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제주도에 살고 있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예외 없이 내게 말한다.
“좋은 곳에 사시네요!”
무슨 일을 하느냐는 물음에 바닷가 마을에서 오래된 돌집을 고쳐 남편은 카페를 하고, 나는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고 대답하면 격하게 반응하며 이렇게 말한다.
“우와 그렇게 사는 게 제 로망인데 부럽네요!”
그러나 정작 나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제주도에 사는 것이나 책방 주인이 되는 것을 로망으로 삼아본 적은 없다. 설명할 짧은 말을 찾지 못해 나는 겸연쩍게 대답한다.
“그냥 어쩌다 보니, 제주에 살고 있네요.”
조금 더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서울에서 태어나 뼛속까지 도시 사람인 나는 연고지 하나 없는 불편한 시골에 와서 정착할 계획 따위는 없었다. 전 재산을 털어 대출까지 받아서 신혼집으로 아파트가 아닌 낡은 돌집을 덜컥 사버리고, 고생해서 직접 고치고 매일 벌레와 씨름하며 지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책을 읽는 건 좋아했지만직접 책방을 차리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제주도에 잠시 여행을 오면 아름다운 바다와 숲, 한가로운 도로, 정겨운 시골 사람들을 마주하며 여행객들은 말한다.
“아, 여기 살면 너무 행복할 것 같아”
“제주도에서 보는 풍경은 다 예뻐. 길가에 쓰레기도 예쁘고 낭만적으로 보이는 것 같아”
내가 운영하는 책방에 들러서는“부럽다”라고 외치는 친구들에게 나는 괜스레 말한다.
“막상 살면 다 비슷해”
제주도에 사는 모든 사람이 행복한 것은 결코 아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들은 어떻게든 이 답답한 섬을 떠나 육지로 가고 싶다고 말하기도 한다. 내가 만난 이들 중에서 제주도에는 백화점도 없고, 배달 잘 안되고, 텃새도 심하고, 불편한 게 이만저만한 게 아니라서 살기 좋은 곳이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제주도에 반해 섬으로 온 이주민들도 반 이상은 3년을 못 버티고 돌아간다고 한다. 실제로 내가 제주에서 알고 지냈던 주변 사람 중에도 여럿이 떠나갔다.
제주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버스에서 만난 다정한 할망(제주 방언으로 할머니)이 내게 여행하러 왔느냐고 물으셨다. 제주도가 아름답고 좋아서 살려고 왔다고 대답하자, 할머니가 고개를 내저으며 말씀하셨다.
“메깨라~요 웃드리에 작싼 비바리가 어떵허연 살래와싱고~? (아이고, 이 시골에 젊은 아가씨가 왜 살러 왔어?)”
어디에 사는지가 행복을 절대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제주도에서 아름다운 바닷가 앞에 집을 짓고 살아도 지독히 외로운 사람도 있고, 대한민국에서 제일 비싼 집에 살고 있어도 불행에 휘청거리는 사람도 있다. 흔히들 마음의 문제이고 태도가 중요하다고도 쉽게 말한다.
그러나 조금 더 행복해지고 싶다면 먼저 나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한다. 내가 어떠한 환경에서 가장 편안하고 나다울 수 있는지 탐색해보고, 이에 맞는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어떤 기억을 떠올릴 때 행복해지나요?”
이러한 질문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답하기 어려워한다.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는 대답이 되돌아온다. 프랭크 역시 그랬다. 그래서 함께 고민해보기로 했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 책은 나의 룸메이트이자 동업자(남편이기도 합니다만)인 프랭크와 나의 제주살이에 관한 이야기이다. 제주라는 낯선 곳에 정착해서 일상을 살아내며 행복이라는 단어에 대해 자주 생각해보며 이룬 변화의 여정을 기록하였다.
프랭크와 비슷한 마음을 가진 이들도 자신을 아끼며 행복에 조금 더 다다를 수 있기를 바라며…
2023년 제주 달책빵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