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날 일이 일어났을 뿐이다.
나의 인도 적응기는
‘불신’이라는 단어로 요약된다.
솔직히 말하면,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인도에 도착했을 당시만 해도
스마트폰이 귀한 시절이다.
길치였던 나는 어쩔 수 없이
인도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인도 사람들은 정말 친절했다.
항상 웃으며 길을 알려줬다.
다만,
그들은 길을 모를 뿐이다.
인도에는 바퀴가 세 개 달린,
릭샤라는 교통수단이 있다.
요금은 정해져 있지 않다.
기사님이 부르는 게 값이다.
출발 전에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나의 평정심을 건든다.
평화롭게 출발한 뒤에도
차가 막히거나 그럴듯한 이유가 생기면
어김없이 가격을 올린다.
그때 나는 알게 됐다.
억지도 강력한 논리법이라는 것을.
무엇보다 가장 큰 충격은
시간 개념이었다.
아마도 인도에는
다른 중력법칙이 작용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시간도
조금 다르게 흐르는 듯했다.
인터넷 설치를 위해 기사님이 오기로 한 날.
불안한 마음에 전화를 해보니
지금 이미 오시는 중이라고 했다.
하루가 지났다.
이틀이 지났다.
당신은 누군가를 그렇게
간절히 기다려본 적이 있는가?
인도 관광청의 슬로건은
‘Incredible India’.
정말,
Unbelievable India였다.
‘내가 여기서 살 수 있을까?’
그런데 이상하다.
시간이 지나자
이 또한 조금씩 익숙해졌다.
'포기'라는 단어보다는
'순응'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싶다.
그게 내가 선택한 생존법이었다.
어제 온다던 물 배달 아저씨는
오늘도 오지 않았다.
괜찮다.
나는 젊다.
20리터 물통쯤은
내가 직접 들고 오면 그만이다.
릭샤 기사님과의 전투는
도저히 내가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괜찮다.
나는 이사를 택했다.
인도 대학교에서 걸어서 고작 3분 거리,
더 이상 감정 소모 할 필요 없다.
인터넷이 또 고장 났다.
기사님에게 전화가 왔다.
지금 집으로 출발하신다고 한다.
나는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오늘따라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향이 깊다.
몇 시간 뒤,
거의 다 도착하셨다고 연락이 왔다.
나도 이제 슬슬 집으로 출발해야겠다.
또 몇 시간이 지났다.
이번엔 동네에 다 도착했다고 하신다.
5분 안에 도착하신다고 한다.
오늘 전투는 내가 이긴 것 같다.
슬슬 거실로 나와 기사님이 벨을 누리기를 기다린다.
그런데, 결국, 또
그는 오지 않았다.
내일 오신다고 한다.
괜찮다.
그래도 며칠 전에 오기로 한
물 배달이 방금 도착했다.
전투는 졌지만
오늘하루 전적은 1승 1패,
나쁘지 않다.
그렇게
그런 방식으로
나는 무뎌지고 있었다.
거짓말도,
무례함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니
화가 나지 않았다.
일어날 일이
그저 일어났을 뿐이다.
동요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이것을
‘적응’이라고 믿으며
인도 생활에
천천히 무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