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는 특히 음악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셰익스피어 작품을 소재로 만든 오페라만 200개가 넘는다는군요. 그중에도 로미오와 줄리엣은 음악가들에게 상당히 매력적인 소재였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제목만으로도 프로코피에프 Prokofiev의 발레곡, 차이코프스키 Tchaikovsky의 환상 서곡, 벨리니 Bellini의 오페라, 구노 Gounod의 오페라, 베를리오즈 Berlioz의 합창교향곡 등 대작이 많습니다. 레너드 번스타인 Leonard Bernstein의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도 <로미오와 줄리엣>을 각색해서 만든 작품입니다. 무대를 현대 미국으로 옮겨 뉴욕 웨스트사이드 빈민가에서 폴란드계 갱단과 푸에르토리코계의 갱단이 충돌하는 극본으로 각색했습니다.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기반으로 콜 포터 Cole Porter가 작사 작곡한 <키스미 케이트>도 뮤지컬의 대표작입니다. <라이언킹>도 <햄릿>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라고 하지요. 셰익스피어의 영향을 받은 음악을 제대로 소개하려면 책 한 권을 따로 써야 합니다.
베를리오즈와 관련해서는 특별하고도 극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1827년 프랑스 파리에서 <햄릿>의 공연이 있었는데 오필리아로 분한 배우가 해리엇 스미슨 Harriet Smithson이었다고 합니다. 셰익스피어의 대표적인 사랑 공식처럼, 연극을 보던 베를리오즈가 이 배우를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집니다. 문제는 스미슨이 베를리오즈에게 큰 관심이 없던 겁니다. 그는 스미슨에게 연애편지를 써서 연달아 보내고 스토커 수준의 구애를 하지만, 응답이 없습니다. 스미슨은 전성기의 인기 여배우이고 베를리오즈는 무명 음악가였으니 답장이 올 리가 만무하지요. 베를리오즈는 열정적이고 몽환적 성향이 강한 감성적 인물이었나 봅니다. 이때 겪은 사랑의 열병과 실연의 아픔을 바탕으로 작곡한 독특한 교향곡이 <환상교향곡>입니다. 환상교향곡은 부제가 ‘어느 예술가의 삶에 대한 에피소드’입니다. 베를리오즈 자신의 자전적인 스토리를 각 악장마다 주석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환상교향곡은 5개 악장의 대형 관현악곡인데 제4악장의 제목이 ‘단두대로의 행진’입니다. 제5악장은 ‘악마들의 밤의 꿈’이고요. 제목부터 심상치 않지요. 작곡자가 직접 쓴 제4악장에 대한 주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랑이 거절되었음을 확인한 작곡가는 아편으로 자살을 기도한다. 그러나 복용한 양이 치사량에 이르지 못해 죽지 않고 환각에 빠진다. 그는 애인을 살해한 죄로 사형을 선고받아 단두대로 연행되어 처형당하는 꿈을 꾼다. 때로는 음울하고 거칠며, 때로는 화려하고 당당한 행진곡에 맞춰 처형자들이 행진한다. 그들의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숨죽이며 사라진다.’
<환상교향곡>은 전체 연주 시간이 1시간에 가까울 정도로 긴 편이지만 클래식 음악의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들어보기를 권합니다. 교향곡의 역사에서 독특한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4악장과 5악장은 헤비메탈이나 사이키델릭 음악의 원조라 할 만큼 강렬합니다. 베를리오즈는 피아노를 연주할 줄 모르는 자신의 약점을 탁월한 문학적 상상력으로 보완한 듯합니다. <환상교향곡>은 베를리오즈의 출세작입니다. 그는 5-6년 후 <환상교향곡>의 연주회에서 스미슨을 다시 만나게 됩니다. 이번에는 유명해진 베를리오즈가 달리 보였는지 스미슨이 먼저 사랑을 고백했다고 합니다. 스미슨은 아일랜드 출신으로 불어를 하지 못했는데 불어로 사랑한다고 말했답니다. 베를리오즈는 영어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두 사람은 결혼합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못했고 이혼하고 맙니다. 환상과 현실은 달랐습니다.
베를리오즈는 오필리아와 햄릿의 죽음을 묘사하는 세 개의 노래 <트리스티아> Tristia, 그리고 <템페스트를 기반으로 한 환상곡>, <리어왕 서곡>, 합창교향곡 <로미오와 줄리엣>, 오페라 <베아트리체와 베네딕트> 등 셰익스피어로부터 소재를 가져온 많은 작품을 작곡했습니다. 베아트리체와 베네딕트는 <헛소동>의 남녀 주인공입니다.
오페라의 황제 베르디는 셰익스피어를 찬양한 대표적 음악가 중 한 사람입니다. 그는 4대 비극을 오페라로 만들려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맥베스>와 <오셀로>를 오페라로 탄생시켰지요. 베르디는 <맥베스>를 ‘인류가 창조한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라고 칭했습니다. <맥베스>는 어네스트 블록 Ernest Bloch도 오페라로 발표했습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Richard Strauss와 슈포어 Spohr는 관현악 버전의 <맥베스>를 만들었지요. <오셀로>는 로시니 Rossini의 오페라도 있고 드보르작 Dvorak과 하차투리안 Khachaturian의 관현악곡이 있습니다.
베르디는 <리어왕>의 작곡에도 의욕적으로 임해 상당 부분 진전이 있었다고 하는데 대본과 극장과의 문제로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베르디는 리어왕의 복합적인 성격을 오페라로 표현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햄릿>에 대해서도 구상을 했지만, 오페라의 구성적 한계 때문에 실패했다고 알려집니다. 그의 마지막 유작도 셰익스피어한테서 가져온 <폴스타프>입니다. 여기서 폴스타프는 <윈저의 즐거운 부인들>이라는 작품의 주인공입니다. 엘리자베스 1세가 폴스타프라는 인물에 매료되어 셰익스피어에게 폴스타프가 나오는 다른 작품을 써달라고 의뢰해서 탄생한 작품입니다. 폴스타프는 희극적인 인물이어서 그런지 여러 작곡가가 소재로 삼았습니다. <윈저의 즐거운 부인들>외에 <헨리 4세>와 <헨리 5세>에 등장하는 폴스타프의 캐릭터로 본 윌리엄스, 살리에리, 엘가 등이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베르디가 실패한 햄릿을 주제로 한 오페라 창작에 성공한 작곡가가 있습니다. 프랑스의 작곡가 앙브루아즈 토마 Ambroise Thomas입니다. 다수의 유명 작곡가들이 실패한 햄릿을 오페라로 만든 자체만으로도 평가를 받을 만한데 작품성도 뛰어나다고 인정받고 있습니다. 단지 원전의 구조를 변형시키고 축약했다는 비난도 받았습니다. 오페라 <햄릿>에서는 햄릿이 부왕의 원수를 갚고 왕권을 회복하는 정반대의 플롯으로 바꾼 것이지요. 토마의 <햄릿>은 원작과 다른 한계에다 오페라의 전통이 약한 프랑스 태생이라는 점에서 대중적인 인기가 높지는 않았으나 현대에 들어 재평가되고 있습니다. 특히 오필리아가 미쳐서 물에 빠져 죽는 장면을 그린 매드 신 Mad Scene이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차이코프스키도 햄릿을 주제로 작곡을 의뢰받은 적이 있지만, “이 위대한 비극의 심오함과 햄릿이라는 인물의 개성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능한가”라고 말하며 주저했다고 합니다. 차이코프스키는 결국에는 <햄릿 서곡>을 작곡했습니다. 프로코피에프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대성공을 거둔 후 다른 비극의 오페라에 도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심오한 4대 비극의 깊이와 인물을 오페라로 만들기는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리스트의 교향시 <햄릿>과 쇼스타코비치의 부수음악 <햄릿>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리어왕>의 오페라는 핀란드에서 시벨리우스의 계승자로 여겨지는 작곡가 아울리스 살리넨 Aulis Sallinen이 1999년에 처음으로 완성했습니다. 그전에는 오페라 <리어왕>이 없었다는 얘기니까 리어왕의 성격을 오페라로 표현하는 것이 난제는 난제였던 모양입니다. 드비시 Debussy는 <리어왕>을 모음곡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영국의 작곡가들인 랠프 본 윌리엄스 Ralph Vaughan Williams, 로저 퀼터 Roger Quilter, 벤저민 브리튼 Benjamin Britten 등은 셰익스피어의 텍스트로 수많은 가곡을 썼습니다. 문학과 노래를 결합한 이런 형태의 가곡을 예술가곡이라고 부릅니다.
음악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한여름 밤의 꿈>입니다. <한여름 밤의 꿈> 하면 생각나는 음악이 있지요. 결혼행진곡입니다. 모차르트보다 더 천재였다는 멘델스존 Mendelsohn이 작곡한 음악입니다. 음악 <한여름 밤의 꿈>은 서곡과 12개의 부수음악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서곡은 멘델스존이 17세에 작곡했고 나머지 12곡은 17년 후에 작곡했습니다. 결혼행진곡은 나중에 작곡한 12곡 중 하나입니다. 브리튼은 <한여름 밤의 꿈>을 1960년에 오페라로 남겼습니다. 베버 Weber의 오페라 <오베론 Oberon>도 <한여름 밤의 꿈>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오베론은 <한여름 밤의 꿈>에서 요정의 왕입니다.
베토벤은 셰익스피어를 읽었을까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중 <템페스트>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제17번 소나타입니다. 이 소나타를 출판할 당시 베토벤의 처지가 <템페스트>의 주인공 프로스페로의 처지와 비슷했다고 합니다. 제23번 소나타 <열정>도 템페스트와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베토벤의 제자 중 하나가 이 두 작품의 의미를 물어본 적이 있는데 베토벤의 대답이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읽어보라고 했다는 증언이 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는 노래나 음악이 연주되는 장면이 많습니다. <십이야>의 시작 장면은 셰익스피어가 음악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오르시노 공작이 등장해 음악을 말합니다.
“음악이 사랑의 양식이라면 계속해다오.
질리도록 들어 싫증이 나버리면,
사랑의 굶주림도 또한 사라지고 말 거 아니냐.
다시 한번 들려다오, 아스라이 사라지는 선율.
귓가에 감미롭게 들린다.
흡사 제비꽃 피는 언덕 위에 미풍이
몰래 꽃향기를 훔쳐 싣고 오는 듯하다.”
셰익스피어와 관련된 음악이 그렇게 많고 다양하다는 사실은 놀랄 정도이지만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셰익스피어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이고 주요 작품의 영향력이나 소재와 인물의 다양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니까요. 셰익스피어의 언어는 시적이고 음악적인데다가 극적인 요소가 풍부합니다. 게다가 셰익스피어의 유명세에 얹어 좋은 음악을 만들면 음악가로서의 명성도 함께 올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