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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된장보리 Feb 24. 2019

이제 어디서든 똥을 쌀 수 있게 되었다 1

똥은 자신감과 안정감의 상징


나는 신생아 때부터 주변 환경에 과도하게 민감한 인간이었다(고 한다). 낯가림은 전국 상위권 수준으로, 새로운 곳에 대한 거부감이 대단한 편이었다. 똥은 말할 것도 없이 무조건 집에서 싸야 했는데 어린 시절 내가 세상 끝까지 숨기려 했던 유일한 수치가 울음과 배설물이었다. 나의 나약함에 다른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이 싫었고 흠집 있는 인간으로 낙인찍히고 싶지 않았다. 나름의 완벽함을 지켜내야 했기 때문에. 


들판은 똥으로 가득하다. 어딘가에 마련되어 있는 화장실에서는 소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런 나에게 새로운 자유가 찾아온 것은 여고 시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성적이었지 한낱 똥 따위는 입시의 장애물이 될 수 없었다. 잘 보일 남학생도 없으니 우리를 막을 자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두루마리 휴지는 필수품이었고 수업 시간과 상관없이 휴지를 붙잡고 자리를 뜨면 선생님조차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수능에서 또 다른 똥을 싸버렸는데 그걸 수습하느라 1년의 재수 기간을 거쳐야 했고 그동안에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일종의 체면 같은 것이 매번 모습을 바꾼 체 따라다녔다. 내 안에는 이상적인 대학생의 모습도 있었고, 이상적인 연애도 있었으며, 이상적인 인간상도 있어서 그런 것들을 쫓아가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내가 똥으로만 가득 차 있는 인간 같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추구하는 모든 것들은 정반대를 가리켰고 무언가를 따라갈수록 그로부터 멀어지는 느낌뿐이었다.    


더 이상 나를 지켜낼 수 없고 지켜내려는 의지조차 없었을 때 이 곳이 아닌 곳으로 도망쳐 버렸다. 

그러자 세계의 다양한 화장실들이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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