들 이야기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지만 나오는 음식들을 순식간에 가져가기 바빴다.
그러다 한 선배가 일화를 이야기해줬다. 원래 계획된 휴무가 주말을 붙여 3일이었는데 하루만 쉬었단다. 그마저도 쉬지 않으려고 했다가 아이가 너무 기대하는 바람에 일정을 다녀오게 됐다고. 아이들과 남편은 그대로 여행지에 있고 본인만 서울로 오려니 아이가 "엄마는 항상 바쁘다"란 말을 했단다. 순간 결혼한 선배들이 긍정하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음을 발견했다. 아이들은 태어나보니 부모가 기자였고 그 직업이란 자신들과의 시간을 한정적으로 보낼 수 밖에 없는 숙명을 갖고 있으니깐.
이런 이야기를 한창 하는데 한 후배가 뒤늦게 식사자리에 합류했다. 지방에 내려가 계속 취재하고 있던 후배였는데 거의 단벌 신사 마냥 지내는 것 같았다. 허겁지겁 밥을 먹는데 얼마나 안쓰러워 보였는지. 그 와중에도 휴대전화를 계속 확인하며 연락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근데 이날 회식에 왔던 나를 포함한 선후배들이 다 그러고 있었다. 혹시나 이슈가 터지진 않았는지, 출입처로부터 연락은 오지 않았는지 체크해야 했으니깐. 무엇보다 회사 단체 대화방은 알람이 끊이지 않으니 말이다.
순간 그런 생각을 해봤다. 회식 장소 바로 앞에서 사고가 나면 이 열댓명의 기자들은 곧바로 도로 앞으로 튀어갈 것이다. 고참 선배들은 보고를 할 거고 일부 기자들은 경찰에, 나머지는 현장을 촬영하고 목격자나 CCTV 등을 찾을 거다. 생각하면서 가슴이 웅장해지고 뭔가 어벤져스 같다 싶었다. 여기 모인 기자들로도 온세상을 시끌벅적하게 할 이야기를 전할 수 있으니깐. 다시 생각해보니 사건사고를 슬퍼하기보다 먼저 일로 대입을 하고 있다는 자체가 스스로 멋쩍었다.
지난 주말 아침 아주 이른 시간에 택시를 타고 현장으로 가는데 택시 기사님이 하셨던 질문이 떠올랐다. 이렇게 아침 일찍 멀리 왜 가시냐고 말이다. 기자라고 하니 "아유 참 어려운 일인데 고생이다"고 해주셨다. 그 말을 듣고 창밖을 보며 이동하는데 무언가 모를 서글픔이 몰려오기도 했다. 이날 회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창밖 풍경은 참 고요하고 평화로운데, 나는 구태여 어쩌다가 치열한 순간들을 직접 찾아나서는 일을 하고 있는지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