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내내 상념이 다투듯이 몰려왔다. 그중에 어떤 것을 골라내어 기록해야 할지 고민될 만큼 이 책은 수많은 주제와 요소를 다루고 있다. 선택, 책임, 결혼, 인내, 운명을 거쳐 결국은 삶과 그것을 대하는 태도로 이어진다. 작가의 내밀한 이야기에, 그것을 드러낸 용기에 어떤 말도 보탤 수 없어서 끄적거려 두었던 내 글로 기록을 대신한다.
첫 책을 내고 남편에 대한 공감 어린 후기를 많이 접했다. 우리 신랑 잡으러 집에 찾아갈뻔했다는 농담 섞인 글부터 ‘우리 집에도 그런 사람 있어요’라는 고백까지 다채로웠다. 역시나 모든 부부 생활에는 쌓인 시간만큼의 서운함과 불협화음이 기본값처럼 깔리는 모양이다. 다르니까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으니 또 다르게 보이는 쳇바퀴는 이렇게나 빠져나갈 틈 없이 돌고 돈다. 우리 부부 사정만 보아도 나와 남편이 얼마나 다른 사람인지 알아차리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다. 상황에 대한 인식, 감정의 상승 속도, 그걸 표현하는 방식까지 뭐 하나 같은 게 없어서 몇 마디 대화만으로 우리 둘의 차이는 극명하게 갈린다. 문제는 결혼 전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 망할 콩깍지 같으니라고.
이렇게 다른 남편과 살면서 남편을 연구하고 알맞게 대처한다고 애써보지만 늘 쉽지 않았다. 부딪치면서 생긴 마음의 실금은 나를 오래 괴롭혔다. 그때마다 나만큼이나 연구대상을 오래 보아온 딸과 이야기 나눈다.(정확히 말하면 일러바친다) 그날도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며 맹렬하게 흉을 늘어놓는데 잠잠히 듣던 딸이 말했다.
“엄마는 아직도 아빠를 참 사랑하나 봐.”
아니 이게 웬 말인가. 사아라앙? 언제 사라졌는지 알 수도 없는 그걸 내가? 어안이 벙벙해져서 아무 대답 못하는 내게 딸이 이어서 말했다.
“좋아하니까 기대하게 되고 기대가 있으니까 실망하는 거잖아.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될 텐데.”
엥? 그러게. 나 왜 못 그랬지? 남들한테는 부정적인 감정 같은 건 물 흐르듯 흘려보내라는 말을 조언이랍시고 작작하면서 정작 나는 남편에게 한순간도 그러지 못했다. 그렇다면 정말 사랑인 거야? 나 너 사랑하냐?
그랬다. 나는 아직도 남편에게 기대라는 걸 했다. 그것이 사랑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라고 하면서도 남편을 바꿔보려고, 내 생각대로 이끌어보려고 무던히 애썼다. 사랑이란 감정의 기한은 지난 지 오래됐지만 포기하지 못했다. 그러니 앞으로 살아갈 날이라도 원만한 합의(?)에 이르려면 서로를 견뎌낼 무언가가 필요했다. 사랑에 담긴 수많은 감정 중 무엇을 끌어올려 빈자리를 채워야 할까? 공감, 애틋함, 허용, 이해, 배려... 어떤 관계에서든 ‘귀여움’은 만능 콩깍지라던데 일단 귀여워해야 하는 걸까? 하지만 이 사람, 귀여워하는 건 너무나 무리 아닌가. 그 생각의 끝에 한 단어가 남았다. ‘연민’이었다.
김훈 작가는 <연필로 쓰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빚쟁이처럼 사랑을 내놓으라고 닦달하지 말고 서로를 가엾이 여기면서 살아라.” 가엾게 여기기. 그 렌즈를 끼고 보니 남편을 향한 시선이 아주 조금은 달라졌다. 어김없이 자주 속상하고 정말 왜 저럴까 싶지만 그렇게 화가 났다가도 제풀에 쓱 누그러졌다. 세상의 가치관은 팽팽 소리 나게 바뀌는데 거기에 발맞추지 못하는 본인은 얼마나 답답할까. ‘으이구, 못났다, 못났어’ 하다가도 가여운 마음이 올라왔다. 세상에 부대끼면서도 꿋꿋하게 가족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다하니 얼마나 대견한가에까지 생각이 이르자 별안간 속이 편안해졌다. 원래 그런 사람이라며 포기하려 애쓸 때는 그렇게나 못 견디겠더니 날씨처럼 그냥 받아들이니까 할 만했다. 비 올 땐 우산 쓰고 바람 불 땐 옷을 여미면 그만이었다.
한때 자존감의 정도를 알 수 있는 질문이라며 인터넷에 떠돌던 문장이 있다. “모든 면에서 당신과 같은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평생 당신 같은 사람과 즐거이 지낼 수 있나요?” 예전의 나는 이 질문에 잠시도 뜸 들이지 않고 ‘암요! 나 같은 사람이면 땡큐’라고 대답했을 거다. 그런데 보는 시선 하나가 바뀌자 내 앞의 풍경이 달라졌다. 슬그머니 그의 자리로 옮긴 후 바라본 나는 그리 즐거이 지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도 썩 괜찮은 인간은 아니라는 각성과 함께 더 이상 긍정의 답이 안 나왔다. 나의 까탈스러움, 두려움에서 비롯된 나의 예민함을 견뎌내고 있는 남편이 보였던 것이다. 나만 견딘 게 아니었다.
서로를 가엾게 여긴다고 해서 만병통치약처럼 모든 일이 쉽게 해결되진 않는다. 하지만 서로의 마음속에 새겨진 깊은 골만큼은 아주 조금씩 메워지길 기대해 본다. 나는 이제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다. 허나 그보다 더 넓은 지경에서 그를 만난다. 은근하고 뭉근한 열기로 그를 품는다. 연민의 안경을 끼면 눈비에 불평하지 않고 쾌청한 온도와 바람엔 감사할 수 있다. 딸이 선물한 깨달음으로 안간힘을 쓰다 보면 남은 인생도 나란히 완주할 거라 기대해 본다. 뭐 어떻게든 완주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 무엇도 아닌 너와 나의 가여운 인생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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