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2주만에 끝내자마자 코로나가 터졌다. 우리가 살고 있던 아파트 구조의 콘도에서 전원주택 구조의 집으로 옮기고, 가구 구입과 배송이 끝난 후 코로나가 터졌다. 그리고 남편의 회사는 100% 재택근무를 공지했다. 사무직은 아니었지만 남편은 매일 아침 잠시 오피스 출근을 한 뒤 대부분 외부 업무를 봤다. 그리고 1주일에 하루는 오전 미팅을 했었다. 코로나가 터진 뒤로 미팅은 온라인으로 바꼈고, 매일 오전 출근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몇몇 눈치 보던 직원들은 여전히 매일 출근을 했었다.
이 즈음, 우리에게 아기가 찾아왔다.
남편은 회사 눈치를 볼 겨를이 없었고, 나의 입덧을 함께 겪으며 매일 아기 방을 꾸몄다. 물론 일은 더 열심히 하며 회사에서 인정도 꽤나 받았었다. 내가 출산을 한 것은 우리가 집을 사고 1년 뒤 즈음이다. 코로나 때문에 산부인과 검진을 혼자 들어갔어야 했기 때문에 남편은 매순간 감동을 함께 하진 못했지만, 부모님이 오실 때 마스크를 쓰며 꽤나 고생을 하셨지만. 남들과 같이 공용 현관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고, 재택근무 덕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우리집을 산 뒤, 1년 이내로 투자집을 하나 더 마련해볼까 했던 나는 코로나와 임신으로 인해 계획을 보류했다. 집값이 대폭 상승했기에 모기지와 재산세 등의 비용을 월세 수익으로 메꿀 수 없다는 판단에 투자집은 사지 않았다. 그러나 모기지 이자율이 2프로대로 낮아지자 우린 캐쉬아웃 리파이낸스를 알아봤다. 미국은 고정이율을 제공하는데 15년, 30년 기간을 준다. 내가 갖고 있던 모기지 이율이 3.2프로 정도로 나쁘지 않았지만, 시장의 모기지 이자율이 2프로대 후반까지 낮아지고 집값이 상승하자 나는 다시 모기지를 받는 방법을 알아봤다. 그때 모기지 회사들도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다양한 이벤트를 펼쳤다. 나는 모기지를 2프로 후반대로 낮추고, 집값의 20프로 냈던 디파짓을 되찾는 방향으로 캐쉬아웃 리파이낸스를 했다. 결국 나는 이 집을 돈을 안 들이고 산 게 되었다. 그리고 주변 월세 시세로 미뤄볼때 여전히 예상 월세가 비용을 커버했다.
이 집에서 한 5년은 더 살지 않을까 싶었다, 그 후로 집을 팔지 않고 렌트를 주더라도 월세 수익으로 모든 비용을 커버하고도 수익이 남을 것이다. 그렇게 셋업을 하자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