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로 이사하면서 엄마에게는 텃밭 가꾸는 취미가 생겼다. 자그마한 텃밭에서 키운 각종 작물을 수확할 때면 엄마는 아이 같은 표정을 짓곤 했다. 엄마의 수확물은 대부분 작고 못생겨 상품 가치가 없었다. 엄마 말로는 농약을 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어쨌든 초보 농사꾼 치고는 꽤 많은 종류의 작물을 거두는 데 성공했다. 그중 하나가 고구마였다. 고구마는 엄마가 제일 먼저 심은 작물이었다. 잘 자랄뿐더러, 모두가 좋아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러모로 성공적인 수확물이어서 엄마는 언제 가지러 올 거냐고 매일 전화를 걸어왔다. 우리가 도저히 시간을 내지 못하자 결국 엄마는 고구마를 택배로 보내주었다. 못생겼지만 맛은 끝내준다던 고구마. 복이 배 터지겠네. 우리는 가득 찬 고구마 박스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평소 우리가 다이어트를 할 때면 복이가 횡재하곤 했다. 고구마, 계란, 사과 등 다이어트 식단의 대부분은 복이가 좋아하는 간식이었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 조용히 고구마 껍질을 까고 있으면 ‘타닥타닥’하는 발톱 소리와 함께 어느새 뒤에 와 있던 복이. 그럴 때면 나도 아직 안 먹었다며 사정을 해야 했다.
고구마 박스에 얼굴을 박고 킁킁대는 복이를 보며 우리는 고구마 몇 개를 삶았다. 엄마 말과 달리 조금 퍽퍽했지만 퍽퍽한 걸 좋아하는 동생은, 이상순씨 농사꾼 다됐네, 하며 복이와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며칠 후 사고가 있었다. 침대 밖으로 좀처럼 나오지 못하던 동생이 물을 마시러 부엌에 잠깐 나와서는 식탁 옆 고구마 박스를 한참 쳐다보았다. 사실 고구마 좋아하는 순위를 따지자면 동생도 밀리지 않았다. 동생과 복이의 박빙이었는데. 물을 마시러 나온 동생이, 이제 고구마 못 먹겠다, 라며 고구마 박스를 닫고 다시 침대로 돌아갔다. 식탁에 앉아 눈으로 동생을 좇다가 고구마 박스로 시선을 옮겼다. 목구멍으로 뜨거운 게 올라왔다. 그대로 한참을 앉아 있다가 고구마를 집에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정한 현아언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동네 사람들과 개들에게 고구마를 나눠줄 수 있느냐고. 소식을 접하고 아무도 내게 연락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언니가 기다렸다는 듯 잘 먹고 잘 자고 있는지 물어주었다. 언니에게 고구마를 건네주고 오면서 내내 울었다. 밖에서 울어야 동생이 모르니까. 집에서 참았던 것들을 쏟아내고 호흡을 가다듬으면 다시 울음이 복받쳤다. 복이로 인해 기분이 좋아졌던 모든 것들이 슬픔으로 변해버렸다. 고구마도, 아침도, 골목길도, 언제나 마중 나와주던 신발장도. 모든 게 슬픔이 되면 어떡하지. 슬픔이 익숙해져서 결국 아무렇지 않아지면 어떡하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슬프지 않으면 사라져 버릴 텐데. 정말로 없었던 것처럼 되어버릴 텐데. 그건 정말 견딜 수 없을 것 같은데. 자꾸만 스치는 바람에 젖은 뺨이 간지러웠다. 나는 계속 먼 길로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