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말 안달루시아 산골은 뼈까지 시렸지만 햇살만은 따스했다.
올리브 수확 1일차. 12월 22일 목요일
밤새 머리가 너무 시렸다. 침낭으로 머리를 겨우 가리며 잤다. 7시반에 겨우 일어나 커피와 비스켓을 먹고 작업복(이라 쓰고 등산복이라 읽는다.)을 입고 내려갔다. 아저씨가 장갑도 껴야 한다며 줬다. 사실 우린 올리브 일에 대해 아무런 감이 없었다. 아저씨한테 언제가 수확시즌이냐고 물어보니 12월부터 3월이 피크라고 한다. 겨울이 수확시즌이라니 신기한 안달루시아일세.
마을로 들어가니 젊은 남자 한 명이 차에 올라탄다. 아저씨가 고용한 세네갈 출신 ‘삼바’. 바르셀로나에서부터 봐온 바지만 아무래도 유럽의 농업은 아프리카의 노동력이 많이 들어가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 동남아시아 외국인 노동자들이 오듯. “Hola” 인사를 나누고 일터로 향했다. 타운에서 차로 10분 가니 일터가 나왔다. 여기저기 똑같은 올리브 나무기 때문에 자기네 업무 구역을 어떻게 확인할까가 신기할 정도였다. 올리브 따기는 이렇게 이루어진다.
- 바닥에 큰 검정 그물 두개를 나무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펼치고 경사가 기울어진 부분은 올리브가 굴러 넘어가지 않게 잘 포개준다.
- 나무를 흔드는 기계(벌초 기계와 비슷하게 생겼다.)를 한사람이 가지에 걸고 흔들면 다른 사람은 큰 작대기로 가지를 훑으며 털어낸다. 팍팍
- 더 남은 올리브가 있는지 마지막으로 훑어낸다.
- 그물은 다른 올리브 나무 밑으로 옮긴다. 그리고 주변에 크게 떨어진 올리브들을 줍는다.
- 하루에 20~25개의 올리브 나무를 작업하면 보통 끝이 난다. 그물은 보통 6개를 사용하는데 2개 정도에 합쳐서 차 뒤에 담고 협동조합으로 간다.
- 근무시간 9 to 5. 휴식시간은 따로 없다. 12시에 간식 20분(체감 10분), 2시에 점심 그리고 3시까지 잠
- 화장실은 근처 아무데서나… (죄다 올리브 밭이다.)
알레한드라 언니가 왔다. ATV를 타고서.. 멋진 언니다. 바로 일이 시작되었다. 키케 아저씨가 나무 흔드는 기계에 시동을 건다. 언니가 그걸 들쳐매고 나무가지에 건다. 그리곤 삼바가 작대기로 팍팍 친다. 우수수수 떨어지는 검보라빛 열매들. 처음엔 우리도 작대기로 올리브 털기를 해봤지만 별로로 보였는지 둘이 한 조를 이루어 네트를 움직이라고 했다. 그 사이사이 작업이 끝난 나무에 더 달린 건 없는지 확인하고 네트 옮기고 바닥에 떨어진 올리브를 확인하고 주웠다. 그 사이 해가 뜬다. 큰 산맥들로 둘러싸인 곳이라 해가 늦게 비춘다. 두꺼운 옷 한겹 벗고 다시 업무 시작. 헉헉..
12시가 되고 나서 간식을 먹었다. 언니랑 아저씨는 큰 광주리 바구니를 가져왔고 바닥에 앉았다. 빵, 치즈, 햄, 요거트 등 본인이 먹고 싶은대로 먹으면 된다. 나도 그들을 따라 빵을 칼로 자르고 그 사이에 햄과 치즈를 끼워 우적우적 먹었다. 그리고 물 한모금 마시고 다시 일. 허리가 너무 아팠다. 내 거지체력이 너무 서글펐다. ‘나보다 열살은 더 많아 보이는 언니가 20키로는 되어보이는 저 기계를 들쳐매고 몇시간이고 일을 하는데.. 나는 왜 이리 힘든가..’ 계속 이 생각 뿐이었다. 그 사이 남편님은 언니와 아저씨가 시키는대로 요리조리 움직이고 있었다.
2시 점심이 되었다. 해가 잘 비추는 곳으로 가서 아무거나 깔개를 가져왔다. 점심은 간식의 메뉴에 더해 아저씨가 준비한 조리메뉴를 같이 먹는다. 열어보니 렌틸콩 수프다. 나는 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또 햄치즈 샌드위치를 먹었다. 그런데 그게 왜 그렇게 맛있는지.. 밥 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언니에게 드디어 질문을 했다. 어디 출신인지 궁금했는데 언니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이탈리아 사람이라고 했다. 화학공장에서 일했던 아빠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정착하면서 거기서 태어났고 어렸을때는 포르투갈에서 미국계 학교를 다녔다고 했다. 아 그래서 언니가 영어를 할 줄 알았던거다. 그리고 몇가지 서로의 농업문화에 대해 나누고는 아저씨는 저기로 언니는 반대로 갔다. 둘 다 해가 잘 비추는 곳으로. 눕고서는 잠을 청한다. 나도 청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땅바닥이 너무 차가웠다. 하지만 해는 너무 따뜻했다.
남편님이랑 주절주절 수다를 나누니 다시 일할 시간. 나무 몇개 작업을 마치고 나니 아저씨가 큰 긁개를 준다. 이걸로 나뭇가지를 제거하란다. 나무를 털때 나뭇가지와 이파리들도 같이 떨어지는데 옮겨 닮는데 큰 방해가 된다. 낑낑거리며 요리조리 모으고 버리고 하니 아저씨가 시범을 보여준다. 열심히 하고 있으니 아저씨가 다가와 네트를 ATV에 걸어 다른 네트에 옮긴다. 합쳐야 수레에 옮겨 닮기 쉽다. 그리고는 큰 고무 다라로 옮겨 담는다. 무겁고 힘들어서 나는 옆에서 보고만 있었다. 다 담고는 영농조합공장으로 출발할 시간. 아저씨가 같이 가겠냐고 물어봐서 냉큼 탔다. 마을 외곽에 있는 올리브유 공장에 왔다. 여기저기 작업을 마친 차들도 들어온다. 아저씨는 작은 트럭에 수레를 달고 왔는데 큰 트랙터도 보였다.
차를 주차하고 올리브를 아래로 쏟아붓는다. 그러면 기계가 돌과 이파리등을 제거하고 남은 올리브의 무게를 재어준다. 다 끝나면 직원이 종이증서를 가져다 준다. 얼마를 수확했다는 증서. 나중에 정산해서 돈으로 바꿔준다고 했다. 친절하시게도 올리브유 추출방법도 알려주셨는데 올리브와 뜨거운 물을 넣고 기름을 추출하고 남은 찌꺼기는 염소 등 동물 먹이나 거름으로 사용한다고 했다. 다시 일터로 돌아와 언니와 삼바의 업무 정리를 돕고 언니는 큰 비닐에 아까 정리한 올리브 나뭇가지를 담아 차에 싣고 집으로 출발했다. 그 올리브 나뭇가지들은 언니가 키우는 염소 7마리의 먹이가 된다고 했다.
집으로 가는 길이 아닌 다른 길로 차가 들어선다. 그리곤 철창을 열고는 여기로도 집에 갈 수 있다고 알려준다. 아저씨의 개인 농장 영역이었는데 허름한 건물이 있었다. 아저씨가 휘파람을 분다. 어디서 말발굽 소리가 들린다. 헐. 말이다. 아저씨는 세마리의 말을 키운다고 했다. 임신한 4살 회색말, 건장한 3살 갈색말. 그리고 눈이 안보이는 25살 할머니 갈색흰색얼룩말. 말들을 마굿간에 넣고 우리에게 집으로 가는 길을 알려준다. 아저씨는 남은 볼일을 보고 7시쯤 돌아온단다. 개울을 건너니 집이 보이고 옆집 큰 개들의 짖는 소리도 들린다. 네팔이가 앞장서서 우리를 안내한다. 아저씨가 준 열쇠를 열고 들어가 샤워는 못하니 손만 씻고 옷 갈아입고 1층 소파에 앉아 그라나다 숙소를 검색하고 예약했다. 춥다. 중앙난방방법을 배우지 않아서 떨며 한시간 기다리니 아저씨가 왔다. 계속 이런 패턴이면 안되겠다 싶어서 아저씨가 나무에 불을 피는 걸 배우러 갔다. 이리저리요리조리 하면 불이 피워진단다. 중요한건 불이 크게 계속되어지게 종이나 나무껍질 등 잘 타는 걸 초반에 잘 주입해주는 거였다. 그래야 큰 나무에 불이 붙는 이치. 알겠다고 하고 다음에 해보겠다고 했다. 어쨌든 내일 저녁엔 그라나다에 있을거니까.
그리곤 아저씨가 피자를 만들어 준다고 했다. 보통 유럽인들은 마트에서 파는 냉동피자를 사서 오븐에 데워먹는다.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파는 다른 피자들보다 맛있다. (눈물.ㅜㅜ) 하지만 아저씨는 직접 반죽을 하고 야채를 썰어넣고 참치도 넣었다. 그리곤 오븐에 넣고 우리랑 와인 마시다보니 피자 완성. 맛있었다. 아저씨에게 내일 그라나다 갈거라고 숙소도 예약했다고 했다. 그럼 일 마치고 3시에 집에 내려줄테니 준비하고 떠나하심. 오예! 일 시작 하루만에 단축근무와 휴일이 너무 좋은 그런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