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들른이 Oct 04. 2021

애완 토마토, 토실이 (2)

토실이 장례식

 토실이와 이별하기로 한 이후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굳이 이별을 해야 한다면 좀 더 아이의 교육에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토실이를 보내주는 행사를 치르기로 했다. 쉽게 말해 '토실이 장례'를 치르기로 한 셈이다. 아들 역시 토실이를 보내주는 행사를 치르자고 하니 또 그 특유의 반짝이는 눈을 격하게 끄덕인다. 항상 저 눈빛에 속으면서도.... 좋다. 부모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첫 번째로 한 것은 토실이를 묻을 장소를 정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자주 가는 공원에 묻어주려고 했지만 아들은 격하게 반대했다. 아들은 토실이를 묻은 후 한 번씩 보러 가기 위해서라도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집 근처에 묻을 만한 곳이 없었기 때문에 산으로 가자는 아빠와 집 근처 화단을 고집하는 아들과의 치열한 논쟁은 딸이 껴든 끝에 화분으로 극적으로 타결이 되었다.


 두 번째 단계는 장례물품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아이들과 다이소에 가서 토실이를 묻을 화분과 흙을 샀다. 그리고 화분에 이름을 써 붙일 견출지를 하나 샀다. 물건을 다 사고 돌아오려는 찰나 '토실이를 보내면 고구마가 외로우니까 고구마 친구를 사야' 한다는 아들의 강력한 요구에 결국 고구마를 하나 더 사야 했다. 웬만하면 이런 충동적인 억지를 받아주는 편은 아니지만 이번엔 거의 외통수인 상황인지라 이길 방법이 없다. 아이들은 이런 기회를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다. 어떻게 이 타이밍에 그런 요구를 하는지.


화분에 묻힌 토실이


 세 번째가 가장 중요한 절차다. 바로 화분에 토실이를 묻는 과정이다. 나름 경건하게 진행을 하려고 했지만 7살 아들은 그 순간에도 장난이 번뜩이나 보다. 처음에는 토실이를 묻는 거니까 꼭 자신이 흙을 담아야 한다고 명분을 내세워 결국 흙 봉지를 본인이 잡았다. 살살 잘 담는다 싶더니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했고 결국 화장실을 화분 토사로 뒤범벅을 만들고야 말았다.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지만 다행히(?) 폭발하지 않고 넘어갔다. 아들 녀석도 본인이 뭔가 선을 넘었다고 느꼈는지 슬쩍 눈치를 본다. 이 미워하지도 못할 녀석 같으니.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한 가지 장점은 확실하다. 인내심을 키워준다.

 

 마지막으로 토실이를 수목장으로 모셨다. 사실 아이에겐 너무 직접적일 것 같아 '무덤'이란 단어를 일부러 쓰지 않았다. 하지만 토실이를 묻고 돌아오는 계단에서 아들이 토실이는 죽었고 저게 무덤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고 내심 놀랐다. 아무래도 유튜브를 너무 많이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다. 애가 알면 안 되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 


토실이 수목장


 불과 삼일의 인연이었지만 하나의 생명(?)과 인연을 맺고 끝맺음까지 하는 경험을 통해 아이가 부디 한층 성장했으면 한다. 토실이에겐 미안하지만 아빠에게는 아들의 성장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오전에 장례를 치른 후 오며 가며 토실이를 보러 가는 걸 보면 주책맞은 아빠는 괜히 뭔가 해준 것 같아 뿌듯하다. (사실은 오다가다 보면 어쩌다 잠깐 떠오르는 것 같지만...... 솔직히 아빠가 별거 아닌 일에 오버를 떤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보람된(?) 장례를 마치고 편안한 주말을 맞이하려는 데 아들의 혼잣말이 들렸다. 


"그런데 다음 주에 어린이집 선생님이 과일 친구 또 줄 것 같은데."


응? 이 자식이..... 

뭔가 손을 대면 안 될 일에 손을 댄 건 아닐까? 등골이 오싹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애완 토마토, 토실이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