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혼자 산다는 것
브런치가 자꾸만 작가님의 글이 그리워요 흑흑 하는 푸시 알람을 보내던 중에 트위터가 바이럴이 되어서 갑자기 조회수가 폭발했음. 관종이니까 예전에 쓴 원고 하나 꺼내봄. 독일 살면서 설움 폭발 시절에 쓴 글입니다.
모든 것들이 지치는 날이 있다.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여행을 너무 오래 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끼니를 챙기고, 설거지를 하고, 집안일을 하고, 씻고, 그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들이 물컵의 마지막 물방울처럼 모든 것을 넘치게 만들 때가 있다.
외국에 혼자 산다는 건 많은 경우 홀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것이다. 첫 직장 생활 조언을 들을 수 있는 부모님이나 주변 어른도 없고, 입학이나 졸업 같은 이벤트를 함께 할 가족도 없다. 생활하다 막히는 부분들을 친구들한테 물어봐도, 그런 일들을 꼼꼼하게 챙기지 않아 잘 모르거나, 외국인인 나와는 입장이 달라 자국민에게만 해당하는 정보를 말하기도 한다. 주변에 비슷한 처지 사람이라도 없으면 인터넷 검색만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창구다.
여행은 설레고 즐겁다. 원래 가지고 있던 걱정거리들도 내려놓고, 보고 싶지 않지만 봐야만 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잠깐 내려놓을 수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새로움으로 가득 찬 보석 같은 하루를 내 의지대로 값지게 써 내려갈 수 있다. 각자의 이야기를 담은 많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된다. 내가 살아오던 내 삶의 맥락에서부터 단절되어, 새로운 장소에 몰입하게 된다. 조금 성가시고 귀찮은 일들이 일어나더라도, 집에 돌아가면 전부 즐겁게 떠들 수 있는 추억이 될 것이다.
여행이 어찌 즐겁기만 하랴. 낯선 장소에서 길을 찾기 위해 애를 써야 하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로 다음 여행 장소로 옮겨가야 하며, 빨래 한 번 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고, 소매치기와 같은 범죄 타깃이 되기도 한다. 예상치 못한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이 터지기도 하고, 기쁘지만은 않은 여러 시선과 관심을 받기도 한다. 현지 언어를 몰라 전혀 엉뚱한 물건을 사기도 하고, 시킨 음식이 맛이 없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이 즐거울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모든 여행은 끝나기 때문이다. 모든 고난과 역경, 즐거움이 가슴 설레는 이야기로 언젠가 포장될 수 있는 것은 여행이 끝나고 집에 돌아갔을 때 그 추억의 자락을 특별한 하나의 사진으로 서랍 속에 고이 넣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하지 않으면 되고, 지루하고 재미없는 부분은 집에 돌아간 이후로 미룰 수도 있다. 여행은 반짝이는 기억들로만 남기면 된다. 그러면 실수도 에피소드가 되고, 오해도 추억이 된다.
하지만 너무 길어져버린 여행이 지쳐버린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여기저기 치여 잔뜩 보풀이 인 내 영혼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독일은 한국과 너무나도 다른 나라라, 어떤 말을 하더라도 항상 잔뜩 설명을 해야 한다. 옛날이야기들을 추억처럼 되새기며 공감을 얻을 수도 없고, 내가 꿈꾸는 미래를 말할 수도 없다. 그 이야기를 듣는 상대가 듣고 싶은 이야기도 아니고, 이해할 수도, 공감할 수도 없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낮 열두 시면 고등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는 독일인은 야자에도 낭만이 있었다는 걸 절대로 이해할 수 없고, 별생각 없이 사는 그들은 마음 한편에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항상 가지고 사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독일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아직 희망과 낭만, 인류 공통성에 대한 믿음이 남아 있었을 때는 이런 마음들을 설명해 보려고 노력도 했지만, 두 사람이 너무 다른 경우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려는 각고의 노력 없이는 공통의 이해에 도달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일평생을 날씨 이야기나 하면서 살아갈 순 없지 않은가.
나는 중학교 때 잠을 자지 않고 들었던 신해철의 라디오가 내 많은 생각들을 만들어냈음을 말하고 싶고, 내가 내린 크고 작은 선택들이 내 삶을 이런 방향으로 끌고 올 지 몰랐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가끔은 수능 이야기를,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하고 싶고, 내가 사랑하는 판타지 소설이니 웹툰이니 하는 것들을 나누고 싶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면 그걸 유머로 승화시켜 웃어넘기고 싶고, 남북회담 같은 것들이 얼마나 감동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지 스스로도 놀랐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내 삶이 공감이 아니라 설명의 영역이 되고, 그것이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기간 동안 지속되리라는 걸 문득 알아차렸을 때의 해결책을 나는 떠나기 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 마음을 달래려 거짓 위로를 해 보기도 한다. 괜찮아, 나는 한국 살 때도 마음 맞는 사람을 찾기 쉽지 않았어. 나는 그때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어. 그러니 괜찮아. 하지만 그렇게 끝없이 말해진 마음이 괜찮을 리 없었다. 잠깐의 위안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집에 갈 수 없는 이 지난한 여행 안에서는 아니었다. 내가 가질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찬란함을 스스로 포기해버리는 건 나를 부정하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모든 여행은 언젠가 끝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천상병 시인의 시처럼, 이 모든 삶이 여행이라고. 언젠가는 끝날, 잠깐의 세상 들름이라고. 그렇다면 내 손에 쥐어진, 내가 잃어버린 모든 것들에 굳이 연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쥔 것은 언젠가 사라지고, 잃어버린 것은 언젠가 다시 찾게 되겠지. 언젠가 어떤 단위에서든 여행이 끝날 적에, 그때 아름다웠노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면 족하게 산 것이다. 그러면 된 것이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피아노를 치고, 맛있는 음식을 해 먹고, 친구랑 브런치를 먹고, 늦은 오후 햇살을 쬐고, 내 책을 쓰고, 유튜브에 무언가를 올리고, 농지거리를 주고받을 사람 몇이 있으면, 그러면 된 것이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담백하게. 언젠가는 떠날 사람처럼, 유한한 삶을 살아가며 끝을 아는 사람처럼, 그렇게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면. 언젠가는 무언가가 올 거라고 살면, 내가 정말로 바라는 미래를 펼치기 위해 가만가만 내 현재를 모아 가면, 그러면 되는 것이다. 내가 견딘 모든 시간들이 언젠가는 찬란한 빛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또 하루를 버틴다. 정말 신명 나서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시간이 언젠간 오기를 바라면서, 기대하지도 않았던 깜짝 놀랄 만큼 빛나는 날들이 오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