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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현 Jul 01. 2022

말이 마음을 다 담을 순 없어서

영화 우리 선희 리뷰

[영화 우리 선희 리뷰] 말이 마음을 다 담을 순 없어서




1. Information

우리 선희 (한국, 89분, 홍상수)

구석에 몰린 선희는 자신을 아끼는 세 남자와 만나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지만, 서로가 나누는 말들은 비슷해서 마치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를 옮겨 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나흘간의 나들이를 마치고 선희는 떠나지만, 남겨진 남자들은 선희의 말을 잡은 채 그 자리를 서성거린다. <네이버 영화>



2. Recommendation

관계란,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나누는 말들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생각을 하고 말하는 걸까요, 말을 하고 생각을 끼워 맞추는 걸까요.

같은 공간이지만, 서로 통하는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3. Appreciation review

tip. 주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소개에서 언급되었듯이 4명의 주인공들이 서로 말을 많이 한다. 그 말에는 욕심과 겸양, 약점과 허세, 본능과 통제가 한 데 뒤섞여 나온다. 욕심, 약점, 본능적인 면들은 술자리에서 참지 못하고 입에서 삐져나오는 수준이다. 술을 마시기 전의 그들은 적절히 자신의 속내를 감출 줄 알았지만 술 앞에서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구경할 수 있다.


그건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어서 불쾌하고 웃기다.


선희(정유미)는 영화감독을 꿈꾸는 학생이지만, 막막하여 공부를 좀 더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자신을 예뻐한 교수 최동현(김상중)을 찾아가 유학을 위한 추천서를 부탁한다. 최동현은 선희의 부탁을 들어주기도 전에 불편한 조언을 먼저 시작한다.


최동현의 우리 선희

“너 같은 경우는 사람과 부딪치며 만드는 결과물에 버거워하잖아. 그럴수록 더 부딪쳐야지.”


교수로부터 찝찝한 감정을 건네받고 우울해진 선희는 우연히 전 남자 친구 문수(이선균)를 만나 술을 마시게 된다. 문수가 학교에 계속 남아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 하자, 선희는 방금까지 아니꼽게 들었던 조언을 문수에게 다시 하기 시작한다. “부딪치라고. 도망가지 말라고”


그런 선희에게 문수는 끝까지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 애썼지만 결국 소주 4병이 되어서야 "넌 나의 뮤즈였다", "너 너무 예뻐"라며 욕심을 줄줄 흘리게 된다.


문수의 우리 선희

“너 너무 예쁘다.”

**이선균의 음주연기가 정말 마음에 든다.


인간을 상대하는 게 귀찮아 보이는 동네형 재학이 형(정재영)은 선희로 인해 마음이 싱숭생숭한 문수에게 인간미 없는 조언을 하기 시작한다. "여자는 현실적이야. 여자를 놔줘. 선희가 판단하는 대로 놔둬"


이 허세에 격앙된 문수는 목적어 없이 "끝까지 파봐야 알 수 있다.”라며 파고, 가고를 수십 회 외친다.

이때쯤부터, 영화를 보며 나는 실실 웃기 시작했는데, 하나는 이선균이 실제로 술에 취했다는 사실이고, 다들 생각은 하고 말하는 걸까 싶으면서도 한편 우리들의 모습과 다를 게 없어 보여 서다. 나도 물론이고, 사람들은 자신이 뜻한 바를 가르치고 그대로 확실히 해두는 게 더 쉬워 보인다.


선희는 추천서를 받았지만 속상한 마음에 최동현 선생님과 식사자리를 마련하여 허심탄회한 척 대화를 이어나간다.


이 부분의 김상중의 연기가 마음에 들어 두세 번은 돌려본 것 같다. 상대를 깔보는 것 같으면서도, 애정이 없진 않은데. 능글능글하게 말하는 엘리트 인간의 모습을 배우의 연기로 구경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사제지간의 대화라기엔 다소 엉뚱한 대사들이 의뭉스러운 김상중의 표정으로부터 새어 나오는데, 술과 함께 선희에 대한 마음도 녹아버렸고 추천서는 수정된다.


최동현의 바뀐 우리 선희

“또라이지만, 용감하고 솔직하고 착해”


시작은 분명 시시했지만 문수와 최동현은 술을 마신 이후로 선희를 그 전과 다르게 바라보고 평가한다.

드디어 재학이 형이 선희를 만났는데, 얼마 전 문수로부터 들었던 "한 길만 파."를 선희에게 쏟아낸다.


선희는 자신이 누군지 알고 싶어 한다. 상대방이 누구인지에 따라 서로 다른 목적으로 상황과 계획을 바꾼 선희는 여러모로 자신에게 조언을 한 이 남자들을 만나 자신이 누군지 비로소 알게 되었을까?


선희에 대한 그들의 평가가 앙상블처럼 펼쳐지는데 의미 없고 쓸데없다는 게 실소의 포인트다.


이들은 넘치는 훈계들 사이에서 강조하는 하나의 메시지로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끝까지 파보아야 하고, 파고 또 파다 보면 자신이 원하는 것과 한계를 알 수 있다."라고 했지만, 선희라는 대상을 통해 그들은 끝내 아무것도 끝까지 파보지 못하고, 선희를 ‘예쁘고, 착하고, 똑똑한 친구’로 통일하여 쉽고 간결한 평가를 해냈다.






4. Postscript

이제 타인의 말에 무게추를 달고는 무겁다고 징징대지 않을게
내게 3명의 주변인이 있다면 3명의 내가 있고,
하나의 상황이라면 3가지의 스토리가 나와.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고,
그건 중요하지 않네. 이걸 왜 이제야 알았을까



5. blending

같은 상황과 공간을 공유했지만 서로 다른 입장으로 다른 생각을 하는 것에 대해 흥미가 생겨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프랑스, 107분, 고레에다 히로카즈)을 함께 봤어요. 엄마와 딸이라는, 이미 지루한 아이템이지만 감독은 역시나 다른 나라에서 다른 풍경을 담고 기존과 다른 모녀 사이를 만들어 낸 것 같습니다.

대배우인 엄마 파비안느(까뜨린느 드뇌브)는 오랜 연기생활과 자신의 삶의 역경을 담은 자서전을 출간하는데, 딸에 대한 애틋하고 희생적인 사랑 내용을 쓴 바람에 딸(줄리엣 비노쉬)이 극대노 하는 것으로 전개되는 내용입니다. 딸이 기억하는 엄마는 욕심 많고 화려하고 바쁘고 무심했습니다.


무엇이 진실이고 진심인지는 사실 모르지만, (파비안느의 대사를 통해 자서전 또한 그녀의 연기였음을 알 순 있지만) 서로의 입장이 명확하고 목표가 분명하여 맞고 틀리고는 의미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저 엄마이기 전에 배우로서, 딸이자 인격체로서 서로의 존재를 지지해주면 되는 거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침묵이 인간이 낼 수 있는 가장 고차원의 능력이라는데, 그나마 이런 말이라도 오가고 감정적으로 논쟁한 끝에 서로를 받아들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누구나 파비안느처럼 적당한 거짓을 연기하고, 대사를 읊어가며 산다는 한줄평에도 공감합니다.


우리가 강제로 만든 이상적인 엄마란, 희생적이고 온화하며 자녀의 결핍을 채워줘야 하지만, 이와는 전혀 이질적인 엄마. 배우로서 가진 책임감과 무게를 위해 역할 갈등을 기어이 모른 체하는 파비안느의 연기가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두 영화 모두, 배우들의 표정과 대사가 영화를 이끌어가는 에너지였고, 영화는 조용하고 잔잔하나 관계 속의 역동은 화면에 가득 차게 느껴졌습니다. 이제 이 감독들은 어느 나라에서 어떤 사람들을 데리고 가족과 친구를 만들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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