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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n Sep 27. 2020

여행지의 조식 공간들 - 1

여행지에서 만난 아침식사의 장면  |  Hotel Alexandra 외


이것은 여행지에서 먹은 아침식사의 기록들이다.
호텔에서 만난 근사한 조식 공간들, 어떤 호스텔의 지하 벙커 같았던 식당, 전날 시장에서 사 온 음식들로 피렌체의 작은 부엌에서 직접 차려먹는 아침, 볼로냐에서 만난 아침의 분주한 커피 바의 장면들까지.



조식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이상하게 설렌다. 조식하면 호텔이 떠오르고, 여행지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조식’이라는 말은 왠지 나에게는 ‘아침식사’ 보다는 좀 더 기대감이 담겨있는, 마치 여행에 특화된 단어 같다. 음식에 대한 기대도 있겠지만, 보통 먼 여행지에서는 밤늦게 도착해 자고 일어난 그다음 날 여정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으니, 조식을 먹는 것은 고대하던 그 여행의 첫 장면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꼭 호텔의 근사한 조식 부페가 아니어도 된다. 유럽 배낭여행을 다닐 때 묵었던 북적이는 호스텔에서도 나는 조식에 대한 기대감을 항상 갖고 있었다. 비록 한 종류의 빵이 수북이 쌓여있는 바구니, 몇 가지 종류의 잼과 꿀, 버터, 그리고 시리얼이 전부일지라도.


숙소에서 조식을 먹는 날도 있지만, 밖으로 나서는 날도 있다. 그리고 그 도시 사람들이 아침을 먹는 풍경 속에 섞여보는것으로 그날의 여정을 시작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여행지에서 만난 아침식사의 장면을 한 데에 모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지하 벙커에서 먹는 조식

프라하의 어느 호스텔 (2010)


나는 아무리 딱딱한 빵이어도 잘 먹는다. 대학생 시절 유럽 배낭여행을 다닐 때 묵었던 숙소는 대부분이 나같이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젊은이들로 북적이는 호스텔이었다. 매일 아침 조식을 먹는 공간에는 겉껍질이 딱딱한 빵이 바구니에 수북이 쌓여있고, 비워지는 족족 열심히 채워졌다. 밖으로 나서기 전 든든히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항상 충분히 먹었다. 사실 맛이 없는데 억지로 배를 채운 것은 아니고, 씹다 보면 고소해지는 빵의 겉껍질 맛이 좋았다. 바구니에 무심하게 담겨있던 버터와 잼, 누텔라, 꿀을 돌려가면서 야무지게 발라서 먹었다.

프라하의 어느 오래된 호스텔에서는 조식을 먹는 곳이 지하에 있었다. 사방이 벽돌로 된  어둑한 지하동굴 같은 공간이었다. 이 호스텔에는 거의 사람이 없었는데, 아마도 한적한 곳에 위치했고 시설이 오래되고 낡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꽤 오래된 일이고 사진도 남아있지 않아서, 그곳의 낯설고 오묘했던 분위기만 어렴풋한 잔상처럼 기억에 남아있다. 어둑했던 조도와 동굴같이 길다란 방을 채우고 있던 긴 나무 테이블, 그리고 여름이지만 지하라서 서늘하고 축축했던 땅속 공기 같은 것들이 다. 두리번거리는 나와 달리 한 중년 부부가 옆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평온하게 아침을 먹고 있었다. 나와 그 부부 말고는 아무도 없어서 썰렁하고 약간 무섭기까지도 했던 방의 공기와, 지하로 걸어내려가면서 계단을 딛었던 감촉같은 것들만 어렴풋이 기억한다. 혼자 떠난 배낭여행의 첫 숙소였고, 그것이 벽돌로 된 지하벙커에 숨어서 먹는 것 같은 빵조각 같은 식사였다는 것 정도만 말이다.




어둠 속에서 촛불을 밝히고 먹는 조식

코펜하겐의 어느 호텔 1층의 바 (2019)


마치 저녁 같은 아침이었다. 코펜하겐에 간 것은 10월 말이었다. 이미 해 뜨는 시간이 늦어지고 있었다. 8시쯤 조식을 먹으러 내려갔던 것 같은데, 밖은 한밤중 같이 캄캄했다.


조식을 먹는 공간은 이 호텔 건물 1층의 모퉁이에 위치한 바였다. 호텔 로비 한켠이 바와 문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점심과 저녁 영업을 하고 아침에는 호텔의 조식을 제공하는 모양이었다. 이 호텔의 후기에는 아무리 찾아봐도 조식에 대한 얘기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어디서 먹는지, 음식이 어떤지 전혀 모른 채 그저 나쁘지만은 않길 바랬다. 혼자 간 여행이었더라면 아마 호텔에서 먹는 대신 근처 카페를 찾아 밖으로 나섰을 테지만, 엄마와 함께 간 첫 자유여행이었고 또 첫날 아침이었기 때문에, 순조롭고 안전한 시작을 위해 호텔 안에서 조식을 먹기로 한 것이다.


밖은 아직 가로등이 켜져 있고 이제 막 캄캄한 공기가 어스름하게 푸른빛으로 바뀌고 있었다. 아침을 먹으러 온 거지만 마치 저녁 같아서, 시공간이 오묘하게 섞인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바 안은 어둑했고 테이블마다 촛불이 밝혀져있었다.


벽면은 모두 짙은 남색으로 어둡게 칠해져 있고, 그 위에는 작은 그림들과 빨간색 뜨개질 조각이 걸려있었다. 양쪽 벽을 따라서 부스소파가 있고, 소파 뒤편으로는 테이블 조명과 소소한 물건들이 놓여있던 그곳은 아무런 기대 없이 온 것치고는 꽤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그 장면을 아침을 먹는 동안 온전히 눈으로 담고 싶어서, 공간이 잘 보이는 문 앞의 창가 쪽 원형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음식이 차려져 있던 곳은 우리가 앉아있던 반대편의 창가였다. 샐러드와 과일, 살라미 종류, 치즈 등이 나무 테이블 위에 올라있었고, 뒤로는 창이 나있어 창 너머로 소박한 안뜰이 보였다. 음식이 있는 그 공간만 비스듬한 유리 천창으로 되어있어서 그 부분만 마치 온실 같아 보였다. Sunroom같은 공간이 아닐까 싶다. 테이블 위에는 어떤 음식인지 적혀있는 손글씨 팻말과 함께, 음식들이 소박하고 싱그러운 모습으로 그릇에 담겨있었다. 음식의 가짓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채소와 샐러드, 과일, 살라미와 치즈가 그릇 하나하나에 담겨진 색감과 모습이 근사했다.


한쪽으로는 빵 테이블이 있었다. 흰 천이 깔린 바구니 위에 작은 크루아상이 수북이 담겨있었다. 크루아상은 버터맛이 많이 났고 겉이 파삭하고 폭신했다. 코펜하겐에는 이 곳 사람들이 많이 먹는- 곡물과 씨앗이 아주 밀도 있게 빽빽하게 들어간 빵이 있다. 너무나 건강한 맛이라 나는 싫어했고 엄마는 좋아했던 빵인데, 이 빵도 직접 잘라먹을 수 있도록 천으로 덮여져 나무 도마 위에 올려져 있었다.


마실 것이 놓여있었던 테이블이 나는 가장 기억에 남는데, 벽은 짙은 남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그 앞에 흰 천이 깔린 테이블 위로 여러 가지 질감의 병들과 컵들이 놓여있었다. 드립 커피가 담긴 스테인리스 보온병, 우유가 담긴 투명한 유리병, 따뜻한 물이 담긴 하늘색 주전자, 두 가지 종류의 주스가 담겨있던 통, 투명한 유리병에 담겨있던 티백들, 그리고 가지런히 포개져있는 유리잔들과 반짝이는 작은 스푼 등이다. 어둡게 칠해진 벽 앞에 투명하고 반짝이는 물건들이 놓여서 대비를 이루는 그 장면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또 그 장면이 인상 깊었었던 것은 그 벽에 걸려있었던 그림 때문이다. 어떤 사람의 초상화에 머리 대신 꽃이 그려져 있었던 그림이었는데, 오묘해서 약간 무섭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해서, 왠지 약간 홀린 느낌으로 자꾸 시선이 갔기 때문이다.


조식을 처음 먹기 시작했을 때는 캄캄하고 고요한 공기 속에 우리와 어떤 일본인 남자 한 명 밖에 없었다. 그러다 밖이 점점 밝아지면서 바 안은 사람들로 찼고, 어둠 속에서 촛불과 함께했던 신비로운 시공간도 사라졌다. 엄마와 나는 아침을 다 먹고 난 뒤, 테이블 위에서 그날의 여정을 한번 짚어보고는 바를 나왔다.




커피 바에서 만난 아침의 장면들

볼로냐의 어느 카페(2016)


볼로냐는 피렌체에 숙소를 둔 채로 작은 가방 하나만 들고 기차를 타고 다녀왔다. 에어비앤비로 작은 집을 하루만 빌렸고, 짧은 일정이라 뭔가를 해 먹기에는 음식이 남아서 애매했기 때문에, 집에서는 간단하게 모카포트로 커피 한잔을 내려마시고 아침을 먹으러 밖으로 나섰다.


오래되어 보이는 어떤 카페였다. 가게 안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카페 안은 짙은 색의 나무 진열장으로 둘러싸여 있는 고풍스럽고 유서 깊은 분위기였다. 유리 쇼케이스 안에는 페이스트리들이 조명을 받으며 탐스럽게 진열되어 있었다. 가게 안은 출근하는 길에 잠시 들려 아침을 먹으려는 그곳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다. 커피 한 잔과 페이스트리 한 접시를 주문하고, 바에 선채로 후딱 먹고 떠나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그 아침의 활기참의 틈에 끼어서 나도 크루아상과 커피 한잔을 시켰다. 노란색 커스터드 크림이 들어있는 크루아상과 카푸치노가 이 곳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클래식한 식기에 담겨져 나왔다.


나는 시간 부자였으므로 바에 서서 먹는 대신에 바 근처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커피 바를 둘러싼 장면들을 관찰하는 관객이 되었다. 바 너머로 직원들이 주문을 받고 커피와 페이스트리를 건네는 모습, 손님들이 바에 선 채로 아침을 먹는 모습, 컵과 그릇이 대리석 카운터에 놓일 때 나던 달그락 거리는 소리와 작은 웅성거림으로 가득 찬 공간의 광경이 마치 연극을 보는 것 같았다. 커피 바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사소한 행동들과 오래된 공간이 주는 근사한 분위기로 가득 찼던 이 아침의 카페 풍경이, 볼로냐 여행에서의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이다.




내가 여행지에서 만난 조식의 공간들












‘여행지의 조식 공간들 - 2’에서 계속

- 피렌체의 작은 부엌에서 차려먹는 아침

- 시에나의 룸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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