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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지 Jan 12. 2021

[여행기] 하르방과 바다
- 금능으뜸원해변

[취재/글/사진] [제주 이야기]


하르방과 바다 - 금능 으뜸원 해변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한낮, 금능리에 도착한 나는 가장 먼저 바다로 달려갔다. 푸른 햇살 아래 한없이 투명한 바다를 보고 있자니 그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나를 사로잡았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바다를 즐기고 있다. 누군가는 계절을 잊은 듯 해수욕을 즐기거나 서핑을 하기도 하고, 모래밭에 누워 선탠을 하는 외국인이 있는가 하면 캠핑을 하러 나온 가족도 있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웨딩 스냅사진을 찍으러 나온 커플은 환한 미소를 흩날리고, 한가로이 해변을 거닐며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의 발걸음은 느긋하다. 사람들은 각자만의 방식으로 아름다운 해변을 즐긴다.



그런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던 중, 나는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석상을 발견했다. 언뜻 보면 길쭉한 바위가 해변에 박힌 것 같은 모양새다. 눈길을 사로잡는 석상에 대한 의문은 허무하게도 다음날 찾아간 해변에서 쉽게 해결되었다. 



썰물 시간대에 다시 찾은 으뜸원 해변. 물이 빠진 자리에 숨어있던 원담이 모습을 드러냈다. 원담 위로 우뚝 서 있는 돌하르방이 보였고, 나는 그제야 전날 바다 위에 우두커니 서있던 석상이 바로 이 돌하르방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원담은 밀물과 썰물의 차이를 이용하여 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바다에 쌓아 올린 돌담인데, 나는 그 모습을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바다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동그란 돌담 가장자리를 돌며 무너진 돌을 다시 쌓고 있는 한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아버지 뭐 하세요?
그냥 이거 치워.


올해로 86세인 이방익 할아버지는 매일 원담에 나와 흐트러진 돌담을 정비한다. 할아버지는 일명 원담 할아버지라 불리는데, 자발적으로 으뜸원 해변의 원담을 관리하고 있어 붙은 별명이다. 금능리가 아니더라도 제주에는 많은 원담이 존재한다. 그러나 뭉개지고 흐트러진 다른 지역의 원담과 달리 이곳의 원담은 할아버지 덕분에 그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다. 


저거 이방익 할아버지라고 불러


원담 앞에 세워진 돌하르방을 가리키며 할아버지는 뿌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원담에서 잡은 고기로 자식들을 대학까지 보냈다는 할아버지. 자식들이 다 커버린 지금 고기를 잡아 돈을 벌 이유는 없지만, 제주의 전통과 문화를 지키기 위해 할아버지는 60년째 매일 원담에 나오고 있다. 


이제 바다에 댕기는 사람 없어요. 내나 가지.


원담이 바로 보이는 집 앞 골목에 앉아 할아버지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지금은 먹고살기가 편해 원담을 기억하고 활용하는 사람이 없다며, 원담의 가치가 사라져 가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어느새 물이 들어오기 시작한 바다를 바라보며 할아버지는 깊은 생각에 잠긴다.



바다와 원담을 지키느라 거칠어진 할아버지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고된 세월이 느껴지는 두 손 앞에 뽀얗기만 한 내 손이 부끄러워진다. 바다는 한없이 내어준다고 했던가. 그간 바다에서 무언가를 얻어가고 즐기는 것은 당연하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바다가 내어준 것에 보답하듯 오늘도 바다를 돌본다. 푸른빛으로 반짝이는 바다와 그 속에 소담히 자리한 원담은 내겐 예쁜 추억이 되었고 할아버지에겐 삶의 터전이 되어 여상히 남아있다. 






http://naver.me/5rC4Z5IB









     

     카카오 탭에 올라갔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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