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77년 뱀띠 동갑이다. 20세 때. cc로 만나서 9년 연애 후 결혼했다. 24년을 동거 동락하였다. 꼼꼼하고 자상한 남자 친구여서 많이 의지했었다. 내가 남편에게 언제나 기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주말에 아이와 가고 싶은 곳을 가자고 하면 반대 않고 동행했다. 나를 먼저 챙겨주는 남편, 집 정리를 나보다 잘하는 남편, 그의 모습에 내 어깨가 어쓱하기도 했다. 그가 나를 계속 배려하고 아끼며 늙을 줄 알았다. 세월은 흘렀고 나도 남편도 변했다. 지금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쏟을 에너지가 없다.
김미경 강사가 "남편이 나의 안티다." 이 말을 듣는데, 내 고개가 자동으로 앞뒤로 흔들고 있다. 점점 서로를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
지금 같이 살고 있는 그가 20대의 그 사람일까?
그가 아는 나는 과거의 그녀가 맞을까?
우린 많이 달라져있다. 외모도 생각도.
서로의 일상을 나눈 지가 언제일까?
요즘 서로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르니,
공감도 어렵고, 궁금하지도 않다.
각자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킨 시간이 10여 년 지났다.남편은 생계를 책임지고, 나는 두 아이와 가정을 돌보았다
나도 이젠 남편 바라기만 하는 여자가 아니다.
애 둘의 엄마고 일하는 여성이다. 그래도 내가 힘들 땐, 남편이 `이런 것쯤은 알아서 해줘야 하는 거 아냐? 하는 `기대가 불쑥 올라온다. 그냥 기대일 뿐이다. 현실이 될 수도 있지만 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 그 마음은 내가 잘 토닥여서 흘려보내야 한다. 내가 풀어내지 못한 화는 엉뚱한 곳에서 폭발한다. 그리고는 끝이 우울감이다.
교회 가는 주일 아침이었다. 그날은 목장 야유회가 있어서 딸의 자전거와 인라인 등을 차 트렁크에 실어야 했다. 차를 일요일에 사용하려면 아침 9시 전에는 차를 이동시켜 놓아야 한다. (남편은 토요일 밤에 게임을 하다가 일요일 새벽에 잠이 들었다.) 아침에 트렁크를 비우고물건을 실어두면 좋겠다. 남편에 대한 기대가 스멀스멀 올라온다.(우린 교회에서 월주차 중이다. ) 남편은 잠을 자게 두고 나는 튀어나오는 입을 넣으며 차 열쇠를 들고 교회 주차장으로 향한다. 주말은 집 근처 학교 운동장을 사용한다. 그곳에 주차를 했다. 오전 10시쯤 차를 집 앞으로 가져가 아이들의 인라인을 트렁크에 넣었다. 자전거는 무거워서 남편에게 부탁했더니 자다가 일어나서 해결했다. 그것 만으로도 고맙다. 그리고 둘째와 나는 차를 타고 교회로 향했다. 남편은 혼자 준비해서 교회를 왔다.
야유회에서의 남편은 잠시도 돗자리에 앉지 않고 아이들과 놀았다. 내가 몇 년 전이라면 아침의 상황은 안 봐도 비디오다. 내가 아침에 엄청 눈으로 총을 쏘았을 것이다. 이불을 치우면서 일어나라고 짜증 냈을 것이다. 아침에 못 일어나면 저녁에 빨리 잠 안 자고 뭐했냐고 온 몸으로 투덜거렸을 것이다. 오늘은 습관적인 반응을 반복하지 않았다.
이 남자는 자신의 에너지가 채워지면 기분 좋게 기운을 사용한다. 그리고 자신의 에너지를 채우는 시간이 꼭 필요한 사람이다. 타인과 함께 있는 시간에 에너지가 빨리 소모되는 사람이다. 그렇게 잘 놀고 온 아이들과 남편이 집에와서 휴식하는 동안에 나는 남산산책을한 시간 할 수 있었다.
아침에 혼자 운전하면서 기분이 좋았다. 내가 운전할 수 있는 것에 감사했다. 만약 뒤늦게라도 운전을 배우지 않았으면 오늘 아침은 남편 잠 깰 때까지 턱받이 하고 기다렸을것이다. 하루가 언짢은 기분의 연속일 가능성이 높다. 기대하고 옆에서 시계만 바라보면서 내 마음을 지옥으로 만들지 않은 것! 내가 할 수 있는 상황에 더욱 집중하고 '남편은 피곤한 것이다'라고 이해하고 재충전할 수 있게 둔 것!
남편이 나를 이해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울 때가 있었다. 어김없이 그 생각의 끝은 눈물이었고 그 엔딩은 나를 가련한 여주인공으로 세팅되었다. 이제 나는 상황이 닥치면 나를 주어로, 나의 행동을 서술어로 만들어 보려 한다. 그리고 알고도 돕지 않는 게 아닌 정말 모르는 남편을 이해하고, 그에게 알 수 있는 언어로 전달할 수 있도록 힘써본다. 남편이 싫어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관찰한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눈빛과 생각을 가진 부부로 늙어가기를 소망한다. 사이가 좋은 늙은 부부가 목적이기에 나의 행동 멀리서 바라본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