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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지킴이 Mar 31. 2023

요즘 글은 좀 써요?

다시 돌아오게 만들어준 그 질문

첫 직장을 그만둔지도 벌써 6년째. 

아직도 나는 그 때 함께 일했던 동료들은 물론, 대표님과도 연을 이어오고 있다.

그만둘 때만 해도 회사일이 지긋지긋하다 느껴져서 에이 내가 이 쪽은 다신 안 와야지! 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사람 일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게 정설인가 보다. 


육아휴직을 시작한 지 한달 째, 나는 오랜만에 첫 직장에 방문했다.

예정대로라면 얼른 밥만 먹고 아이를 픽업하러 돌아왔어야 했는데, 이놈의 추억 열차는 좀처럼 쉽게 내릴 방도가 없다. 예전에 이랬지, 저랬지 하는 에피소드들을 하나 둘 씩 꺼내다 보면 두 세시간은 우습게 흘러간다.

결국 아이 하원버스 도착 이십분 전이 돼서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이 하원시간 전에 한 시간 정도만 자고 가자' 했던 나의 계획은 물거품 저 편으로... 


요새 한참 저질체력으로 고생하는 나에게 서울 나들이는 꽤나 힘들고 피곤한 일이었지만, 어쩐지 어제는 힘들고 피곤하고 지친 몸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행복한 기분으로 잠들었다. 오랜만에 좋은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그 사람들에게서 예전의 인정 받았던 내가 생각이 나서 괜히 으쓱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 그런데 옛직장동료들과 나눴던 수많은 대화 중에 나를 꽤나 예뻐하셨던 대표님이 "요즘 글은 좀  써요?"라고 물어보신 게 기억에 선명하게 남았다.


첫 직장에서 컨텐츠 기획자로 일했던 시절, 나는 꽤나 많은 관심을 받았다. 경력자들 사이에 몇 안되는 신입 직원이기도 했고 성질은 더럽지만 시킨 일은 나름 잘해내는 요상한 신입이니 회사 사람들 눈에 들었을 터. 그 중에서도 대표님은 내가 만들었던 컨텐츠를 정말 좋아하셨다. 그래서 내가 다른 직업으로 전직한 지금도 글쓰기는 조금이라도 하셨는지가 궁금하셨나 보다.


솔직히 말하면 2018년 이후로는 제대로 된 글을 쓴 적이 없던 것 같다. 자기 전에 짧게 남기는 일기, 회사에서 남들과 똑같이 적어 냈던 보고서, 나름 인플루언서를 꿈꾸고 새롭게 시작했던 블로그 정도가 나의 글쓰기 활동의 전부. 글쓰기를 좋아하고, 또 좋은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왜이렇게 글쓰기에 소홀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결정적 이유는 바로 '자기 확신 부족'이다.


자존감이 높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바닥 수준이었던 예전의 나는 내가 가진 재능을 키우고 발전시키기보단 '에이~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무슨'이라는 생각으로 나의 앞길을 스스로 막곤 했다. 그러다 보니 나의 글을 보고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하며 칭찬해주는 사람들의 평가가 들리지 않으면 글쓰기에 대한 엄두가 전혀 나지 않았던 것. 어리석고 안타깝긴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것이 나의 현실이었다.


모든 문장이 과거형인 이유는 그래도 서른 중반이 된 지금의 나는 조금 달라졌기 때문이다. 내가 글쓰기에 조금은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됐고, 내 글을 좋아해주는 사람이 많지 않더라도 일단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됐기 때문에 다시금 힘겹게 한 글자씩 써내려 가기로 했다. 나의 나름 전성기 시절에 비교하자면 앞으로 내가 어떤 컨텐츠들을 만들어내야 할지 그런거에 대한 '기획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래서 나 스스로 모든 걸 기획하고, 적어 나가야 하지만 그 또한 글쓰기를 다시 시작한 내가 만들어나갈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남들과 비교하는 마음이 들고 남들에 비해 티끌같은 존재로 느껴질 때 나는 김미경 강사님의 말씀을 떠올린다. 지금 저 위에 있는 사람과 나의 위치가 이렇게 다른 이유는 "실력차이가 아니라 시간 차이"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오랜 시간 글쓰기를 멈춰온 나에게 이보다 위로되는 말은 없다. 실력차이가 아닌게 얼마나 다행이던가. 대신 잃어 버렸던 시간들을 글쓰기로 채워 넣으면서 나의 실력을 더 탄탄하게 만들어 나가야지. 잘쓰던 못 쓰던 남들이 '재능'이라 불러 주셨던 나의 것을 살려 나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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