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스나 Jan 05. 2021

엄마 보고 싶어

엄마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어릴 때 학교에서 수련회 갔을 때 캠프파이어 도중 엄마를 찾으며 훌쩍이는 친구들이 이해가 안 갔다.

결혼식날 화장이 번지든 말든 엄마를 보며 우는 신부들이 이해가 안 갔다.

언제든 또 볼 엄만데 뭐가 그리 보고 싶지?



내가 엄마랑 사이가 안 좋았던 건 아니다.

평균적으로 주변 친구들의 엄마에 비해선 많이 엄격하고 무서운 엄마이긴 했지만 어렵고 불편한 관계는 절대 아니었다.

서로 장난도 치고 농담도 하는 평범하고도 사이좋은 모녀 사이였다.

결혼 후에는 내가 좀 제대로 살지 못했다 보니 힘든 모습 보이기가 싫어서 엄마를 좀 피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한동안 안 보고 살았다는 건 아니다.

워낙 가까이 살았고 워낙 자주 만났다 보니 그 횟수를 조금 줄인 정도.



아무튼 그 어떤 상황에서도 엄마를 보고 싶어 하는 딸이 아니었는데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보고 싶어 졌다.

엄마는 늘 있어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물론 나이 들어 돌아가실 거라는 건 알고 있지만 정말 먼 훗날의 얘기라고 생각했다.

나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후 늙은 엄마를 의젓하게 보내드리는 그림만 그려보았다.

한 번도 이렇게 일찍 엄마를 보내는 그림은 전혀 그려본 적이 없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난 왜 엄마가 떠난 후에야 엄마가 보고 싶어 진 걸까.

진작에 평소에도 엄마를 많이 찾고, 응석도 부리고 했으면 엄마가 얼마나 좋아했을까.

귀여운 막내딸 덕에 많이 많이 웃고 살았다면 엄마가 몹쓸 병에 걸리지도 않았을 텐데..

늘 냉정하고 약간의 거리를 두려고 하는 재미없는 딸 때문에 하루하루가 얼마나 지겹고 외로웠을까.


바깥에서 힘들게 일하던 엄마는 더운 여름보다는 추운 겨울이 차라리 일 하기에 낫다고 했다.

지금 엄마가 있을 그곳도 겨울일까.

더 낫고 안 낫고를 떠나 엄마가 그곳에선 힘들게 일을 안 했으면 좋겠다.

매일매일 온화한 기후 속에서 맛있는 것 배불리 먹으며 팔다리 편안하게 쉬기만 했으면 좋겠다.

못난 딸을 둔 덕에 평생을 고생스럽게 일했던 엄마.

자식 용돈 받아써가며 지낼 나이에 나보다도 더 열심히 살았던 엄마.

내가 잘난 딸이었다면, 용돈 척척 쥐어주는 딸이었다면 엄마가 몹쓸 병에 걸리지도 않았을 텐데..



엄마가 보고 싶다.

가끔은 엉엉 소리를 내며 운다.

또 가끔은 터질 것 같은 울음을 꾹꾹 눌러 담는다.

이래도 저래도 엄마가 보고 싶은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상실이라도 걸렸으면 좋겠다.

엄마에 대한 기억 자체가 사라지면 그리워할 일도 없을 텐데.

하는 한심하고 바보 같은 상상을 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알게 되었다. 나는 똥손이라는 것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