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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애도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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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요희비극 Dec 11. 2023

#24

  시월 말일이면 고구마를 산다. 올해는 집 앞 슈퍼의 고구마가 작아서 자전거를 타고 옆 동네 슈퍼에 다녀왔다. 돌아오는 길 산책 중인 개와 마주쳤다. 반짝이는 햇빛을 받으며 경쾌하게 걸어가는 개를 조용히 바라봤다. 복이가 다녔던 길이고, 복이를 보낸 길이기도 하다. 나는 여전히 여기에 살고 있다.


  집에 도착해 고구마를 닦는다. 멍하니 흙을 씻어내다 보면 어느새 색이 진해진 고구마가 싱크대에 가득 쌓인다. 큼직한 고구마 몇 개를 찜기에 올리면 복이가 방에서 자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직도 이따금 이런 착각을 한다. 오랫동안 집을 비우고 돌아올 때나, 비닐을 바스락거릴 때나, 느닷없이 초인종이 울릴 때. 나도 모르게 긴장했다가 그럴 필요가 없음을 금세 알아차린다. 그러나 긴장은 이상하게 풀리지 않는다. 굳은 몸으로 고구마가 익어가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서서히 해가 진다. 어디까지 왔니. 잘 오고 있니. 무른 고구마를 떼어주면 말캉한 혀로 손가락을 핥았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고구마 앞을 지킨다. 단단한 고구마가 물러질 때까지. 뜨거운 고구마가 한 김 식을 때까지.


  복이가 없다는 건 어려운 수학 공식 같다. 이해하지 못한 공식을 암기하는 것처럼, 복이가 없다는 것을 나는 모른다. 괜히 날짜를 한 번 더 확인한다. 네 번째 기일이다. 쉴 새 없이 피어오르는 김 사이로 얼핏 흰 꼬리를 본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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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진선

그림: 한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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