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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혀크 Feb 10. 2023

진상 보존의 법칙을 견뎌라

나의 온라인 쇼핑몰 사업기 3)

 '본 투더 충청도'인 나는 굉장히 느긋한 성격이다. 게다가 어릴 적에 젠틀하신 부모님과 함께 살다보니, 그야말로 차분하고 소심하고 화를 잘 내지 못하는 성격으로 진화해왔다. 어찌보면 공무원을 했으면 소명의식을 갖고 정말 열심히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종종 하게 된다. 그런 내가 사업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하나같이 이랬다.





"니가?"





 사업을 하면서 고객, 공급처 등 다양한 사람과 소통을 해야할텐데 그런 면에서 내 성격은 이 일에 적합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생각보다 누군가와 직접적으로 소통을 해야하는 경우는 극히 적었다. 온라인 쇼핑몰이기 때문에 고객들과 얼굴을 맞대지 않았고, 문의 및 답변도 글을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사업을 시작한 아주 초창기에, 나는 전 제품을 '위탁'으로 판매하고 있었다. 내가 공급처에 발주를 넣으면, 공급처에서 직접 고객에게 보내주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고객에게 전화 연락이 왔다. 특정 제품을 구매했는데 외관에 오염된 부분이 있었다며 컴플레인을 제기한 것이었다. 너무나도 날카롭고 날이 서있는 말투였다. 제품의 검수 역시 공급업체에 맡기는 시스템이었기에 위탁 판매의 단점이 드러나는 첫 순간이었다. 나는 너무나도 죄송한 마음에 즉시 새 제품으로 재발송을 약속드리며 재차 죄송함을 말씀드렸다. 그리고 얼마 뒤, 나는 별점 1점짜리 리뷰를 마주하게 되었다. 





 물론, 고객 입장에서 오염된 제품을 받았기에 기분이 나쁠 수 있는 것을 100번 이해한다. 내가 그런 상황이었어도 짜증이 났을 것이고 리뷰를 작성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고객의 리뷰 내용은 그야말로 상상력에 근거한 것이었다. 내용까지 아주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중고를 판매한 것 같다는 둥 쓰레기 제품이라는 둥. '제품의 외관'에 '약간의' 오염이 있었고 기능에 문제가 있는 것은 전혀 아니었지만 제품 전체를 싸잡아 욕하고 있었다. 게다가 재발송 조치가 늦은 것도 전혀 아니었다. 





 그리고 그 고객과 다시 소통을 하는 과정에서 고객은 자기가 너무 심했던 것 같다며 리뷰를 지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리뷰는 버젓히 게시되어 있었고, 네이버에 문의해보니 자신이 작성한 리뷰라고 해도 일주일 후에 삭제할 수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즉, 나에게 굳이 리뷰를 삭제했다는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처음 경험해보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에 멘탈이 부서지는 소리가 실시간으로 들렸다. 





 그 일이 있고 며칠 동안은 정말 힘이 들었던 것 같다. 혼자 일하고 있었기에 누군가와 이 일을 상의하거나 공유할 수도 없었기에 답답하고 목이 막힌 기분이었다. '내가 정말 저런 말을 들을 정도로 잘못한 걸까?' 라는 생각이 머리 속을 지배했다. '쓰레기'라는 말이 계속 맴돌았다. 그러던 중 엄마에게 안부를 묻는 전화가 왔고 나는 무심결에 그 일을 말씀드렸다. 그리고 엄마와 대화를 나누면서 도출된 결론은 





"세상에는 저런 사람도 있으니까 너무 마음 쓰지 말자"





 라는 아주 단순하고 명료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결론은 지금까지도 내가 사업을 해나가면서 아주 커다란 도움을 주고 있다. 내가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누군가를 대하려고 하더라도 절대 이해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있다. 그들은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고, 수긍하지 않는다. 인정하는 것을 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내 감정을 소비하지 않으려는 훈련을 한다. 정해진 절차에 따라 처리하고 감정을 이입하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에겐 쉬울 수도 있지만, 상대방의 반응에 많은 신경을 쓰는 나에겐 절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하나 더. 내가 누군가에게 진상이 되지 않기 위해 신경을 쓴다. 나는 저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 내가 누군가의 잘못에 대해 지적할 수는 있겠지만,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는 주지 말아야지. 





 이 일을 한지 2년이 조금 넘어가는 요즘, 저렇게 심한 인상을 남기는 고객은 없다. 그리고 고객과의 소통에 있어서 스트레스도 거의 받지 않는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진심으로 사과하고 빠르게 대처한다. 진상과 마주할 일이 적어진 이유는 내 대처가 빨랐기 때문이었을 수도, 내 사과가 진심으로 느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진심으로 누군가를 대하고, 내 손을 벗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훌훌 털어버리는 것. 이 것이 이 일을 마주하는 가장 기본적인 신념이 아닐까 싶다. 






<에필로그>



 일을 하러 마장 호수 옆에 있는 카페에 가는 도중에 얼음물에 잠겨버린 나무를 보게 되었다. 평소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장면이지만, 유독 오늘은 이 나무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 멈추게 되었다. 이 날씨에 얼음물에 들어간다고 해도 10초도 버티기 어려울 텐데, 이 나무는 주어진 상황에 묵묵히 맞서고 있었다. 심지어 다리가 없어 물 밖으로 이동할 수도 없는데도 말이다. 


 


 오늘 이 장면을 보며 다시 한번 굳건한 멘탈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된다. 묵묵히 겨울은 견딘 이 나무는 봄이 되어 푸른 잎을 펼쳐낼 것이다. 나도 이런 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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