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여름, 이탈리아 여행 일기 (2) 보르게세 미술관, 로마 시내
주말에 시작해 주말에 끝나는 이탈리아 여행에서 가장 먼저 포기한 건 유일하게 일요일에 문을 닫는 바티칸 투어였다. 바티칸을 포기하면서 생긴 반나절 정도의 시간은 ‘보르게세 미술관’으로 채우기로 했다.
로마여행 일정이 짧은 경우 많이 들리지 않는 장소이지만 남편과 내가 함께하는 여행에서 늘 빠지지 않는 미술관과 공원을 함께 볼 수 있는 곳이라 오전 첫 일정으로 넣었다. 떼르미니 역 근처 호텔에서 출발해 카페에서 간단하게 커피도 한 잔 마시고 20여 분을 걸어 미술관에 도착했다.
사전 예약이 필수인 곳이라 웃돈이라도 주고 여행사 사이트들에서 구매할까 하다가 공식 홈페이지에서 이탈리아 가이드 티켓으로 구매했다. 이 경우 티켓을 수령할 때 가이드 없이 자유관람을 하겠다고 말하면 된다. 티켓을 미리 구입하지 못한 경우 오픈시간인 9시 이전에 미술관에 도착해 LAST MINUTE TICKET을 구입할 수 있다.
미술관에는 그리스 로마신화의 여러 주인공들과 예수의 탄생부터 부활까지 방대한 작품들이 가득 차있었다. 이탈리아 문화의 깊이와 엄청난 역사에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였다. 1903년에 개관한 미술관이라고 하기엔 엄청나게 잘 관리된 느낌이었다. 대리석 조각의 정교함과 르네상스 시대의 회화 작품들이 작은 방 천장부터 벽면까지 모두 메우고 있었다.
1시간 정도 작품을 감상하고 공원을 걸었다.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가 있어 아기를 떠올렸다. 언젠가 아기와 함께 여행한다면 공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보르게세 공원을 나와 트레비 분수, 스페인 광장, 판테온을 차례로 구경했다. 아마 다른 계절이었다면 콜로세움과 포로 로마노 까지도 거뜬히 걸을 수 있을 만큼 모든 유적지가 꽤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구글맵보다 체감거리는 매우 가까운 느낌이었고 버스와 메트로, 우버를 적절히 활용한다면 충분히 자유롭게 시내 투어를 계획할 수 있다.
한여름의 로마는 35도를 육박하는 무더위지만 젤라토와 에스프레소로 조금씩 휴식을 곁들이니 걸을만했다. 물론 아침 9시부터 오후 2시까지만. 여행사에서도 오전 시내 투어를 마치면 호텔에서 쉬다가 야경 투어 때 다시 모이는 것 같았다. 여행은 체력 안배가 중요하니까 더위를 피해 호텔에서 샤워도 하고 휴식을 취하는 게 좋은 선택인 듯.
트레비 분수와 스페인 광장에 엄청난 인파가 몰린다는 후기에 겁먹었는데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딱히 많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판테온은 인터넷으로 사전 예매를 하거나 현장에서 예매 후 입장할 수 있다. 워크인으로 대기 후 예매하는 건 20분 정도 소요됐고 현장에서도 인터넷 상태만 원활하다면 예매가 가능하다. 하늘에 뚫린 공기구멍으로 내부의 열기가 빠져나가는 원리 덕에 비가 오는 날에도 빗물이 들이치지 않는다는 판테온. 10년 전에 여행 책에서 보던 글귀들을 다시금 떠올리며 시내 투어를 마쳤다. 나머지 유적지들은 야경 투어 때 걷는 걸로.
로마는 길거리의 돌멩이 하나도 수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어 걸어다니며 투어를 하게 되는데 40도에 육박하는 한여름의 로마를 보기 위해서는 야경 투어가 거의 필수인 상황. 물론 유적지들을 마주하고 그 풍경을 눈으로 열심히 담는 경우에 한하는 선택이기는 하다. 하나하나 만지고 속속들이 봐야한다면 야경만으로는 조금 부족하다고 느낄 지도.
더위와 맞서 싸울 의지가 없는 우리는 콜로세움, 포로 로마노, 성천사성을 모두 야경 투어로 걸으면서 구경했다. 일요일 저녁이라 지하철도 버스도 한산한 편이었고 콜로세움 앞을 쭉 잇고 있는 황제의 길도 차없는 도로로 운영 중이라 여유로웠다.
야경 투어라고 하지만 해가 늦게 지는 여름 덕에 콜로세움에서는 노을을 보기도 했다. 로마에서의 마지막 밤, 야경 투어로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