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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르샤 May 16. 2022

두려움 저 너머에 선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새로운 일을 맡게 되었어요.

할 사람은 없고, 해야 하기는 하겠는데 난 부족한 거예요.


못 할까 봐 걱정되어 뒷걸음질치고 싶어 져요.


그런데 더 이상 물러 날 곳이 없는 거예요.


누군가가 대신해줄 수는 없고, 내가 하지 않으면 많은 이에게 피해가 돌아가는 그 순간.


부족한 모습인 날 향해 내가 손가락질하고 싶은 순간.


저에게 그런 밤이 있었어요.


아주 깜깜했던 밤.



인정하기는 싫은데, 돌이켜보면 그때가 성장 타이밍이었어요.


못하는 나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때!


제가 겸손해지더라고요.


맞아요. 그런데 진짜로 힘들고 아팠어요.



46년 살면서 나의 뇌에 처음 명령하는 일을 하게 되었어요.

교회 부활절. 성극 준비로 음향을 맡은 겁니다.


대사를 외우지 않아서 좋고, 드러나지 않은 일이라 큰 비중을 두지 않았습니다.


배우들의 연극에 맞춰 플레이!!! 만 하면 될 것이고,


연습도 많이 필요하지 않겠죠? (이것은 큰 착각!!!)


무지하면 일을 쉽게 생각하는 오류에 빠집니다.


연극 15분 동안 7곡만 플레이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교회 어린이 부실에서 2주 동안 배우들과 호흡을 맞췄어요. 부활절 전날 저녁 7시.

최종 리허설이 교회 본당에서의 일입니다.


내일이 공연 날인데, 최종 리허설인데.


연극의 음향이 엉망진창입니다.


그 담당이 누구냐고요?


네. 바로 접니다.



1번 노래 다음 2번 곡이 바로 자동 재생되어 꽝!


나와야 할 부분에 음향이 재생되지 않아서 꽝!


음악이 서서히 소리가 꺼져야 하는데, 급격히 커져서 꽝!


배우가 칼을 뽑는 장면에서 두둥~~ 효과음이 나와야 하는데, 타이밍이 맞지 않아서 꽝!


찬양 155번 오르간 반주를 8분짜리를 붙여서 16분으로 편집했는데, 중간에 음악이 뚝 끊어지게 들려서 꽝!


마지막 엔딩곡은 플레이가 안 되는 파일 오류로 꽝!



총체적 난국이었습니다.


음향 버튼을 덜덜 떠는 손으로 up down 합니다.


오른손은 mp3 파일을 더블 클릭합니다.


순간 정신 줄 놓으면 하하하 무대가 조용합니다.


음향이 누가 쉽다고 했나요?



연출가님이 "무대에서 대사를 못하면 배우의 실수라고 하지만, 스텝이 제대로 못하면 방송 사고라고 말해요"라고 말합니다.


긴장하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때부터 목이 타 들어갑니다.


다행히 조명 담당 동원 청년이 mp3 파일을 다시 편집해서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꽝! 꽝! 꽝!으로 음향 하나도 안 맞았는데,


밤 10시가 되었습니다.


팀원들이 내일 송귀옥 집사 교회에 안 나오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말 한마디 못 하겠고 얼굴은 울상입니다.



잘 안되어 속상했습니다. 내가 할 줄 모르겠는데,


나는 왜 이걸 한다고 해가지고ㅜㅜ


모르는 건 배워서라도 팀에 힘이 되고 싶었는데,


제가 연극 전체를 망칠 수도 있습니다.


배우들이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는지 아는데,


배우들의 노력을 빛나게 해주는 음향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됩니다. 급기야 집에 오는데,


눈물이 났습니다. 속으로 '해도 안 되잖아`라고 말합니다.


집 앞에서 소리 내어 펑펑 울어버렸습니다.


이 상황에서 뿅 하고 사라지고 싶었습니다.



저녁 10시 30분.


전문가 동원 청년이 음향을 편집하여 제게 카톡으로 보냈습니다.


(끊어지는 음악이 혹시 있는지 모두 들어 봐야 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


찬양 155장 "십자가 지고" 오르간 소리가 흐릅니다.


15분을 오르간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하얀 A4용지 가운데 세로로 선을 죽 그었습니다.

음향 기기처럼 숫자를 쓰고, 연습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연습. 둘째와 연극 대사를 리딩 합니다. 동시에 음향 올리고 내리기와 재생하기를 연습했습니다.


연습이 거듭되자 자신감이 솟았습니다.



대사를 읽으며 음향 연습을 10번 반복했습니다!


충분한 연습이 되고서야


내가 나의 문제를 알 수 있었습니다.


파악된 문제 2가지입니다.


첫째, 대본 숙지가 안 되었습니다.


둘째, 15분 동안 집중력을 유지하지 못합니다.



아! 스텝은 원고를 외우는 것뿐만 아니라 배우의 감정까지 읽어낼 수 있어야 하는구나.


그래야 클라이맥스가 어디인지, 음향을 다운시켜야 하는 곳이 어디인지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두 손이 앞으로 모아지며 "겸손"해졌죠.


연극에 집중을 안 했다는 것이 나에 대한 팩폭입니다.



두둥!!! 연극 날 당일.

마우스를 책상 위에 올려두고 음향기기처럼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했습니다. 대본과 음향! 제 머릿속에 가득 차 있습니다.


이건 내가 해내야만 해!


1부, 2부, 3부의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첫 타임 공연 중에 이상한 음악이 나옵니다.


놀란 토끼눈으로 아래를 보니 20번 키가 올라가고 있습니다.


19번 음향 버튼을 올려야 하는데ㅜㅜ


실수 두둥~




2부와 3부는 다행히 잘 마쳤습니다.


연출가님의 손끝만 바라보았습니다.


나를 향한 손을 위로 올리면 음향기를 올리고,


주먹을 쥐면 음향기기를 멈춰요.


손을 내리면 음향기를 낮춥니다.


얼마나 집중했는지 연출가의 손끝 밖에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연극 커튼콜 소리가 나올 때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기쁨은 나의 속상했던 마음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두려움 너머의 일을 하길 잘했습니다.


다른 사람과 힘을 합하여 작품을 만드는 일은 제게 큰 은혜입니다.



정재승 작가의 [열두 발자국] 책에


자신을 끊임없이 새로운 환경에 던지려는 시도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다양한 시도를 하는 중에 기회들이 있고,


여러 가지 우연의 조합으로 혁신이 생긴다는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 그냥 던져지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럴 때는 누군가를 돕는다는 마음으로 손을 들어보자."


전문가가 괜히 전문가가 아닙니다. 슬쩍 흉내 내려 했다가 된통 당한 기분입니다. 대학시절 무대에서 수화 공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조명과 음향을 담당했던 친구들에게 26년이 지나서야 감사 표현하고 싶어 졌습니다.



두 손이 앞에 모아지고, 겸손한 자세가 됩니다.


내가 못하는 것에 속상해서 펑펑 우셨습니까?


펑펑 울어요. 그리고 속상한 마음 쏟아 냅시다.


자. 다 울었으니 이제 시작할 때입니다.



두려움, 낯선 환경과 친구가 되어 보아요.


두려움 저 너머에 나의 선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8loyH3NNP1U&t=727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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