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은 어느나라나 똑같은가보다. 그리고 시작된 한식솜씨 뽐내기의 서막
올리브 따기 2일차, 12월 23일 금요일 '단축근무 그리고 고향으로'
또 밤새 머리가 너무 시렸다. 침낭, 이불, 담요로 구성된 3층 보호막을 빠져나가기 싫은 그런 추위. 해뜨기 전이 가장 춥다고 했던가. 그걸 너무 느끼게 되는 케사다다. 참고로 8시반에 해가 떠서 6시에 지는 그런 패턴. 하지만 해가 뜨기만 하면 따스함이 금새 지면에 축복처럼 내려앉는다. 동절기 회사생활이 떠올랐다. 8-8시반 출근이었던 생활. 해가 뜨기 전에 자리에 앉아 정신없는 낮을 보낸 후 해가 지고 나서 퇴근한다. 사이사이 밖을 나갈 일이 있지만 해를 느끼기엔 턱없이 부족하고 요즘엔 미세먼지로 바깥활동 자체가 힘든 서울, 한국. 나아지려나. 잡생각 사이에 벌써 일터에 왔다.
어제와 다를 것 없이 다들 열심이다. 간식을 먹는데 어제부터 삼바는 같이 밥을 먹지 않는게 생각났다. 언니한테 물어보니 본인이 원해서 따로 먹는다고 했다. 아마 종교때문이리라. 세네갈은 인구 95%가 이슬람이다. 할랄이 되어있지 않은 음식을 먹지 않을테고 본인이 준비한 걸로 먹는 것 같았다. 내일부터 크리스마스 연휴라 그런지 삼바에게 일 중간중간 친구들 전화가 왔다. 묵묵히 일하던 삼바에게 엿보이는 천진한 미소. 그러고 보니 삼바는 스페인어도 할줄 안다. 세네갈은 프랑스 식민지였어서 프랑스어가 공용어인데 아마도 일하러 오려고 스페인어를 열심히 배웠나보다.
어느새 점심 시간. 오늘은 아저씨가 토마토소스와 올리브유를 잔뜩 넣은 야채볶음을 준비했다. 너무 맛있어서 열심히 먹었다. “Bueno!Bueno!”를 연발하면서.. 빵으로 도시락통까지 닦았다. 크리스마스는 유럽의 가장 큰 명절이다. 엊그제 버스터미널에서 캐리어를 든 젊은 학생들을 많이 봤고 가족을 만나 얼싸안는 장면에 가족이 보고 싶기도 했다. 아마 명절귀경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명절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국은 중국문화권이라 새해와 추수감사절은 음력으로 한다는 이야길 했고 Luna calender를 이야기 하다가 서로 무슨 띠인지도 이야기 했다. “나는 돼지고 남편님은 호랑이다.” 라고 하니 언니가 키케도 돼지라며 둘이 같다고 웃었다. 옷! 아저씨와 나는 띠동갑. 아저씨의 나이를 알게됐다. 그러더니 본인은 염소라고 했다. Goat. 하지만 12간지에 염소는 없다. 양이 있을 뿐. 언니에게 양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러고 보니 언니의 나이도 알게되었다. 헐 67년생이시다. 우리 시어머니보다 6살 어리신 분. 그런데 그렇게 체력이 좋다니.. 다시 한번 내 거지체력을 반성하게 되었다. 단축근무여도 낮잠은 챙긴다. 이러다 보니 일찍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4시가 다되서야 키케 아저씨가 그만하자며 올리브를 수레에 담기 시작한다. 다 담고 삼바에게 인사하고 알레한드라 언니와도 인사를 했다. 언니는 내일 키케 아저씨 아빠랑 같이 그라나다로 올거라고 했다. 자세히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재밌는 관계들이다.
아저씨는 어제와 같이 마굿간 앞에 우리를 내려줬다. 그리곤 네팔이를 앞장세워 집으로 향했다. 집에 가서 짐을 챙긴다. 각자 매고 다니는 작은 등가방에 필요한 것들을 담고 보조가방에 옷가지를 챙겼다. 그리고 그동안 밀린 빨래도 담았다. 우리가 묵을 곳은 2,3성급 호텔. 뜨거운 물을 팡팡쓰며 빨래를 하겠다는 의지. 옛 어머니들이 목욕탕갈때 빨래를 하는 마음이 이랬을까. 물론 우리가 갈 호텔엔 빨래 금지같은건 없을거다. 짐을 챙겨 아래로 내려오니 아저씨가 도착했다. 여기서 그라나다까지는 140km. 차로 두시간 정도 달리면 된단다. 아저씨는 가스퍼와 네팔이를 집밖으로 내보내고 집문을 잠갔다. “보고싶을거야..애들아” 네팔이와 가스퍼를 그냥 두고 오는 아저씨가 신기하기도하고 매정하게도 느껴졌다. 차가 출발하고 네팔이가 달려온다. 엉엉 마음이 왜이렇게 아픈지. 그 장면만 생각하면 아직도 눈가가 찡하다. 어느 순간 네팔이가 안보인다. 내가 뒤를 계속 쳐다보니 아저씨가 걱정하지 말란다. 원래 동물들은 바깥생활을 하는 거라며.. 흑
편안히 뒷자리에 혼자 앉아 바깥구경을 했다. 올리브 산 뒤로 해가 뉘엿뉘엿진다. 그러고 보니 다음주면 올해도 가고 나도 한국나이로 35살이다.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도 있었는데 지금 뭐하는건가 싶다가도 그래도 재밌어서 다행이다 생각한다. 지금 내 나이는 남은 나이 중에서 가장 젊은 나이니까. 차가 한창 올라가더니 내리막길이 펼쳐진다. 갑자기 눈 덮인 산맥이 보인다. 와! 아저씨가 sierra nevada라고 했다. 말로만 듣던! 스페인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아저씨를 따라 그라나다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중간에 깜빡 졸다 일어나니 어느새 큰 고속도로에 다달았다. 도착 막판엔 귀경길 정체같은 것도 느껴졌다. 도심안으로 진입하고 나서 아저씨는 어느 호텔 옆에 세워주더니 여기서 일요일 오후 4시에 만나자고 했다. 알았다고 하고 우리 숙소로 들어갔다. 체크인을 하고 방에 들어가는 길에 느꼈다. 우리 신발에서 흙이 엄청 떨어지고 있음을.. 깨끗한 대리석위에 후두두둑. 방에 들어가자마자 신발을 벗었다. 앉지도 않고 씻었다. 씻으려고 온 애들처럼. 빨래도 잔뜩하고 여기저기 널어놨다. 급 허기가 진다. 식당을 찾아 나섰다. 방랑하던 중 미슐랭 어쩌고도 발견했지만 땡기지 않는다. 다음 골목에서 발견한 “Los Andaluces Restaurante” 우리가 사랑하는 “menu del dia”가 보인다. 기웃기웃하니 안에서 웨이터아저씨가 맛있다고 들어오라고 한다. 오홍.
9시 즈음. 한창 저녁 전이라 자리가 꽤 있다. 안내 받아 앉고 나서 가장 저렴한 15유로 짜리 세트를 시켰다. 나는 샐러드+돼지고기튀김. 남편님은 연어무스+돼지고기 구이 그리고 각자 적포도주 한잔씩. 디저트로는 과일과 푸딩을 시켰다. 기대 이상의 음식들이 나온다. 포도주 맛도 좋다. 올리브 절임도 잔뜩. 기분좋게 잘 먹고 나와서 집에 왔다. 티비에서는 “PAPA Noel”이 나오는 귀여운 만화를 하고 있었다. 뻐근한 기분을 느끼며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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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나다 여행 1, 12월 24일 토요일 '이슬람과 유교가 여행객을 구원한 성탄전야'
이 호텔을 정한 이유는 저렴해서도 있지만 아침을 주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저렴한 호텔들은 아침을 주지 않는다. 워낙 다들 밤 늦게까지 먹고 마셔서인지 아침을 먹지 않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리라 넘겨짚어본다. 남이 차려주는 아침을 먹는게 얼마만인지.. 단촐하지만 맛있게 먹고 숙소를 나섰다. 커피만 빼고.. 오늘은 알함브라 궁전을 구경하기로 했다. 습관처럼 옷을 껴입고 나왔는데 덥다. 걷다가 카페를 찾았다. 온 몸에 젖산과 피로물질들이 소용돌이 치는 기분이다. 아득해지는 정신을 붙잡고 커피를 시켰다. 마시고 나니 좀 낫다. 다시 알함브라로 돌진! 골목을 올라가다가 길을 물어물어 궁전 뒷문에 도착했다. 올라가는 길에 가족끼리 온 한국인 여성분을 만났다. 바깥분은 미국사람이고 얼마전부터 독일에 살아서 성탄절을 맞아 스페인에 여행을 오셨단다. 그러면서 왜 이렇게 스페인에 한국 사람 많냐고 물어오셨다.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스페인이 나와서 일거에요.”라고 대답해드렸다.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그리고 그라나다까지 한국 사람이 많기도 많다. 다들 열심히 다닌다. 예매해둬서 편히 티켓팅을 마치고 1시반에 입장했다. 알함브라에 있는 나자리에스 궁전은 입장시간이 정해져 있다. 우리는 3시. 근처 정원과 요새를 구경하니 어느새 3시이고 궁전 입장줄이 생겼다. 우리 앞뒤로 다 한국가족들이다. 말조심해야한다.
알함브라에 간다고 하니 엄마가 궁전 천장 사진을 잘 찍어서 보내라고 했다. 엄마는 1년전 가을, 친구분들과 스페인, 포르투갈 패키지 여행을 다녀오셨는데 왜 그런 부탁을 하셨는지 의아했다. 그런데 입장하고 보니 그 이유를 알았다. 아랍 미술의 섬세함과 정교함은 인정해줘야 한다. 어떻게 저렇게 조각했을까.. ‘핀셋으로 했을거야’ 라는 생각을 해봤다. 나자리에스 궁전은 아름다움에서 이스탄불의 토카프 궁전을 압도했다. 물론 규모는 토카프가 더 크지만. 다 보고 나와서 ‘General Life’ 구역으로 갔다. 정원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라나다에 살면서 산책으로 오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심을 거른 우리는 배고팠다. 식후경이 맞다. 서둘서둘 마무리하고 버스를 타고 시내에 도착했다. 숙소에 가서 어제 사놓은 맥주와 감자칩을 우선 먹고 저녁을 고민하자고 했다. 먹고 나니 졸음이 밀려온다.
한숨 자고 씻고 나오니 9시 즈음. 거리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식당들이 모두 문을 닫거나 닫고 있다. 맙소사. 어제 분명히 키케 아저씨한테 물어봤을때는 걱정말라며 토요일까지는 다 한다고 했는데 이브 저녁은 가족들이랑 먹나보다. 다 닫았다. 절망하며 골목을 뒤지고 있을 때 구원의 빛이 보인다. Kebab. 터키 이후에 한번도 먹지 않았지만 고맙다. 먹어야 한다. 남편님과 공모해봤다. 작은 피자 1과 치킨 케밥 2을 시켜 숙소에서 티비보며 먹기로 결론! 일사천리로 주문하고 나는 와인을 찾아 떠났다. 열려있는 작은 가게로 들어갔다. 중국인 아저씨가 나를 반겨준다. 5유로 짜리 와인을 사서 돌아가니 남편님은 케밥을 들고 온다. 야호! 돌아가는 길에 스페인 중년 여성분이 “이거 어디서 샀나요? 다 닫았네요”라고 물어봤다. 거의 울먹이는 표정으로.
아랍과 중국이 우리를 살려준 그런 성탄전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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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나다 여행 2, 12월 25일 일요일, ‘컴백홈과 비빔밥’
일어나니 9시반. 남편님은 언제나 그렇듯이 식당에 먼저 가있다. 항상 아침에 일찍 일어나시는 지라 거실, 혹은 공용공간에 먼저 나와 공부하시거나 글을 쓰신다. 참으로 성실정직하신 분이다. 하지만 난 아침잠이 많아 늦게 일어난다. 간혹 이런 날 기다리다 지쳐 깨우러 오시는 경우도 있다. 여튼 눈꼽떼고 내려가 아침을 먹었다. 난 아침을 먹어야 잠이 깨는 스타일이다. 역시나 커피는 맛이 없어서 밖에서 마시기로 했다.
오늘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4시에 아저씨를 타고 돌아가는 스케쥴. 외출에 앞서 한번 더 샤워를 했다. 오늘 저녁에도 못할게 확실하니까. 출발하는 날 아저씨가 추천해준 산니콜라스 전망대에 가보기로 했다. ‘mirador de san nicolas’. 아저씨 말로는 미셸 오바마도, 아들 부시도 거기서 사진을 찍었다고 했다. 그 이유는 알함브라 전경이 한 눈에 펼쳐지므로 배경삼아 셀카를 찍기 좋기 때문. 걸어가려다 너무 피곤하여 버스를 타기로 했다. 쉽게 도착했다. 햇살 흡수하다가 밑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며 알함브라를 보기로. 내려가니 사람이 많다. 가격도 보통 가게의 2배가 넘는다. 하지만 커피가 급하니 마시기로. 명절 대목을 맞아 바쁜 웨이터는 늦게 커피를 가져다 준다. 나는 책을 보고 남편님은 스페인어 공부를 한시간여 하고 나섰다. 점심을 먹기 위해 헤매었다. 그러다 발견한 신라면 사진. 가게에 들어가니 신라면 등 농심 라면을 판다. 오뚜기는 왠만해선 잘 없다. 하지만 이런 작은 중국가게들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신라면 4개를 집어 들었다. 총 4.8유로. 이것 또한 고마운 가격이다. 어제 사놓은 쌀, 간장과 함께 산골 케사다에서 우리에게 좋은 식량이 되어줄 것이다. 이제 진짜 점심을 먹어야 한다. 배고프다. 아까 올라가는 길에 봐둔 ‘La Cueva’에 가서 세트 메뉴를 시킨다. 립스테이크, 샐러드, 햄, 맥주 두잔, 디저트 다 합해서 25유로다. 돌아가면 순한 집밥만 먹을테니 정크한 것들을 마음 편히 흡입하기로 한다. 다 먹고 나니 벌써 3시 반이다. 호텔로 돌아가 맡겨놓은 보조가방을 찾고 4시에 맞춰 약속장소에 나갔다. 아저씨 차가 있다. 앞자리엔 알레한드라 언니가 있다. 돌아갈 때는 다 같이 돌아간다. 재밌었냐고 물어본다. “Si, si”
성탄절 명절 음식이 궁금해 무얼먹었냐고 물어보니 칠면조에 여러 맛난 음식들을 먹었다고 한다. 성탄전야 만찬과 성탄절 아침 만찬 이렇게 두번 먹는다고 했다. 키케 아저씨의 어머니의 음식솜씨가 아주 좋다며 우리를 위해 남긴 케잌을 주었다. 그리운 한국 음식을 먹었냐고 물어보길래 맛있는 안달루시아 음식을 많이 먹었다고 하니 본인들은 한끼를 일식당에서 먹었다고 한다. 유럽 사람들은 스시, 마끼 등 일식을 엄청 고급음식으로 생각한다. 그래봤자 우리나라 김밥보다 못한 재료들도 있는데.. 안되겠다. 오늘 저녁엔 비빔밥이다!
케사다로 돌아가 어느 집 앞에 차가 멈춰선다. 대문을 여니 개들이 우르르 나온다. 엇 네팔이와 솔틴이다(솔틴은 알레한드라 언니의 멍멍이 이름이다.) 아.. 츤데레 키케 아저씨.. 이렇게 다 맡겨놓을 궁리를 해놓고는 차갑게 버리고 가는 척 한거다. 그런데 네팔이는 어느 순간 사라졌다. 아저씨는 찾아올거라며 집으로 간다. 우리는 방으로 올라가고 아저씨는 볼 일이 있다고 간다. 아마 말들, 염소들 보러 가는 걸거다. 우리는 아저씨에게 우리가 저녁 준비하겠다고 하고 밥도 하고 양파, 당근도 볶았다. 그리고 바르셀로나에서부터 애지중지 들고 다니는 고추장도 꺼냈다. 그런 우리를 보더니 아저씨가 집에 들고간 여행가방을 가지고 오더니 무언가를 우르르 꺼낸다. 깨, 하얀콩, 미역 등등 아시아 식재료 들이다. 뭐지 이 아저씨. 그러더니 자기 텃밭에 가보지 않겠냐며 물어본다. 그럴거면 밝을때 가자고 하시지. 랜턴을 머리에 끼고 따라갔다. 집 마당 바로 밑에 펼쳐지는 작지만 실한 텃밭. 양배추, 브로콜리, 상추를 받아들고 들어왔다. 오늘은 우선 상추만 쓰기로. 양푼이 없으므로 큰 웍(wok)에 갓한 밥을 깔고 볶은 채소, 계란후라이, 잘게 썬 상추를 착착 올렸다. 그리고 가스불에 구워 바삭하게 만든 김을 부셔서 작은 접시에 담았다. 이제 퍼포먼스 시간. 아저씨 앞에서 고추장을 넣고 슥슥 비볐다. 신기해 하는 아저씨. 그리고 각자 접시에 덜어주고 김가루와 깨 솔솔 마무리.
한입 먹은 아저씨는 매우 만족해 한다. 스페인 사람들 특히 남부 사람들은 매운걸 좋아한다. 다 먹고 나서 설거지도 우리가 했다. 갑자기 부엌에 들어오는 아저씨. 본인 식량 서랍에서 스시용 밥, 김, 소바 등을 보여준다. 다 써도 된다고 한다. 그때는 몰랐다. 비빔밥이 아저씨의 오리엔탈푸드욕구에 점화한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