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자무시의 숨은 걸작 "리미츠 오브 컨트롤" 2010
1. 프롤로그:
그의 모든 영화를 3번 이상 봤으며 삶이 내게 울적함을 호소할 때마다 매년 다시 꺼내보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보는 내내 한 쇼트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2. 문이 없는 문을 통과해야만 존재의 아이러니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던가 인생과 예술에 관한 이야기가 끝말잇기게임처럼 이어진다. 그리스철학자들은 서로에게 질문과 대답을 하면서 게임과 놀이처럼 앎을 추구했다. 결국 철학하기란 질문하기와 그에대해 대답하기일 것이다. 정답은 없이 (정답이 있을턱이)각자의 생각이 있고 그것을 정확하게 표현한 단어와 문장을 새롭게 발명했을뿐이다. 그럼으로 새로운 세계를 하나 더 창조한다.(다중우주 )
3. 그도 장르를 발명했다. 그의 타 장르 비틀기와 장르를 "처음 보는 것으로 " 만드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인디영화계의 악동으로 등장해서 지금은 거의 인디계의 하느님 아버지급이다. 그도 하나의 장르를(세계를) 처음 창조했다. 예술이란 또 하나의 전대미문의 세계를 창조하는 행위이고 그것을 하는 사람이 예술가라는 존재다. 놀이처럼 영화를 찍고 시처럼 삶을 사는 그의 장르는 "싱어게인"의 누구처럼 장르가 자무시다
4. 이 영화에서도 생전 처음 보는 킬러가 등장한다. 정장스타일을 유지하는 킬러는 잠을 자지 않고 노 건 노 모바일 노 섹스를 슬로건으로 내건다. 자무쉬스러운 몽환적인 리프의 기타음악과 함께한 스타일리쉬한 그 모습 그대로다.
그의 거의 모든 영화가 로드무비의 형식을 갖는다. 나는 로드무비라면 내용도 보지않고 무조건 보는 편인데 이 영화 또한 스페인을 배경으로 한 로드무비다. 더군다나 내 최애 여행지의 한군데인 스페인이라니!! 필견이다.
로드무비에서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정주해온 안전한 집을 떠나서 길 위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예기치 않은 사건들을 겪으며 깨닫고 성장하는 스토리를 가진다. 엄청난 존재의 돌연변이를 경험하는 것이다.
5. 거룩한 책무를 맡은 무사의 임무수행처럼 초연해보이고 고독해보이지만 그는 전혀 고독하지 않다. 킬러의 고독에 어울릴만한 장르적 트라우마도 없다.
문화적으로 상이한 재료들을 한데 섞어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재능이 자무시감독에게 있다. 그 자신 이방인이었던 존재로 윌리엄 블레이크라는 영국 시인의 시를 모티브로 전개되는 자무쉬감독의 초기 로드무비 <데드맨>을 꼭 닮았다. 그의 로드무비 속 캐릭터들은 마치 수행을 위한 구도여행을 떠나는 것 같다.
6. 주인공 ‘외로운 남자’(이삭 드 번콜)는 규칙을 따르고 원칙을 지키는 말이 거의 없는 남자다. 그러나 성격과는 상관없이 직업은 ‘무려’ 살인청부업자다. 짐 자무시가 쓰고 감독하고, 크리스토퍼 도일이 찍은 <리미츠 오브 컨트롤>은 이 금욕적인 킬러의 여정을 따라간다. 그가 어떤 일을 맡고 처리하는 동안, 그에게는 마치 수행자같은 철저한 루틴과 규칙이 있다.
흐트러짐 없는 옷차림으로 기체조를 하고 그 모습그대로 잠을 잔다. 남는 시간엔 클래식 음악을 듣고 갤러리 투어를 한다. 하나의 그림 앞에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관심없고, 변변한 음식도 안 먹는(러닝타임 두 시간 내내 그가 먹은 거라고는 오직 서양배 한 개 뿐이다) 그의 유일한 기호품은 에스프레소. 카페에선 언제나 두잔을 시켜놓고 접선자를 기다리지만, 그 두잔은 모두 자신의 몫이다.
7. 킬러앞에 나타난 접선자들 역시 같은 서랍 안에 든 양말처럼 뭔가 비슷하면서도 규칙적인 배열로 등장한다. 모두 선글라스를 꼈고 첫 대화는 “스페인어 못하시죠? 그렇죠?”로 시작하며, “혹시 거기 관심있어요?”란 화두로 자신이 좋아하는 특정 분야, 예를 들면 음악, 과학, 영화, 예술, 환각 등등을 떠벌리고는 별 인사도 없이 사라진다. ‘블론디’, ‘멕시칸’, ‘기타’, ‘누드’ 등의 간단명료한 이름을 가진 접선자들과 ‘외로운 남자’의 의사소통은 성냥갑을 주고받는 것으로 종결된다.
8. 성냥갑 안에는 암호를 접은 종이가 착착 접혀 있다. ‘외로운 남자’는 머릿속에 단단히 글자를 집어넣고 에스프레소와 함께 종이를 꿀꺽 삼킨다. 성냥갑은 이 영화 속 결말의 전조이고 얘기를 이어나가는 고리이며 시적 장르의 라임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짐 자무시 만의 고유한 ‘스타일’이다. 미묘한 차이와 반복적인 스타일은 <커피와 담배>의 그것이기도 하다. ( 에스프레소 두 잔 샷)
9. 트렌치코트에 베이지색 모자를 쓰고 나타난 브론디(틸다 스윈튼) , 청재킷을 입고 카우보이 부츠를 신은 채 ‘웨스턴적으로’ 등장한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갈색 트렌치코트와 체크 머플러 차림의 존 허트. 이 멋진 비주얼을 가진 스타일리시한 접선자들도 눈에 띄었지만 <리미츠 오브 컨트롤>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창조물은 성냥갑이다. 앞면에 트렁크를 입은 복서가 그려진 회화적인 모양의 종이 성냥갑. 바탕이 청록색인 것과 빨강색, 두 가지.
10. 에필로그
그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라임과 같은 오브제는 담배, 커피, 시 그리고 그의 힙스터스러운 삶 그자체이다. "네 삶을 예술로 만들어라"고 말한 니체의 말에 딱 들어맞는 진심 자무시처럼 살고 싶다. 그러나 그처럼 살수 있다면 아마도 전생에 나라를 구한게 아니라 우주를 구해야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