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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불평, 아들의 상처

by 원더혜숙

시아버지가 우리 집에 3주 계시다가 브라질에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계시는 동안, 아버지의 우울한 상태를 지켜보고, 불평을 들었던 남편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나는 비판에 참 예민해.”


내가 알기론 그 인식에는 오래된 역사가 있었고, 막 아버지의 불평에 마주친 자신에 대한 성찰 또한 담겨 있었다.


남편에게는 누나와 한 살 많은 형이 있다. 어릴 때 누나는 똑똑하고 부모님 말을 잘 들었고, 형은 사고뭉치에 약간 사악한 면이 있었다. 그런 틈에서 활발하게 형보다 더 큰 사고를 치고 다녔어야 할 막내인 남편은 조용히 컸다. 거의 없는 존재처럼 지냈다고 했다. 그래서 가족들이 자기를 잃어버린 적도 두 번 있었다고 했다.


가족들은 막내(가장 어리고 약한)인 그가 무언가 시도하려고 하면 이런 저런 충고를 했다고 했다. 자기 의견이 있지만, 가족들 틈에서 말 할 기회가 없었다. 목소리 큰 형과 자기 주장이 강한 엄마, 그리고 비판적인 아버지. 똑똑한 누나의 강압적 태도 때문에 기다리다가 결국 말을 못 한 적이 많았다고.


늘 조언을 듣고 비판을 삼켜야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 남편의 회상에서, 나는 오히려 그가 가족에게서 물려받은 강점들을 본다. 엄마의 통쾌하고 개방적인 사고, 아버지의 유머, 그리고 형의 자기 주장이 강함, 또 어려운 누나의 논리적 사고 등이 그를 또 좋은 방향으로 성장시킨 것은 성과이리라.


남편은 어릴 때부터 막내로서 비판과 간섭을 견뎌낸 듯 했다. 그래서 그런지, 비판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떠나신 후에도 며칠 간 기분이 처져있었다. 자기 방식이 틀린 건 아닌데, 자기 나름의 생각이 있는데 그걸 비판적으로 보고 불평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생겼던 것 같다.


나 또한 누군가의 지적과 간섭을 받을 때, 기분이 나빴다. 그때마다 의욕이 추락했다. 의기소침해졌다. 또 다른 한편으로 '자기가 뭘 안다고 그러지?'라고 그 사람에게 미운 감정이 일었다. 그런 것들이 반복되면 그 사람과 멀어지고 싶었다.


그런 감정과는 달리, 비판이 내게 꼭 필요한 건설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 그것을 받아들이면 좀 더 나아질 수 있다면, 이런 감정 소모가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나와 남편은 그동안 그런 손실을 겪었던 것 같다. 비판과 불평, 지적 등등의 불편한 감정들에 대항하기 위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오랫동안 싸워왔다.


그러나, 이제는 비판의 본질을 깨달았다. 비판을 판단할 기준이 내게 분명히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 집 거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늘어트린 물건들을 치울 수 없느냐고 시아버지가 불평했다. 우리 집이고, 또 우리만의 방식이 있고, 또 우리는 네 가족이 사는 곳이기에 매번 정리할 수 없다는 점.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들. 이를테면 아이들을 공부시키고 운동을 보내는 일 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의 코멘트가 맞긴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걸 시인하고 넘겼다. 그걸 신경 쓰는 건 시아버지이지, 내가 아니다. 남편도 아니다. 시아버지가 치우면 된다. 그렇게 경계선을 긋는 순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언젠가 그에게 치우라고 한 적도 있었으니, 이제 나는 비판을 좀 건강하게 받아들이는 상태가 되지 않았나고, 판단해본다.


그러나 여전히, 비판을 받았을 때의 그 울적해지는 감정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챗 지피티에게 물어보았다.


“우리 인간은 비판과 지적, 불평을 잘 수용하지 못하고, 그럴 경우에 먼저 기분이 나빠지지?”


“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비판·지적·불평을 받으면 기분이 나빠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인간의 심리적 방어기제자존감 유지 본능과 깊이 관련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지키고 싶은 ‘괜찮은 나’, 즉 긍정적인 자기 이미지에 위협이 됩니다."라고 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

비판은 내용이 아니라
'존중이 결어된 느낌' 때문에
기분이 나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출처: chatgpt>


부모와 자식의 생각과 행동 방식은 다르다. 그런데 자기 입장에서 판단하고, 상대방이 하는 방식은 나쁘다라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에서 비판이 비롯한다. 그러니깐, 그 이면에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가 자리하고 있어 그 느낌을 '불쾌감'이라고 한다.

시아버지가 그렇게 우리가 사는 꼴,을 지적했지만, 우리는 그의 집에서 그런 말을 한적이 없다. 예를 들어, 여섯 마리의 개와 두 마리의 고양이가 그 집에 있다. 마당은 개 똥 때문에 마음대로 디딜 수 없고, 방에는 아무리 청소해도 동물들 소변 냄새가 나고, 털도 날린다. 그러나, 그들의 생활방식을 존중했지, 한번도 불평하지 않았다. 결론은 시아버지가 '우리를 존중하는 태도'가 부족해서 남편의 기분이 나빴던 것이다.


아무리 자식이라도, 다 큰 성인이고 이제 자식까지 있는 사람이다. 존중이 빠진 말은 언제나 상처로 남는다. 결국, 가족 사이에서도 가장 필요한 건 사랑보다 ‘존중의 말과 태도’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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