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늙는다. '웡커'에 나온 휴 그랜트를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누구나 안다. 젊고 파릇파릇할 때 커 보였던 개인 간 외모의 격차는 나이가 들면서 점점 줄어든다. 줄어들다 어쩌면 결국에 모두가 하나의 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근데 이건 외모뿐 아니라 여러 신체 기능에도 어느 정도 적용된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비슷한 패턴으로 비슷한 양의 와인을 거의 10년간 아내와 마시고 있는데, 2년 전부터 회복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다. 이뿐 아니다. 지금 들어오고 있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갑자기 뛴다거나, 신호등 녹색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갑자기 뛸 때도 내 몸은 내게 신호를 보낸다. 왼쪽 발목의 통증으로. 워워, 그렇게 금방 뛰는 건 아니지라며 말이다. 그리고 이젠 뭐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인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는 것 같다. 특히 몸과 관련해 예전에는 당연했던 것들이 이젠 더 이상 당연한 게 아니다. 노안은 일찌감치 조금씩 시작됐다. 6-7년 전부터 눈이 조금씩 불편하다고 느끼곤 했지만 타고난 시력이 좋아 불과 2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1.2 혹은 1.5를 여전히 유지했다. 하지만 작년부턴 이 마저도 깨지고 말았다. 작년 여름에는 동네 산책가의 평행봉에서 그저 살짝 내려왔을 뿐인데 오른쪽 종아리에 통증이 느껴졌다. 그 후 몇 개월이 지났고 오랜만에 딸을 업었는데 그 부위에 다시 한번 통증을 느꼈다. 병원에 한 차례 방문해 치료를 받긴 했지만 몇 개월이나 지난 지금도 그 기분 나쁜 시큼한 느낌이 완전히 가신 건 아니다. 예전 JTBC에서 방영한 ‘눈이 부시게’라는 드라마에서 갑자기 노인이 돼 버린 김혜자가 친구들에게 이런 얘길 한 적 있다.
“너희들한텐 당연한 거겠지만 잘 보고 잘 걷고 잘 숨 쉬는 거, 우리한텐 당연한 게 아니야. 되게 감사한 거야”
아직은 신체나이가 충분히 젊다고 믿고 있지만, 나 역시 신체 기능이 조금씩 기능이 떨어지고 있다는 걸 이제는 서서히 받아들이고 있다. 결국 우리 모두는 시간이 흐르면서 감각과 운동능력이 떨어진다.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우리 모두는 결국 각자의 신체적 장애를 경험하는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장애와 관련해 내 머릿속 편견은 이런 거였다. 누군가는 선천적으로 장애를 갖고 태어날 수도, 살면서 사고로 장애를 입을 수도 있다는 정도 말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눈과 귀, 그리고 팔과 다리 혹은 허리, 노년에 보통 찾아오는 뇌와 관련된 질병으로 인한 인지 능력 등에 이상이 생기는 게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거였다.
나이가 들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됐지만 지금의 회사에서 '접근성 향상'이라는 기능과 관련된 자료를 보다 위와 비슷한 내용을 접한 적이 있다. 그 자료에 참여한 동료들은 이렇게 말했다. "결국은 모두 나이가 든다. 그러면서 인지(생각/기억/정보처리), 듣기, 이동, 말하기와 보기에 문제가 생긴다. 40대 중반이 되면 노안으로 인해 안경을 쓰는 이가 늘어나기 시작하고, 60대 중반쯤 되면 1/3이 청력과 관련된 크고 작은 문제를 안기 시작하는데 70대 중반이 되면 거의 절반 정도로 늘어난다. 결국 누구나 인생의 어느 지점에 이르면 이러한 접근성 향상과 관련된 기능을 사용해 혜택을 보게 될 거다"는 것을 말이다.
이런 고민과 생각이 개별 회사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온라인 게임 세상은 마냥 젊은 이들만을 위한 공간일 것 같고 장애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심할 거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콘솔 플랫폼의 경우 '접근성 향상'이라는 내용으로 이런 부분을 많이 신경 쓰고 있다. 실제로 주요 콘솔 대부분과 미국의 주요 IT 플랫폼의 경우 접근성 향상과 관련한 사이트와 기능 제공이 있을 뿐 아니라 피드백을 주고받는 곳도 마련하고 있다. 제도도 있다. 미국의 경우 영상/비디오에 대해서는 'CVAA (21st century Communications and Video Accessibility Act of 2010)'라는 법률에 따라 온라인 영상물에는 반드시 자막을 넣어야 한다. 또, FCC (Federal Communications Commission)'s accessibility rules에 따라 장애를 가진 이들이 게임 내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에 대해 접근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있다.
소위 선진국(?)이라는 곳이 어떨 때 보면 참 설렁설렁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근데 이런 걸 접할 때면 이 친구들 사유의 시선이 참 높구나 하는 생각이 진심으로 들기도 한다. 이렇게 또 하나 배운다. 장애와 관련된 지원이 어떤 특별한 소수를 위한 편의가 아니라 결국 우리 모두를 위한 거라는 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