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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애도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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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요희비극 Dec 28. 2020

#14

  복이를 서울로 데려온 봄, 많은 것이 변했다. 동생과 함께 살기 시작했고, 이사를 했고, 대학원에 입학했다. 이사를 하면서 학교와 멀어졌지만 혼자 있을 복이가 걱정되어 공강 시간 틈틈이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데려오기까지의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복이는 잘 지냈다.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복이 곁에 눕곤 했다. 그렇게 서로 몸을 기댄 채로 있다가 수업 시간이 되면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도 했고, 가지 않기도 했다. 언제나 학교로 돌아갈 생각이었으므로 외출복을 갈아입지 않았다. 복이가 걱정되어 집에 들른 것이지만, 한 번 누우면 좀처럼 다시 나갈 힘이 생기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밤이 될 때까지 불편한 차림으로 자주 누워있었다. 대학원은 오랫동안 고민한 결정이었다. 간절했던 만큼 열심히 다니고 싶었다. 하지만 그해 봄, 나는 빠른 속도로 병들었다. 열심히는커녕 하루하루를 겨우 버텨냈다. 정작 학교에 가서도 수업을 빠지는 날이 많았다. 


  그즈음 엄마는 매일 전화를 걸어왔다. 복이 안부를 물었지만 나를 걱정하는 전화였다. 하지만 복이를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이 아주 거짓은 아니어서 복이 이야기를 하다 보면 통화가 길어졌다. 그때마다 엄마는 복이 얼굴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고 했다. 복이한테 큰 죄를 지은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웠는데 정말 다행이라고. 제일 좋아하는 큰누나 옆에 있으니 표정도 밝아지고 눈물 자국도 없어졌다고. 누구나 그런 말을 해주었으니까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가끔 그 말을 곱씹게 되는 날도 있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복아. 너는 왜 나를 이렇게나 좋아해 주는 거야, 하고. 무방비하게 늘어져 있는 복이의 발바닥을 만지면, 복이는 귀찮다는 듯 눈을 감은 채로 발길질을 했다. 그래도 발을 다시 만지면 일어나 몇 발자국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여전히 몸 한쪽을 내게 기대고서 새로 자리를 잡았다. 가깝지만 발바닥을 만질 수 없을 만큼 떨어지게 되면 자는 모습은 오히려 더 잘 볼 수 있었다. 근심 없이 자는 복이를 보고 있으면 참았던 눈물이 났다. 소리 내 울어도 복이는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얼마간 울다 보면 나도 잠이 들었다. 낮에 잠들었다가 밤에 깨는 일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아서 눈을 뜨면 놀라 복이부터 찾았다. 복아. 복아. 무슨 일이냐는 듯 복이가 기지개를 켜면 그제야 시간을 확인하고 동생에게 퇴근 시간을 물었다. 이제 막 입사한 동생은 퇴근이 많이 늦었고, 출장도 잦았다. 동생이 답장을 주면 그게 무슨 신호라도 되는 양 일어나 불을 켜고 복이와 나갈 준비를 했다. 새로운 동네는 모든 길이 낯설어서 우리는 천천히 걸었다. 냄새를 맡느라 복이는 자주 멈춰 섰다. 앞으로 잘 나아가지 않는 복이를 기다리고 있으면 어째선지 많은 것들이 되돌릴 수 없게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영영 잘못되었다는 확신.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꼬리를 한껏 치켜올린 복이는 몇 발자국 떼고 다시 냄새 맡는 데 열중이었다. 그 지칠 줄 모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무언가 커다란 게 빠져나간 것 같은 상태로도 웃음이 나왔고 이제 가자, 하고 말도 했다. 


  그 후로 7년이 지났다. 그 시간 동안 우울을 대하는 데에도 근력이 붙은 건지 올해는 책도 한 권 내게 되었다. 출판 이야기는 작년 봄부터 오갔던 터라 가을부터는 교정을 보기 시작했다. 속도를 내야 하는데 날이 추워지면서 체력도 떨어져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사고'가 났던 날에도 교정을 보러 갔다가 원고 한 편 제대로 보지 못하고 돌아와 누워있었다. 그 후 덮어두기를 한참.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수는 없어 다시 교정을 보다가 복이 이야기를 다룬 챕터를 읽게 되었다. 하루에 두 번 심장약을 먹는 복이가 부쩍 눈도 귀도 어두워졌다는 내용이었다. 알고는 있지만, 복이의 심장이 언제까지 버텨줄지 자주 걱정하게 된다고. 그 글을 쓸 때에도 나는 복이와 함께 지낼 시간이 이제 많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최근 정기검진 때 심장 초음파를 들여다보던 의사 선생님이 이제 정말 많이 안 좋다고 했으니까. 기운 없이 늘어져 있는 날이 눈에 띄게 많아졌으니까. 그래도. 그래도 이렇게 빨리는 아니었다. 이런 방식은 정말 아니었다.


  사고 후 제일 많이 들은 이야기는 “네 잘못이 아니야”였다. 복이는 행복했을 거라고. 아무도 너만큼 복이를 사랑해주지 못했을 거라고. 그건 누가 봐도 알 수 있다고. 그러나 사고는 분명한 나의 부주의 때문이었다. 한때는 나도 나로 인해 복이가 행복했을 거라 생각하기도 했다. 내가 하루 종일 집에만 있던 시기에는 복이가 더 행복했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복이의 막무가내인 성격과 개구진 표정, 놀라운 무심함이 모두 내 사랑의 증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쓴 글을 읽고 알았다. 내가 복이를 돌본 게 아니라 복이가 나를 돌본 것이었다. 수렁에 빠진 내가 일어나 손을 씻고, 세수를 하고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만든 게 복이었고, 눈치 보지 않고 울 수 있게 해 준 게 복이었다. 체온을 나눠주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게 해 주고, 자꾸만 말을 할 수 있게 해 준 것도,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해 준 것도 모두 복이었다. 


  교정을 보면서 눈에 익은 문장이 있어 다시 되짚어 읽었던 부분이 있다. 확인해보니 나도 모르게 두 번이나 같은 문장을 썼다. “이렇게 예쁜 애가 어떻게 우리 집에 왔지?” 매일 보는 얼굴인데도 볼 때마다 했던 생각이었다. 그러게, 이렇게 예쁜 애가 어떻게 우리 집에 온 걸까. 나는 더 이상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교정지를 덮었다. 


  우여곡절 끝에 책이 나왔고, 주변에 소식을 전하면서도 어딘가 허전했다. 뭘까. 도대체 왜 이렇게 허전한 걸까.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그동안 아주 사소한 무언가를 이뤄내도 늘 결과물과 함께 있는 복이 사진을 찍었는데 책은 그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가장 큰 자랑을 잃었으니 어떤 자랑을 해도 풍족할 수 없었다. 책날개에 적합한 사진이 아니라는 편집자의 만류에도 고집을 부려 복이와 함께 찍은 사진을 넣은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정말 그게 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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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진선

그림: 한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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