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를 염두에 두고 첫 집을 사다.
텍사스는 뉴욕에 비해 월세가 훨씬 저렴했다. 달라스 시티 다운타운에 1 베드룸 콘도를 렌트하는데 $1300 - $1500이면 무난히 렌트를 할 수 있었다. 뉴욕 시티 다운타운의 1 베드룸 콘도가 최소 $2500 정도 했던 것 같다. 달라스 시티 다운타운은 레스토랑, 카페, 마트들이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있었고 트롤리라는 작은 열차도 다녔기에 우린 이곳을 선택했다. 남편 회사에서 회사차를 한대 제공해 준다고 하니 좀 멀리 갈 때는 그 차를 타기로 하고, 우린 따로 차를 구매할 생각은 아직 없었다.
뉴욕에서 달라스로 이주를 마치고 남편이 회사에 적응하기도 전에, 타주 이사가 힘들었던 건지 내 몸에 이상이 왔다. 응급실도 다녀왔지만 원인 모를 고통에 병원비만 1만 불가량이 깨졌다. 고통이 잠시 잦아들 즈음 나는 한국에 잠시 들어갔다. 사실 한국은 거의 매년 갔으므로 타주 이사를 마치고 잠시 쉬어가는 시간으로 다녀올 생각은 있었는데 아픈 다음 가게 될 줄이야. 한국에서도 딱히 치료를 받을 건 없었다. 여러 가지 검사를 해서 병명은 알았으나 평생에 한번 이렇게 아플지, 또 아플지 알 수 없기에, 평생 이 약을 먹을지는 내 판단이라고 했다. 난 약을 많이 지어왔지만 먹진 않았다. 돈을 모으면 쓸 일이 생기고, 돈 쓸 일이 생기면 돈이 모아지기도 하니 참, 돈이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게 맞는 듯하다.
한국에서 충전을 하고 달라스로 돌아왔다. 그때가 9-10월 즈음이었나. 남편도 어느 정도 새로운 직장에 적응을 하였고, 달라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지역 환경에도 적응해 나갔다. 텍사스 사람들은 미국 사람들답게 길거리에서 눈이 마주치면 인사도 쉽게 하고 친절한 분위기였다. 이게 하나의 텍사스 문화이기도 하다. 뉴욕은 매우 반대적인 분위기이기에 우리는 텍사스의 분위기가 좋았다. 관광지가 아니니 사람들이 아주 북적이지 않는 것도, 집이 큰 것도, 도로가 깨끗한 것도, 생각보다 365일 덥지 않은 것도.
그즈음, 우린 집을 구매하여 자산을 늘려갈 고민을 했다.
뉴욕에서 룸메이트 생활을 하며 돈을 모은 것이 이렇게 빛을 발하는 것 일까
라는 생각은 아직 일렀다. 인생에서 처음 갖는 빚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일 숫자 계산을 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숫자의 범위를 찾아서 그 가격대의 집을 봤다. 통상 집값의 20%를 다운페이하고 80%를 30년 모기지로 집을 사는데, 나는 빚을 지지 않고 모아둔 돈으로만 집을 사는 방법과 약 40%가량 다운페이하고 60%만 모기지를 받아 집을 사는 걸 고려했다. 우리가 모은 돈과 결혼할때 양가에서 주신 돈을 모두 합치면 그 정도로도 충분히 우리에게 좋은 집을 살 수 있긴 했다. 그리고 최대 5년 정도 우리가 살고 그다음부터는 투자집으로 돌려서 월세를 받는 것도 고려했기 때문에 아주 비싼 집보다는 월세가 모기지를 커버할 수 있을 정도의 집 가격을 선정했다.
어느 날, 아침 내내 그러한 고민으로 숫자를 만져보다가 급 은행으로 갔다. 집 앞 10분 거리 체이스 은행으로 가서 모기지 론 담당자를 만나 남편의 연봉, 계좌에 있는 돈, 내가 원하는 모기지 금액 등을 넣고 프리어프루벌 레터를 받아왔다. 이 정도 금액의 집이면 몇 프로의 이자율로 우리에게 모기지를 승인해 주겠다는 내용의 서류다. 백날 천날 혼자 숫자만 두들기고 있으면 뭐 하겠는가. 아무리 혼자 계산기를 두드려도 은행이 나에게 얼마를 빌려줄지는 은행 문을 두들겨봐야 알 수 있는 거다. 하지만 이것도 해본 사람 아니면 하기가 어렵다.
고작 은행 가서 상담받는 정도로 생각하면 오산. 내 정보를 넘겨주고 내 크레딧리포트를 열어보는 것이기에 이 과정만으로도 내 신용점수는 하락한다. 신용 점수가 낮으면 모기지 이자율은 더 올라간다. 그래서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모기지 쇼핑을 해서 나에게 가장 유리하게 이자율과 혜택을 주는 은행을 찾는다. 그러면 신용 점수는 한번 하락하는 것에 그친다. 사실 높은 점수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이 정도 점수 하락은 별 큰일이 아니다. 우린 지금껏 신용 점수를 잘 관리해 왔기에 이 점수 내려가는 것이 별 영향은 없었지만 여러 사람의 경험을 듣다 보면 뭐 하나 하기도 어려운 법이다.
무튼 그날 나는 칼을 뽑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