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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D 문화 브로셔 Apr 02. 2020

나단은 어떤 선지자였을까

정치로 다시 보는 성서 인물

선지자 나단에 대해서 일반 기독교인들에게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취했을 때 많은 양을 가진 부자가 양 한 마리밖에 없는 가난한 사람의 양을 빼앗는 비유를 들며 다윗을 비판하고 밧세바로부터 낳은 아이가 죽을 것이라고 예언한 강직한 선지자로 알려져 있다. 설교에도 자주 인용되는터라 잘 알려진 내용이다. 그렇게 나단이라는 선지자는 대충 다윗이 밧세바라는 남의 부인을 취한 것을 비난한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고 그래서 옳은 소리를 하는 기세가 곧은 선지자로 알려져 있다.      

다윗에게 간언 하는 나단

잘 인지하지 않고 있는 나단에 대한 다른 기록을 한 번 보자. 사실 나단에 대한 기록 중에서 그 정점은 다윗 말기 권력 투쟁의 시기에 가장 두드러지는데 누가 봐도 다윗의 첫째가는 후계자인 아도니야를 제치고 솔로몬이 왕이 되도록 한 일등 공신 역할을 한 것이다. 다윗의 아들 중 첫째부터 셋째까지는 모두 죽었고 아도니야가 넷째 아들이었다. 즉 다윗이 왕위를 물려줄 시기에 실제 장자의 위치에 있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성경에도 다윗에게 한 번 흠 잡힌 적도 없었다고 나온다. 일반적인 상식상 아도니야가 차기 왕권을 이어받을 일순위로 여겨지는 것은 당연했으리라. 당시 권력의 핵심인 군대장관인 요압과 대제사장인 아비아달이 그를 따랐다고 나온다.    

 

바로 그때 나단이 다른 뜻을 품고 밧세바를 찾아간다. 나단은 밧세바에게 솔로몬이 왕이 될 수 있는 계책을 제시한다. 밧세바가 다윗에게 솔로몬에게 왕위를 물려주도록 설득하면, 그때 나단이 들어서면서 확정 짓도록 분위기를 만들겠다는 계략을 제시한 것이다. 그 계략은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고 다윗은 솔로몬을 후계자로 선포한다. 아도니야는 아무래도 간이 큰 인물은 못 되었나 보다. 하긴 그동안 형들이 그리 다윗에게 반항하고 사고칠 때도 조용히 아무 힐책을 받지 않을 정도였다니 얼마나 모범생에 꼼생이 스타일이었겠는가. 군권을 잡은 요압과 종교적 지배권을 쥔 아비아달을 자기편으로 가지고서도 바짝 쫄아서 도망을 친다. 솔로몬은 지혜의 왕으로 알려져 있으나 꽤나 강한 카리스마를 가진 왕이었다. 결국 아도니야를 비롯한 두 명을 모두 칼로 쳐죽인다. 그리고도 여럿의 정적들을 제거하고 나서야 왕권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 됨으로써 나단은 솔로몬이 왕이 된 후에 일등 공신으로 떵떵거리며 살았을 것이고 그 아들들도 솔로몬 치하에서 중요 보직을 맡는 것으로 나온다.  

솔로몬에게 왕위를 주도록 간청하는 밧세바

바로 이 사건에서 매우 이상한 점이 보인다. 사실 나단 밧세바에게는 철천지 원수다. 자신을 비난하기도 하고 자신의 첫 아이가 죽도록 저주한 사람이기에 미워할 수 밖에 없는 인물이었다. 그런 나단이 어떻게 밧바에게 가장 믿을만한 측근 선지자가 되었을까. 밧세바에게 저렇게 조언하고 협력할 정도로 친밧세바 선지자이면서 동시에 이 전에 밧세바 건으로 다윗을 비난했다는 것이 의심스러운 것인데, 그렇게 비난했다면 밧세바와는 철천지 원수 지간이었어야 할 텐데 둘이 이렇게 정치적으로 가장 가까운 측근일 수가 있는가?   

   

나단은 정말로는 어떤 사람이었을까를 생각해본다.

첫 번째 가설은 나단이 용감하게 다윗에게 간언한 사건이 정치적으로 성공한 후에 자신을 영웅시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가설이다. 누군가가 지어낸 소문에 대해 나단이 그대로 내버려두면서 사실처럼 전파되어버린 일일지도 모른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데 솔로몬 치정기에 나단의 급격한 영향력에 대한 전설이 생겨난 것일 수 있다.     

 

두 번째 가설은 그렇게 자신을 비난한 선지자임에도 밧세바는 용서하고 품에 안았다는 가설이다. 당시 종교적인 권위 집단은 제사장들이었다. 선지자는 그저 재야에서 주장을 하는 사람일 뿐이다. 물론 나단이 다윗에게 총애를 받았던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중심 종교 세력인 제사장은 아니었다. 밧세바는 정당성이 약한 후첩이었고, 솔로몬도 차기 왕권을 이어받을 위치와는 전혀 거리가 먼 상황이었다. 중앙의 정치세력들은 밧세바를 대접하기보다는 간음한 자로 더럽게 여기며 천대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밧세바의 상황에서 권세를 잡은 종교인들과 친하기는 어려웠고, 나단과 같이 외부에 있는 선지자라도 잡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밧세바가 어떻게 나단과 친하게 되었는지는 성서에 나오지 않는다. 나단이 중앙 정치에 전면으로 나오는 것은 솔로몬을 왕위에 세우는 장면에서부터이다.     


그가 원래 그렇게 옳은 소리를 왕 앞에서도 당당히 할 만큼의 정의의 사도였다가 나중에 변절한 건지 옳은 소리를 한 것이 후일 만들어진 거짓된 전설인 건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나단이 다윗과 솔로몬 왕정 시기에 꽤나 권력 주변에 어슬렁 거리면서 대접받은 종교 지도자였던 것은 분명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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