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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킬 마이 론리 Jan 19. 2019

햇살에 비치는 고양이를 바라보다

집에는 단 두 시간만 해가 든다

자연광에 비치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 그중 가장 아름다운 것은 고양이라고 생각한다. 집에는 하루에 두 시간 정도만 해가 들어온다. 이전에는 더 많이, 그리고 오래 들어왔지만 집 앞에 높은 건물이 들어오고 나서는 딱 그 정도다.

여름이가 해를 쬘 수 있는 시간도 그 정도다. 여름이는 커튼 사이로 머리를 넣어 창 밖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해가 들어오는 시간에는 유독 더 그렇다. 우리는 해가 창을 뚫고 온 집안에 들어올 때면 그런 여름이를 위해 커튼을 친다.

여름이는 해가 잘 들어오는 책꽂이 위에 올라앉는다. 여름이 동공은 작아진다. 눈 부신 듯 눈을 아주 잠깐 찡그리다가 가만 창 밖을 바라본다. 그리고 한참이나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는다. 거리에서 태어나던 너는 아스팔트 위에서 더 많은 시간을 그렇게 가만히 햇빛 아래 있었을까.


어느 나른한 일요일


자연광이 닿는 피사체를 촬영할 때 놀랍도록 아름다운 순간들이 있다. 햇살 좋은 날,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찍을 때, 반짝이는 한강을 찍을 때. 그 중 가장 놀라운 순간은 이 조그마한 고양이를 찍는 순간이었다.

햇살에 비치는 여름이 잔털과 수염은 빛났다. 코는 분홍빛이었다. 그렇게나 동공이 작아진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 사진을 조심스레 찍었다. 아이폰 기본카메라에서 나는 셔터 소리가 야속했다.

여름이는 셔터 소리가 들리자 나를 돌아봤다. 여름이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은 영원 같았다. 여름이를 부르자 천천히 다가왔다. 그 모습을 사진에 담고는 한참이나 쓰다듬었다. 여름이는 유유히 내 손을 빠져나가더니 언제 그랬냐는듯 방 안을 다시 돌았다. 그리고는 그루밍을 할 뿐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니


나는 한참이나 그 모습에 허우적댔다. 종종 애인이 회사에 있는 나에게 보내주는 사진들도 마찬가지였다. 커튼 틈 사이로 들어오는 빛에 비친 고양이나 그 사진을 볼 때면 나는 자주 넋을 잃는다.

나 자신이 그런 햇살 아래서 사진을 찍은 지는 얼마나 됐는지 모르겠다. 겨울이 차갑게 드리우기 전에도 반짝이는 햇살 아래서 눈을 뜨지 못해 찡그린 그런 사진들 말이다. 햇살 아래 놓인 그 기분 좋은 순간들을 너무나도 자주 잊고 사는 듯 했다.

주말이 다가오면 또다시 햇살에 놓일 여름이 사진을 잔뜩 찍어놓고는 밥그릇에 사료를 채운 후 밖으로 나가보려고 한다. 그리고 여름이 반의 반만도 못할 내 모습을 찍어보고 싶다. 부디 주말에는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했으면 좋겠다.

여름이는 한참이나 햇살 아래 빛나다 셔터 소리에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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