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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lang magazine Feb 08. 2019

[원유진] Love your Body

우리들의 몸은 아름다워요


Love your Body, 우리들의 몸은 모두 아름다워요. 

원유진 인터뷰_SECTION 2


플러스 사이즈 모델 촬영 중

“2 년간의 제주도 생활”, 일에 지친 유진 씨에게 휴식이 필요했지만, 휴식의 시간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제주도 생활의 2년은 유진 씨 인생을 통틀어 본다면 짧은 순간이지만,  다시 시작한 서울의 사회에서는 2년이라는 시간의 공백이 컸다. 구직 활동을 다시 시작하던 와중 뷰티브랜드를 창립하게 된 첫 시작은 무엇이었을까. 


▶ 어떻게 뷰티브랜드를 시작하게 된건지.

제주도 생활을 접고, 서울로 와서 다시 회사를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한 편으로는 경력단절이라는 면에서 자신감도 떨어지고 여러모로 애매한 상황일 때였어요.

제안 오는 회사는 마음에 들지 않았죠, 

고등학교 때부터 다녔던 미술학원 친구가 사업에 대한 구상을 이것저것 했대요.

친구가  뷰티 관련 사업에 관심이 생기게 되면서, 너가 디렉팅을 해주고 함께 사업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더라구요. 

하지만 뭘 만들고 싶다는 생각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터라 당황스럽긴 했죠. 더구나 사업을시작하는 게 돈도 필요하고 리스크도 클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꽤 고민했었어요. 남편도 투잡으로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격려해줬죠. 그래서 스타트 단계에서만 도움을 주면서 리크루트 활동을 하고, 투잡을 할 계획이었어요.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되면서, 법인 설립부터 모든 계획이 구체적으로 세워지고, 프로그램 내에서 6개월이라는 시간동안 브랜드를 계속적으로 수정하고 디벨롭 하다 보니 그 기간이 짧게 느껴지더라구요. 또 한 번 시작한 일이다 보니, 열심히 안할 수가 없었어요.(웃음) 

당시에 친구, 그리고 저, 생산쪽을 담당했던 동생 이렇게 만나서 브랜드가 탄생하게 된 거에요. 


▶ 바디 전문 뷰티 브랜드는 사실 아직 좀 생소한데요. 대부분 얼굴을 위주로 코스메틱 아이템들을 사잖아요. 브랜드를 런칭하자는 의견이 모아진 후에 어떻게 지금의 브랜드까지 오게 되셨나요?

컨셉이나 브랜드 스토리를 어떻게 구성하는 게 좋을지 많이 고민했죠.

예뻐지려고 얼굴에 투자하는 색조화장품이나 스킨케어는 브랜드가 너무 많더라구요. 하지만 바디 케어 전문 브랜드는 적더라구요.

얼굴이 우리 신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밖에 되지 않는데 우린 얼굴에 97%를 투자하고 몸에 3%만을 투자하잖아요. 

그것에 대한 리서치를 많이 하면서, 마켓 진입에 있어  바디케어 브랜드가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한국에서 정형화된 사이즈가 아니어서 겪었던 스트레스도 브랜드를 디벨롭 할 때 담아냈던 부분이에요.

저희는 “각자 불편한 데가 있으면 개선하자.” 를 모토로 하고 있어요.

바디 케어 브랜드라고 해서 정형화된 모델을 통해 브랜드 제품을 홍보하는 것이 아닌 누구나의 몸도 예뻐질 권리가 있다는 것을 홍보하기 위해서 플러스 사이즈 모델을 홍보에 사용하려 했었어요. 그런데 한국에는 아직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나 통통한 모델을 보유하고 있는 에이전시가 없어서 영국 에이전시를 통해서 사진 촬영에 들어갔었죠. 그런 어려움도 있었어요.

첫 시작은 엉덩이 팩이었는데, 이슈화가 첫 목적이었죠.

몸에 붙이는 마스크가 얼굴에 붙이는 마스크처럼 축축하면 이상하잖아요? 

여러 차례 샘플링을 통해 신제품을 개발하고, 직원들끼리 엉덩이팩을 붙이고 일을 하면서 피드백을 받아 수정과정을 거쳤죠.


▶ 스타트업을 시작해서 꾸준하게 발전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도 많을 것 같아요. 브랜드 홍보부터 제작, 생산까지 모두 다 직접 알아보고 시작해야 하니까요.

그런부분도 있죠.(웃음)

스타트업 회사들이 모여있는 건물에 입주해있다보니, 스타트업 단계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기회가 많았어요. 대기업 다니다가 때려치고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고, 아이디어로 올라와서 하는 사람들도 있고. 카이스트 과학천재 등 다양한 사람들이 많더라구요.

그 분들을 만나면서 든 생각은 저 사람들도 모든 분야에 전문가가 아니라는 생각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는 거니까 이것 저것 더 배우는 거죠.

좋은 건 함께 하는 친구들이 멀티태스킹이 가능해서 여러 가지 일을 알아서 쳐내서 사내 운영이 효율적이에요.

또 브랜딩이나 마케팅은 제가 관리하는데, 제 주변에 친한 사람들이 유명한 스타일리스트나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어서요. 처음에 브랜드 홍보 차 기사를 써달라고 했던 게 꽤 긍정적으로 작용했어요. 


바디 케어 전문 브랜드로서 체형에 상관없이 누구나 몸을 예쁘게 관리하자는 취지의 브랜드 마케팅의 파급력이 좋았는지, 뷰티관련 잡지에 꽤 많은 에디터 분들이 저희 브랜드 이야기를 좋게 써주시고 있어요. 브랜드 이미지도 좋고, 먼저 체험해 본 사람들의 경험담도 좋아서 출발이 긍정적이에요.

올해에는 밀도를 높여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더라구요 .



그 시기에 주어진 선택지가 있다면 그걸 쉽게 선택하는 편이에요.

인생은 각 시기에 맞는 자신의 항아리를 찾고 채워가는 여정이래요.


▶ 유진씨는 계속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스스로의 성향을 찾고, 또 실험해보는 것 같아요.

내가 정체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 시기에 주어진 선택지가 있다면 그걸 쉽게 선택하는 편이에요.

결혼하면서, 브랜드를 만들게 되었으니 어쩌면 운명이 아닐까 하죠.

그 전에 해외 경험, 한국에서의 에이전시, 코스메틱 브랜드 VMD 등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디렉터의 성향이 맞다는 걸 알게 된거죠. 

시간이 지나면서 느끼는 게 많아져요. 

올해 서른 다섯인데, 마흔 쯤에 이 브랜드를 팔아서 호의호식하면서 사는 게 제 계획이에요(웃음)


▶ 열심히 일구어 놓은 브랜드인데, 브랜드를 팔게 된다면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아요. 그만큼 애착이 많이 갈 테니까요.

부모님 시대처럼 정년이 없고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없어졌잖아요.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 그 다음에는 뭘 할까. 가 요즘 고민이에요.

디자인 쪽은 되게 수명이 짧다고 생각해요. 디자인이라는 것이 20-30대 젊은이들의 새로운 아이디어로 신선한 것을 원하는 사람들을 충족시켜주어야 하는데, 실질적으로 40대가 넘어 그 감각을 좇아가기란 힘들 것이란 생각이 들거든요. 


▶ 그럼 디자인 계통이 아닌 다른 분야로의 전환을 생각하시나봐요.

숫자 관련된 업무를 하는 친구들의 노후가 탄탄해 보이는 거 있죠. 세무사나 변리사 같은 직종요.

제 친구 같은 경우에는 디자이너긴 한데. 갑자기 세무를 배워서 세무 어플 개발을 해서 일의 방향성을 조금씩 수정해나가더라구요. 

어떤 아주머니는 코딩을 배워서 개발자로 직업을 바꿨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그런 얘기를 듣다보니 나이에 영향을 받지 않는 직업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어떤 분야에 전문가가 되려면 7년이 필요하대요.

마흔에 커리어가 끝나면 육십까지 세 번 정도 루틴이 돌 수 있으니, 제 2의 흥미를 찾아봐야겠죠. 

지금부터 천천히.


▶해외에 다시 나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으세요?

해외 나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들죠.

만약에 결혼을 하지 않았으면 다시 나갔을 것 같아요.

얼마전에 남편과 뉴욕으로 여행을 갔었는데, 제가 스무살에 느꼈던 뉴욕은 아니었어요. 

노동자들이 길에 누워서 샌드위치 먹는 모습이 강렬하게 뇌리에 박혔어요.

이십 대 때는 마냥 뉴욕이 멋지고 좋아보였는데, 삼십대에서 다시 본 뉴욕은 너무 각박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십 대 때처럼 새로운 영감 흡수가 되진 않는 것 같아요. 다만, 뉴욕을 배경으로 했던 ‘섹스 앤 더 시티’ 주인공의 나이가 되어 다시 보니 새로운 감정들이 많이 들더라구요.


▶ 시간이 지나서 다시 보는 영화들이나 책들이 처음 봤던 그 당시와는 또 다른 감정을 전해주기도 하죠. 

과거에는 당당하게 젊음을 누리는 것이 특권이라 생각했었는데, 요새는 그게 조금 오만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을 해요.

당시에는 당연히 어른들은 이 즐거움을 알 수가 없을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어린 시절에 타인을 무시했던 게 미안하고 함부로 타인을 판단했던 게 후회가 되기도 해요.

요새 저를 재미있게 하는 일이나 이슈가 없는데, 앞으로는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게 젊음이었던 것 같아요. 

새로운 거 보고 하고 싶어 하던 열정. 

남들 보기에 재미있어 보이는 걸 하면서 살고 싶지 않고, 그냥 제가 느끼기에 조금 더 새롭고 재밌는 걸 발견하고 싶은데 아직 때가 아닌가봐요.

너무 다 끝난 것처럼 살 필요는 없지만, 옛날처럼 에너지 넘치게는 못하겠더라구요.


▶ 이미 열정을 다 소진된 게 아니라, 경험을 통해서 여유가 생긴 건 아닐까요?

그래서 스스로 미니 데드라인을 정해놓으려고 해요.

스스로라도 정해놓은 데드라인이 없으면 6년 주기로 업다운이 오는 것 같아요. 

조금의 스트레스는 있어야 인생이 재밌잖아요. 작은 스쿨을 다시 다녀볼까 이런 생각도 들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요.

삼십 대 중반이 됐는데 여전히 앞으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고, 내가 어리다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나이를 먹어도 지금이랑 나는 똑같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만 자녀나 가족이 생기면서 환경이 조금 달라지겠죠.


인생은 각 시기에 맞는
자신의 항아리를 찾고 채워가는 여정 


제가 예전에 같이 살았던 일본 룸메이트가 하던 말이 있어요.

인생은 각 시기에 맞는 자신의 항아리를 찾고 채워가는 여정이라고요. 각 시기마다 나의 항아리가 있는데, 그 항아리가 더 이상 저를 담을 수 없을 만큼 작아지면, 그 항아리를 깨고 더 큰 다음 항아리에 제가 담길 수 있도록 하는 거죠. 

한 해, 두 해 지나면 ‘원유진’ 이라는 정체성은 변하지 않지만,

단지 제가 담겨 있던 항아리의 형태가 바뀌어 가면서 여전히 성장하고 고민하는 것인가봐요.




해가 지날 수록 달라지는 내가 느껴진다. 

1년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내가 돼있을 수 있다. 


이것은 내가 다른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그 시기에 맞는 항아리를 깨고 또 다른 항아리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내 모습에 너무 낯설어 하기 보다는,

이 모습도 내게 맞는 항아리를 찾아가는 여정이기에.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고, 

내가 무엇을 하고 싶고 잘하는 건지 가끔 헷갈리는 것도 지극히 정상인 것.

그것은 나이가 든다고 해답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계속 고민하면서 항아리를 채워나가고 있는 우리의 숙제일지도.


원유진씨는 너무 깊게 생각하기보다는 

그때에 맞는 상황에 우선 주어진 선택지를 선택해본다.


어떻게 펼쳐질지는 모르는 법. 

내게 주어진 이 선택지가 결국엔 운명일수도 있으니.

너무 깊게 생각하기보다는 우선 따라가보는 것도 방법아닐까,

지금 이것이 나한테 맞는 항아리일 수 있으니까.




말랑이 담은 원유진의 색

한 해, 두 해 지나면 ‘원유진’ 이라는 정체성은 변하지 않지만,

단지 제가 담겨 있던 항아리의 형태가 바뀌어 가면서 여전히 성장하고 고민하는 것인가봐요.

Artwork by Vivi 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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