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 있는 귀신>(2025)- 부산국제영화제
<쓸모 있는 귀신(A Useful Ghost)>(2025, 랏차품 분반차촉)
- 먼지를 들이마셨거나 먼지가 된 유령들에게 몸을 돌려주는 작업
* 작품의 장면과 결말 포함
기념비가 세워지고 이어 철거된다. 그 자리에는 쇼핑 센터가 건축될 예정이다. 바스라진 기념비는 먼지가 되어 한 아파트의 창문에 날아든다. 먼지를 들이마신 내레이터, “Academic Ladyboy”가 기침을 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내레이터는 진공청소기를 사 먼지를 빨아들인다. 그런데 한밤중, 혼자 사는 집에 타자의 기침 소리가 들리더니 청소기가 먼지를 뱉어낸다. AS를 신청하자마자 도착한 수리기사 크롱은 신발을 신은 채 집안으로 들어오더니 청소기가 유령에 빙의되었다는 괴담을 들려준다. 이야기의 초점은 가전제품 제조 공장에서 폐에 먼지가 들어찬 채 죽어 공기청정기와 공장 기계를 떠돌며 빙의하는 유령 톡에게서, 공장주 수만의 며느리 낫에게로 옮겨간다. 아이를 낳다 죽은 낫은 진공청소기에 빙의해 남편 마치를 돌본다. 낫과 마치의 사랑은 수만과 그 시댁 식구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낫은 ‘쓸모 있는 유령’이 되어 남편 곁에 남기 위해 애쓴다. 그 과정에서 톡을 비롯한 다른 유령들을 제거하기에 이른다.
크롱이 들려주는 낫의 이야기가 그와 내레이터의 만남 안에 액자로 포함되어 있다가, 이내 두 이야기가 서로 맞물리고 생과 사,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뒤엉킨다. 영화 초반 톡은 원한을 가지고 생자를 위협하는 ‘나쁜 유령’, 낫은 생자에게 이익을 주고 해를 끼치지 않는 ‘착한 유령’으로 묘사된다. 이 구분은 장관-권력자의 언어다. 낫은 장관의 눈에 들어간 먼지를 청소해주고 그의 불면을 해결해 주는 등 쓸모를 증명하려 애쓴다. 장관의 불면은 저택 곳곳에 머무는 유령들이 내는 소리에 기인하는데, 이들이 태국 민주화 과정에서 국가 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죽어간 영혼들임이 드러난다. 영화는 죽은 이들을 되살리거나 이미 벌어진 일을 바람직하게 고쳐쓰는 대신 유령들에게 기계의 몸을 부여한다. 장관 저택에 방문한 낫과 마치 곁에 다과를 놓아주는 가사노동자의 신체가 화면의 프레임에 잘려나간 숏처럼, 살아 있지만 투명한 존재로 취급되는 이들의 일화도 이와 교차해 등장한다. <쓸모 있는 귀신>은 주변화되었다는 것 자체로 인물을 정의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는다. 비정상으로 여겨지는 퀴어 피플, 민주화 운동을 하다 실종된 사람들과 그 후손들, 부품처럼 취급당하는 노동자들, 남편을 돌보며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여성들의 서사가 표면적으로 나열되지 않고 유기적으로 뒤엉킨다. 인물들은 피해자와 가해자, 히어로와 빌런으로 나뉘지 않고 복합적인 레이어를 지닌다. 부유한 남자와 결혼한 소수민족 여성인 수만, 퀴어 공장노동자인 톡, 오래 전 실종된 운동가이자 퀴어인 크롱, 장관 집에서 가사노동자로 일하는 그의 딸… 등 다양한 마지널리티가 교차하는 몸들은 복잡한 역학 내에서 각자의 욕망과 의지, 사연을 지니고 생동한다. 다층적으로 구성되었고 장르에 묶이길 거부하는 이 비규범적 혼종의 영화는 숨겨둔 역학과 역사를 한 꺼풀씩 드러내는 동안 끝까지 추진력과 치밀함을 유지한다.
영화 속에서 유령들이 이승에 남은 까닭은 기억하고 기억되어서다. 내레이터가 자신에게 ‘쓸모 없는’ 이야기를 계속 듣고자 했기에 크롱의 서사는 이어질 수 있었다.(여기엔 퀴어의 욕망도 포함되어 있고 적었듯 그 점이 바로 이 영화가 진정 멋진 까닭이다) 먼지가 된 자들, 먼지를 청소하며 들이마시는 자들, 그리고 우연히 그 먼지를 마주친 다음 이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자들이 서로 엮인다. 영화는 지운다고 해서 사라지지는 않음을, 역사를 파묻는다 해서 있었던 일이 없는 것이 되지는 않음을 경고한다. 또한 지워지고 바스라진 몸에 형태를 돌려주기 위해서는 자꾸 기억하고 이야기해야 함을 설득한다.
+ “Ladyboy”라는 표현
제대로 못 듣긴 했는데, 내레이터가 스스로를 일컫는 칭호는 ‘kathoey’로 추정된다. 한국어 자막에는 ‘트랜스젠더’로, 영어 자막에는 ‘ladyboy’로 번역되었으나 둘 다 정확히 들어맞는 표현은 아닐 수 있다. (아마 인도의 히즈라처럼) 태국에서 ‘이분화된 젠더에 들어맞지 않는 여성성을 지닌 제 3의 성’을 일컫는 워딩이라고 한다.
++ 랏차품 분반차촉 감독 GV 메모 일부
여러 차례 영화화되기도 한 태국의 유명한 전설 ‘매 낙 프라카농’에서 모티브를 얻은 이야기다, 사자인 아내와 생자인 남편이 함께 사는 것을 반대하는 마을 사람들의 반응이 현재 LGBTQ+ 피플을 대하는 기성 사회의 태도와 닮았음을 느꼈다고 감독은 말한다. ‘유용한’ 존재가 된다면 비규범적 관계도 괜찮다는 식의(호주 시장을 확장해 주었기에 마치의 형이 남편과의 관계를 ‘인정’ 받았다던 영화 속 일화처럼) ‘조건부 인정’을 ‘쓸모 있는 귀신’이라는 설정에 담으려 했다고 이야기한다. 낫이 늘 입는 푸른색 수트는 80년대 오피스 레이디 룩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이 역시 이승에 기여하겠다는 메시지가 포함된 착장이라고 한다. 낫의 유령은 마치에겐 아주 초반부터 사람으로 보였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톡의 유령을 ‘해결’해 준 바로 그 순간부터 사람의 형상으로 보이기 시작함을 감독은 짚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