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인없는 미국 시골에서 버텨내기
내가 다닌 미국 대학교는 워싱턴주 여러 도시에 캠퍼스를 보유하고 있었다. 메인 캠퍼스는 큰 도시에서 5시간은 머나먼 도시에 있었다. 주변에 큰 도시라곤 찾아볼 수가 없고, 오로지 캠퍼스에서만 점이 맘에 걸려 그나마 큰 도시에서 가까운 작은 캠퍼스로 가기로 했다. 마침, 내 전공도 메인 캠퍼스보다 내가 가고 싶은 캠퍼스에서 훨씬 양질의 수업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메인 캠퍼스를 버렸다. 그때 나의 귀여운 작은 캠퍼스에 내가 유일한 한국인 학생이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조금 더 망설였을까.
차를 살 돈도 면허증도 없던 나는 캠퍼스 바로 앞 하숙집에 방 한 칸을 빌렸다. 집주인 아저씨는 이혼한 뒤 본인이 쓰는 방을 제외한 모든 방을 학생들에게 세를 주며 쏠쏠한 용돈벌이를 하는 키가 엄청나게 큰 백인 아저씨였다. 나와 화장실을 공유하며 다른 방에 살고 있던 남학생들을 그리 크지도 않던 집에서 마주친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집주인 아저씨만이 내가 걸어 다니며 만드는 삐걱거리는 마룻바닥 소리를 신호 삼아 용을 쓰고 나와 마주치려 했다. 성별도, 직업도, 자라 온 환경도, 정말 가능한 모든 게 나와 달랐던 아저씨와 할 말은 별로 없었지만, 본인도 심심하신 건지 세입자에 대한 호기심인 건지 끊임없이 말을 걸어주는 아저씨한테 고마웠다. 솔직히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다.
한국은 둘째치고 아시아에 대해서도 전혀 지식이 없어 보이는 집주인 아저씨를 뒤로하고 매우 들뜬 마음으로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어떤 수업을 들어가든, 어떤 빌딩을 둘러보든, 백인 천지였다! 이럴 수가. 그나마 몇 명 있는 동양인들은 서로 보이지 않는 코너로 돌 때까지 '너는 어쩌다 여기 있게 된 거야.?' 라는 눈빛을 주고받을 뿐. 생각지도 못하게 굉장히 '소수'가 되어버린 처지가 당혹스러웠다. 동양인은 둘째치고 다른 인종 자체가 별로 없는 캠퍼스란걸 깨닫고 난 후엔 과연 내가 여기에 잘 녹아들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이 밀려들었다. 특히 생활비를 충족하기 위해선 무.조.건 알바를 해야 했기 때문에 더 걱정되었다. 학생비자 규정상 유학생들은 오직 캠퍼스에서만 알바할 수 있었고, 그 일을 찾는 건 오롯이 나의 역량이었기에, 더욱더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등록해 둔 모든 수업에 들어가 보고 캠퍼스 내에 존재하는 모든 편의 시설을 돌아다녀 본 후 멍하니 침대에 누워있던 나에게 떠오른 한마디….
'아... 나 망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