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뒤에 숨어있는 보이지 않는 끈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듯이 각자 가진 취향도 다르다. 취향은 요즘 유행하는 mbti처럼 한 사람을 파악할 수 있는 유용한 정보중의 하나이다. 취향은 어쩌면 mbti보다 그 사람을 더 잘 나타낼지도 모른다. 색 중에서는 무채색, 스포츠 중에서는 테니스, 음악 중에서는 클래식, 음식중에서는 양식과 같이 분야별로 각자 좋아하는 취향이 다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취향은 온전한 내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무엇보다 취향은 타인, 특히 나와 긴밀하게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들의 영향을 받는다.
취향이라는 질긴 끈
영화를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도 홍콩영화에 대한 애정이 있다. 특히 90년대 왕가위 영화는 여름마다 끄집어 보곤한다. 그의 영화에 담겨있는 감각적인 영상에서 나오는 청량미와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기 전인 약간의 불안한 시대상이 영화에 녹여져 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주말이나 연휴에 아빠는 항상 홍콩영화를 보곤했다. 어렸을 때 리모콘 주도권은 아빠에게 있었기 때문에 만화를 보고 싶어서 영화가 끝나기만을 바라며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는 영화를 아빠 옆에서 보다가 잠들어 버리곤 했다. 70~80년대의 홍콩은 아시아에서 최첨단 도시중의 하나였다. 학장시절 그리고 젊은시절 아빠에게 홍콩영화는 시골소년에게 낭만과 꿈을 심어주었던 매개체 였고 홍콩 배우들은 그 시절 아빠의 아이돌이었다.
불교에 인연설이 있다. 여기서 인이란 원인이고 연이란 결과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말이 있듯이 불교에 따르면 사람과 사람의 관계란 원인과 결과에 따라 이어진 끈같은 것이다. 살면서 수많은 인연을 맺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질긴 인연은 가족이 아닐까? 내 홍콩영화 취향은 부녀라는 인연인 아빠의 취향에서 연결된 핏줄같은 질긴 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향에 묻어있는 역사
홍콩영화를 보면서 젊은시절을 보낸 아빠는 홍콩을 가본적이 없었다. 어느날도 여전히 옛날 홍콩영화를 거실에서 보고 있는 아빠를 보며 왜 아빠를 홍콩에 데려갈 생각을 못했는지 아차싶은 생각이 들었다그래서 올 추석 아빠의 환갑기념 해외여행은 홍콩으로 정해졌다.
홍콩에 도착하고 높은 건물들이 빽빽한 중심지와 빨간 택시를 보자 아빠는 영화에서 보던 풍경이라며 신기해했다. 특히 침사추이에 있는 스타의 거리에서 핸드프린팅을 보며 아빠가 아는 배우들의 이름을 찬찬히 찾았다. 빅토리아 피크에서 한눈에 보이는 홍콩의 스카이라인을 보며 영화에만 보던걸 직접 봐서 벅차다고 했다. 젊은시절 동경했던 홍콩에 온 아빠는 마치 찬란했던 아빠의 젊은시절과 홍콩의 황금기로 돌아간것 같았다. 그런 아빠를 보며 나는 오래된 사진첩을 꺼내 보는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가진 취향은 타고난게 아니라 내 주위의 인연들로부텨 영향을 받은 결과물이자 그 사람의 역사이다. 내가 누구와 인연을 맺고있는지에 따라 내 취향도 변한다. 내가 가진 취향은 내 인연들에게 영향을 받았고 나또한 누군가의 취향에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아빠에게 홍콩영화 감성 취향을 받았듯 나도 앞으로 내 인연들에게 좋은 취향을 물려주고싶다.
https://www.youtube.com/watch?v=w4icg9p6Sx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