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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현 Jul 19. 2022

온 우주가 너를 응원하고 있지

영화 4등 리뷰


[영화 4등 리뷰] 온 우주가 너를 응원하고 있지





1. Information

4등(한국, 116분, 정지우)

수영이 좋지만 대회만 나가면 만년 4등인 초등학생 준호가, 아들의 1등을 누구보다 염원하는 엄마 정애의 극성에 의해 수영코치 광수를 만나 엄한 체벌에 시달리면서도 스스로 수영을 통해 성장하게 되는 이야기(나무 위키)



2. Recommendation

본받고 싶은 어린 영혼들의 담대함



3. Appreciation review

tip. 주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하고 제작에 참여한 영화이다. 이 영화를 만든 정지우 감독은 차기작을 예상할 수 없어 흥미로운 감독이라 생각된다. <해피엔드, 사랑니, 은교>와 같은 파격의 치정극을 만들다가도, <이끼, 침묵> 같은 묵직한 서사를 내보이기도 했다가, <유열의 음악 앨범> 같은 다소 담백한 계절 로맨스물도 선보일 줄 알았다. 내겐 특별한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을 본 뒤로 다시 감독의 영화가 보고싶어 찾아보다 그가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한 <다섯 개의 시선>에 참여한 데 이어 영화 4등도 연출한 것을 알게 됐다. 한 영화제작사 대표는 “기본적으로 균형감각이 좋아서 흥행 스코어를 유지하면서도 의미 있는 상업영화를 잘 만든다.”라고 감독을 표현했다. <씨네 21>  

영화 4등의 메시지가 좋아서, 이런 선한 영향력을 보여주어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영화는 초등학교 4학년이자 수영선수로는 늘 4등만 하여 메달을 따지 못하는 준호에게 어른들이 가하는 정서, 언어, 물리적 여러 강요와 폭력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렇다고 잔인하지도, 절대악이 나오지도 않는다. 다만 어른들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준호를 push 하는데, 그 목적과 방식이 잘못됐을 뿐이다.



악마의 재능을 가진 수영코치 광수(성인:박해준 / 아역:정가람)는 소싯적에 고등학생 신분으로 아시아 신기록을 세울 만큼 수영천재였지만, 술과 노름을 일삼고 훈련을 받지 않는 등 나태하고 건방진 태도로 코치에게 구타를 당하다 결국 국가대표를 그만두고 동네 체육관에서 강습을 하고 있다.

그런 광수에게 만년 4등 준호(유재상)의 엄마 정애(이항나)가 찾아온다. 정애는 반드시 아들 준호가 메달을 따야만 했다. 그것이 아들을 위한 것인지, 본인을 위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광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시시해서 관심 없다가, 우연히 준호의 ‘영법’이 좋다며 1:1 강습을 시작한다. 어떻게 가르칠까,

폭언, 폭력 : 독기를 심는다는 명목 아래 행해지는 강압적인 훈련 방식


준호는 영혼이 자유로운 아이 같다. 물에서 놀기 위해, 물속으로 비치는 빛을 따라 헤엄치기 위해 수영이라는 스포츠를 시작한 순수한 준호에게 어른들은 1등을 원한다.



코치의 훈련 방식 덕분인지 드디어 1등 같은 2등을 한 준호와 가족들은 너무 신이 나서 파티를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기자인 아버지(최무성)는 아들의 상처를 발견한다. 그 상처에 대해, 수영에 대해, 1등에 대해 아빠와 엄마는 서로 의견이 달랐다. 부모의 갈등을 바라보는 준호의 내레이션이 굉장히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이다.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법. 모든 것은 한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 그리워지나니


폭력을 견디지 못한 준호는 결국 수영을 그만두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수영을 하는 자신의 모습이 그립다. 정애는 자신의 기대를 저버리고 수영을 그만둔 준호가 원망스럽기만 하고, 광수는 강습생을 폭행한 여파로 자신이 가르치던 수영장의 레인이 철거되며 코치 자격이 정지된다.

수영이 하고 싶은 준호는 1등을 해야 수영을 계속할 수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악마의 코치 광수를 다시 찾아간다.

그곳에서 코치는 진짜 코칭을 한다.

니 혼자 해봐라. 금메달 딴다


엄마가 들어오지 못하는 공간에서, 코치가 더 이상 가르치지 않는 망가진 레인 사이로

비로소 준호는 우주의 에너지를 받아 물속에서 온전히 유영한다. 시스템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준호는 빛만 따라다닌다.



어린 광수와 주인공 준호의 성장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이 다르다. 막바지에 이르면 누가 준호에게 더 잘못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의 가치관 충돌이 일어난다.

영화에서 수영장(물)은 코치인 광수의 악마적 재능이 빛났던 과거이자, 아들인 준호를 통제하며 1등을 강요한 엄마의 미래이기도 하고, 그럼에도 순수하게 수영을 즐기는 준호의 현재를 나타내는 공간으로 보인다.

폭력은 그 옛날 코치에게서 어린 광수에게로, 어른이 된 광수가 준호에게로, 준호가 남동생인 기호에게로 내리 순환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어린 광수와 준호의 주변에 제대로 된 어른을 만나기 쉽지 않고, 그런 어른들조차도 절대악은 아니라서 우리가 수용 가능한 삶의 반경 내에 있다는 점에서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성장하는 꿈에 어떤 날개를 달아줄 것인가, 유영하는 몸에 어떤 빛을 내려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는 영화이다.






4. Postscript


삶은 오직 나 자신과 나만의 것
내가 있어야 할 곳에
나로 있는 것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고, 누군가를 도울 수는 있어도
타인의 인정과 한숨은 보태질 수 없는 것
어떤 조건으로부터 자유롭게
오직 삶에 내가 던질 수 있는 묵직한 것은
나 자신과 나만의 것



5. Blending

그나마 좀 더 친절한 코치를 만나 다행이라고 생각되는 영화 야구소녀(한국, 105분, 최윤태)를 추천합니다.


고교 야구팀의 유일한 여자이자 투수로 최고 구속 134km를 던져 천재 야구선수로 주목받은 주수인(이주영)은 프로팀에 입단해 야구를 계속하는 것이 꿈이지만, 남성 프로세계의 현실 앞에 제대로 된 기회와 평가를 받지 못하게 되는데, 이때 코치 진태(이준혁)를 만나 자신의 성장을 직접 마주하게 되는 영화입니다. <네이버 영화> 실제 야구선수였던 안향미 선수를 모티프로 만들어졌습니다.


천재 야구소녀이지만 현실 앞에 절절해지는 영화입니다. 부당한 현실이 아니라 냉정한 현실. 신체적 한계로 구속은 더 오르기 힘든데 극소수의 엘리트들만 살아남는다는 프로세계로의 꿈을 포기할 수 없는 주수인은 생계가 막막한 부모의 한숨도 들어야 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구단은 프런트 스태프로 스카우트를 하려는 등 그녀를 회유하려고만 합니다. 의욕이 간절하나 번번이 좌절을 겪는 주수인에게 코치는 진심으로 조언합니다.

공을 빠르게 던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던진 공을 타자가 못 치게 하는 게 중요한 거야.


이에 주수인은 프로구단으로 가기 위해 자신의 약점을 감춘 너클볼(중간 세 손가락의 관절로 밀어 던지는 공, 회전하지 않아 공 주변 흐름에 따라 변화되어 방향을 알 수 없는 구질)을 훈련하기 시작합니다. 본래 회전력이 좋은 자신의 장점에 더하여, 회전력이 없는 너클볼을 연습함으로써 타자의 타이밍을 뺏겠다는 포부. 이론상 투수도, 타자도, 포수도 예측할 수 없다는 너클볼을 연습하며 주수인은 선수 선발 테스트를 기다리게 됩니다.

어느 감상평에서, 이 너클볼이 마치 주수인의 인생 같아 슬펐다고 합니다. 여러 조건과 사정에 부딪쳐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는 삶을 사는 주수인이지만, 그의 담대함은 그래도 어느 구질보다 직구입니다.


혹독한 예체능계는 오직 엘리트만 기억하지만, 두 영화 속 주인공들은 미성숙한 상태임에도 누구보다 올바르고 소신 있게 자신만의 기술로 다음 단계를 향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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