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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현 Jul 07. 2022

내가 너의 해답이면 좋겠어

영화 중경삼림 리뷰


[영화 중경삼림 리뷰] 내가 너의 해답이면 좋겠어





1. information

중경삼림(홍콩, 102분, 왕가위)

경찰 223, 마약 밀매상, 경찰 663, 페이. 네 사람이 만들어 낸 두 개의 로맨스, 새로운 사랑을 만나는 방법에 대한 독특한 상상력(네이버 영화)



2. Recommendation

비범하고 특이한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

떠나가는 사랑과 다가오는 사랑을 대하기 위해 필요한 마음속 리모델링에 관한 이야기.



3. Appreciation review

tip. 주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첫눈에 반하듯 이 영화를 만났다. 중학교 2학년 때로, 내 방과 컴퓨터라는 상징적인 것들이 생겼고, 혼자 있고 싶을 때 나의 세계로, 정서적으로 나를 밀어 넣을 수 있었다. 혼자 남겨진 세상은 거리낌이 없었는데, 유독 홍콩 영화가 무척 재미있었다. 그중 중경삼림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


요즘 시간을 보내는 일이 건조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는데, 나는 투명하고 말랑말랑한 젤리 같던 그 마음을 다시 느껴보고 싶어 이 영화를 본다.


영화는 금성무, 임청하가 나오는 1부와 양조위, 왕페이가 나오는 2부로 나뉜다. 그중 나는 2부 에피소드를 조금 더 애정 하는 편이라 2부를 리뷰하고자 한다. 이유는 페이(왕정문, 왕페이)의 사랑스러운 외모와 그녀의 사랑방식 때문이다. 나는 영화 속 그녀에게 한눈에 사로잡혀서 그날 이후 모든 사이버 공간 속 닉네임을 ‘꿈꾸는 왕정문’으로 통일했었고, 고등학교 진학과 동시에 헤어도 똑같이 따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춘기 시절 별다른 이상형이 없던 나는 페이를 따라 함으로써 경찰 663(양조위, 량차오웨이) 같은 남자에게 사랑을 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집, 캘리포니아

경찰 663은 경찰이고, 단골가게가 있다. 헤어진 전 여자 친구와의 이별에 아파하고 있고, 단골가게에는 페이라는 점원이 있다. 그녀는 경찰 663에게 호감이 있다.


단순한 줄거리이다. 전 연인과의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남자와, 그에게 호감이 있는 여자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단골가게 앞에서 순찰을 도는 경찰 663을 의식하며 힐끔힐끔 쳐다보거나 과장된 행동을 하는 외엔 달리 마음을 전할 길이 없다. 그러던 중 우연히 그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데, 그 계기는 특이하게도 ‘주도면밀한 주거침입’이다. 집, 집안의 물건과 그것들을 매일 마주하는 경찰 663은 헤어진 연인의 것에서 점점 페이의 것으로 변화하는 공간을 보며 독백을 하는데, 이때 스타일리시한 비유들이 쏟아진다. 영화만이 나타낼 수 있는 이 발칙한 표현과, 그 발칙함을 연기인지 천성인지 모를 매력으로 발산하는 페이의 표정 때문에 영화를 보고 나면 나는 항상 몽중인이 된다.



모두의 이야기 일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이의 마음공간에 자리 잡은 옛 연인의 흔적을 지우고 싶은 마음. 얼굴도 모르지만 내가 그녀보다 조금 더 낫기를, 내가 조금 더 그의 마음속에 큰 집으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은.


“집”이라는 것은 개인의 가장 솔직하고 내밀한 공간이라 들어갈 땐 주인의 허락을 구해야 하는데, 얻어걸린 열쇠로 그의 영역에 들어가 전 연인의 흔적을 지우고 자신의 아이템을 채우는 부지런한 페이, 공간이 주는 묘한 긴장 속에 그곳에서 요동을 일으키며 막무가내인 페이는 사랑스럽다.



영화 <타락천사>에서는 타인의 “가게”에 들어가 몰래 장사를 하며 실연의 상처를 극복하는 남자 주인공이 나온다. 공간을 ‘곧 마음 또는 머릿속’으로 접근하는 감독의 결이 느껴진다.


드디어 그의 공간을 헤집어 놓은 페이는 경찰 663으로부터 데이트 신청을 받는 데 성공한다. 경찰 663은 페이에게 캘리포니아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서로가 다른 캘리포니아를 간다는 데서 영화의 두 번째 매력을 느낀다.


서로는 서로를 향하지만 서로가 될 수 없다. 그의 공간에 들어갔다고 해서 당장 스토리가 시작되는 것은 아니었다. 각자의 캘리포니아가 필요했던 것 같다. 그와 그녀는 자신의 캘리포니아에서 막연히 상대방을 연모하다 시간이 지나 재회하며 영화가 마무리된다.



각자의 시간에 경찰 663은 페이가 일하던 가게를 리모델링하고는 페이의 모습으로 기다린다.

페이는 경찰 663의 전 연인과 같은 직업을 가진 채 나타난다. 이제 미래형인 그들은 서로에게 좀 더 온전히 스며들 수 있을까? 페이는 영원히 깨지 않는 꿈이 있다고 했다.


영화는 개봉 당시의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상징하는 면들이 많아 해석이 다양하다. 단순한 서사에 비해 복잡한 역학관계를 내포한 영화라고 한다. 다만, 나는 로맨스물로만 이 영화를 대접하고 있다. 사랑스러운 여자 주인공과, 그녀를 바라보는 남자 주인공의 눈빛만으로 충분했다.






4. Postscript


너에게 난
마땅한 결과, 모든 질문의 답
모든 것의 이유이고 싶어

그녀가 흘리고 간 게 물음표라면
내 음악을 틀자
그리고 끝이 없을 노래로 잠들고 춤추자
모든 것들이 의문투성이던 그 자리에서 너와 나의 해답으로 깊은 꿈을 꾸자, 같이 춤추자



5. Blending

중경삼림 2부의 페이처럼 지나간 연인을 잊게 하고 자신이 새로운 사랑이 되길 자처하는데, 다만 좀 더 특이하게 사랑스러운 여자가 나오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미국, 122분, 데이비드 O. 러셀)입니다. 실버 라이닝(Silver linings)은 ‘구름에 가려진 햇빛에 의해 가장자리로 새어 나오는 빛’ 이란 뜻으로, 언뜻 가려졌지만 분명 존재하는 빛=희망을 뜻한다고 합니다.



아내의 외도를 목격하고 순간적인 감정 폭발 때문에 양극성 정동장애(조울증)를 앓고 있지만 여전히 아내와의 재결합을 원하는 남자 주인공 팻(브래들리 쿠퍼)과, 남편의 사망으로 인해 성중독 수준까지 걸려버린 우울한 여자 주인공 티파니(제니퍼 로렌스)가 우연히 만나 서로의 댄스 파트너가 되어 실버라이닝을 찾는 이야기입니다.(네이버 영화)


팻은 정신증적 불편함으로 인해 말이 많고 과격하며 스스로를 과신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미 치유의 과정에 접어든 티파니가 그런 그를 끊임없이 <지금, 여기>로 가이드합니다.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여자와, 아직은 두려움 속에 갇히고 싶은 남자는 춤이라는 도구를 통해 서로에게 빠져들게 됩니다. 이들의 첫 데이트 장면, 팻의 아버지(로버트 드니로), 마지막 댄스대회가 영화의 매력 포인트입니다.

어쩌면 그들은 서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자신을 미친 사람으로 라벨링 하지 않을 친구가 간절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변화를 위해선 시간과 노력이 반드시 필요한데, 두 영화 모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리모델링할 수 있는 용기를 갖도록, 특별하게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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