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너머의 세계로 들어가는 여행 | Florence
창 너머의 세계를 상상하는 일
여행을 갈 때마다 항상 생기는 갈증이 있었다. 예전에 어떤 왕이 살았었다는 유명한 궁전의 내부보다, 나는 지금 바로 길가 옆에 서있는 건물들 안의 세계가 더 궁금했다. 그 육중한 벽과 철문과 창 너머에 있을 내밀한 공간들은 몽상과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노란 불빛이 새어 나오는 저 창 너머 안의 세계로 항상 들어가 보고 싶었다. 그건 에어비앤비가 세상에 등장하기 전부터 갖고 있었던 나의 열망이었다. 내가 소설 속에 나오는 방에 대한 묘사와 공간의 문장들을 읽는 걸 좋아하는 이유도, 누가 나 대신 저 창 너머의 방에 다녀와서 그 이야기를 전해주는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결코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던 이 꼭대기의 작은 집 이야기는 실패한 에어비앤비의 기록이다.(2016년 여름) 그리고 여행지에서 보낸 시간보다는, 여행에 대한 영감을 받고 계획하는 시간이 더 기억에 남았던 여행이다. 당시에 나는 "현지인처럼 살아보라"는 에어비앤비가 제시하는 여행에 대한 판타지에 완전히 빠져있었다. 그래서 그걸 돌아오는 여름휴가에 꼭 실행하겠노라 하고 몇 달 동안 치밀하게 계획했다. 피렌체의 모든 에어비엔비 숙소들을 속속들이 스캔하고 나서야 마침내 한 곳을 고를 수가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이곳은 가장 실패한 숙소였다. 그리고 여행지의 숙소라는 공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여지를 남겨주었다.
에어비앤비가 건드린 것은 창문 너머로 새어 나오는 불빛의 하룻밤 주인이 되어보는 판타지이다. 에어비앤비는 내가 마음속으로 간직만 하고 있었던 그 로망을 현실에서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매거진 B ‘에어비앤비’ 편의 인터뷰에서 인상 깊게 읽은 구절이 있다. “'현지인처럼 살아보라'는 것은 어쩌면 '배우'가 되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잠시나마 그곳의 현지인처럼 행동해보는 것이죠.”
여행에 영감을 주는 것들
그 해 여름에 휴가지를 피렌체로 계획할 때에 영감을 준 것들이 있었다.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그리고 <Italian Joy>와 <피렌체 테이블>이라는 에세이 책 두 권이다.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와 <Italian Joy>라는 에세이 책은 비슷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듯 보이는 풍족한 삶을 살고 있던 주인공이, 어떤 일을 계기로 삶에 허망함을 느끼게 된 때 자신의 나라를 떠나서 피렌체에 온다. 그곳에서 마주하게 된 장면 속에는 피렌체라는 도시가 주는 풍요로움이 가득 담겨있다. 도시가 가지고 있는 풍부한 텍스쳐와 색감이 담긴 삶의 공간들, 음식과 여행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일상이 있다. 피렌체라는 도시가 주는 풍요를 마음껏 누리는 그 일탈의 장면에 나는 매료되었다.
<피렌체 테이블>이라는 책은 푸드스타일리스트 김은아씨가 남편과 피렌체에 가서 한 달 동안 지낸 일상과 그들의 식탁에 올랐던 음식들을 기록한 책이다. 이 에세이의 특징은 피렌체에서 보낸 한 달의 일상이 ‘아내의 피렌체’ 그리고 ‘남편의 피렌체’로 나뉘어 기록 되어있다는 점이다. 매일매일 아내와 남편이 각각 느낀 피렌체의 기록이 담겨져 있다. 같은 일상을 보낸 날이라도 아내와 남편이 바라본 두 가지 시선이 달리 기록된 점이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시장에서 사 온 식재료로 매일 해 먹었던 음식과 레시피, 그 날 구매한 장바구니 속의 물건들의 소소한 사정들이 기록되어있다. 피렌체에 집을 두고서 근교로 짧은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그곳에 머무는 동안 쿠킹클래스를 들으러 가는 것과 같이, 이미 속해있는 일상 안에서도 또 새로운 이벤트를 계획하기도 한다. 그들이 피렌체에서 보낸 시간은 여행과 일상의 어느 경계에 걸쳐있는 듯해 보였다. 앞서 말한 영화 속에 각색된 피렌체의 모습이 근사하지만 내가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면, 이 책에 담긴 모습들은 좀 더 내가 닿을 수 있을 것만 같은 현실의 세계로 데려다주는 것 같았다.
그곳에 담긴 삶의 장면들에서 영감을 받아서 나도 피렌체의 집에 여행가방을 두고서 가볍게 손가방 하나만 들고 기차를 타고 볼로냐로 1박 2일 여행을 계획했다. 중앙시장을 들러서 프로슈토, 올리브와 선드라이 토마토 절임, 치즈와 과일과 같은 것들을 사와다가 아침마다 꺼내어 조금씩 덜어서 먹곤 했다. 그 모든 것은 집을 빌렸기에 가능한 일상들이었다.
여행이라는 연극의 각본을 짜는 일
대학생 때 배낭여행으로 처음 왔던 된 피렌체는 생각보다 감흥이 없었다. 이럴 리 없다며 뭔가 잘못된 느낌이 들었을 정도였다. 그 실망감의 이유를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도시는 아름다웠지만 그 속의 나는 왠지 어디까지나 그저 한 명의 관광객일 뿐인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흥이 나지 않았다. 나는 그 도시에 스며들어 사는 듯한 기분을 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어디에 가야 할지, 무엇을 먹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실망스러운 기억을 바로잡기 위해 다시 여행지로 정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번 여행은 다를 것만 같았다. 나에게 영감을 준 영화와 책들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여행을 계획하는 일을 마치 시나리오를 짜듯이 할 수 있었다. 그 도시에 사는 듯한 무대장치가 되어줄 현지의 집을 숙소로 정했다. 관광 명소를 찍고 다니기보다는 영화와 책 속의 행적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그들이 갔다는 로컬스러운 식당과 일상 카페들을 알아두었다. 그렇게 준비한 이번 여행은 다를 거라고 굳게 믿었다. 여행을 계획하는 일이 마치 연극의 각본을 짜는 것과 같았다.
해가 질 때쯤이면 낮에 시장에서 사뒀던 내일 아침거리를 손에 들고 골목을 따라서 집을 향해 걸었다. 며칠 안됐는데도 벌써 낯이 익어버린 어느 석조 주택 건물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커다란 초록색 대문을 열쇠로 능숙하게 열고 들어갔다. 꼬불꼬불한 난간을 잡고 돌계단을 수없이 올라서 마침내 꼭대기 층에 다다랐다. 정면으로는 창이 나있고 양쪽으로 큰 대문과 작은 대문이 있었다. 그중에 셋방처럼 생긴 작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나오는 그 집이 나의 집이었다.
에어비앤비 사이트에 몇 장 올라와있지도 않았던 그 피렌체의 작은 집 사진을, 서울에서부터 수도 없이 반복해서 보며 상상했다. 여행지의 그 방에 마침내 도착하기 전 그 순간까지도, 키를 건네받기로 한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근처의 한가한 젤라토 집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기다릴 때에도 계속 생각했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내가 그 창 너머 안의 세계로 들어와 있는 모습이 구체적으로 그려져 있었다.
사진 속의 집은 작지만 운치가 있었다. 앤틱한 찬장과 벽돌로 된 바닥에는 왠지 세월이 스며있을 것 같았다. 바닥 위에 깔린 양탄자 카펫, 아담하게 생긴 부엌 벽면의 파란 꽃무늬 타일, 토스카나 지도가 그려진 벽면의 액자가 소소하지만 멋져 보였다. 프로필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호스트 부부의 인상처럼 집은 작지만 따뜻하고 아늑해 보였다.
그리고 여행지에서 마저 써 내려간 이야기
(+ 실패한 숙소에 대한 기록)
우리가 여행지의 방에 기대하는 것들이 있다. 낯선 도시를 하루 종일 누비고 돌아온 고된 몸을 뉘일 폭신하고 깨끗한 시트, 방 안을 가득 채우는 따뜻한 노란 불빛과 온기 같은 것들이다. 우리에게 집이라는 공간이 마음이 편안해지는 안식처이듯이 여행지의 숙소에 바라는 바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행하는 동안의 나의 집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비록 낯선 도시를 여행 중이긴 하지만, 이 공간만에서 만큼은 흥분과 긴장을 내려놓고 안식할 수 있는 집과 같은 공간이기를 바란다.
내가 여행지에서 마저 이어나갈 몫으로 남겨두었던 이야기는, 여행이 늘 그렇듯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쓰여졌다. 피렌체에서 일주일 동안 현지인처럼 살아보는 여행을 위한 시나리오와 무대 장치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중요한 걸 간과하고 있었다. 사진은 죄가 없었다. 내가 마주한 공간은 사진 속으로 걸어온 듯 사진에서 보이는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곳은 집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 집은 박제된 쇼룸 같았다. 생명이 살고 있지 않아서 한여름이 가진 활기보다는 어쩐지 서늘한 느낌이 드는. 알고 보니 이 집은 여행객들에게 에어비앤비로만 돌리는 집이었다. 누군가가 거주하기는 집이 작아서 생활 반경이 제한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번듯한 석조 주택의 꼭대기층에 있는 작은 집인 것으로 보아서, 일반적인 집이라기보다는 오래전엔 복도 맞은편의 큰 집을 돌봐주는 집사나 메이드가 살았던 작은 셋방 같은 곳이 아니었나 상상해본다. 누군가가 상주하면서 돌보지 않는 집에는 아무래도 삶의 온기가 깃들기는 어려웠나 보다.
호텔에서 기대할 법한, 풍덩하고 뛰어들 수 있는 새하얗고 안락한 침구도 기대할 수 없단 걸 알지 못했다. 나란 사람은 평소 어지럽혀진 공간도 잘 내버려 두는 사람인데, 어쩐지 찝찝한 기분이 들어 침대에 커다란 수건을 깔고서 매일 좁은 반경 안에서 잠을 청했다.(나중에 경험한 에어비앤비 숙소 중에는 깨끗하고 새하얀 침구가 있는 곳도 있었다. 그저 호스트의 재량일 뿐.) 낮에 거실에 있을 때에는 언제 빨았는지 알 수 없는 천으로 덮인 소파 위에 앉는 대신, 딱딱한 이케아 식탁 의자 위에 두 발을 모으고 쪼그려 앉아있곤 했었다.
집안에는 여러 공간이 있었지만 어느 한 곳 안락하다고 느끼는 공간이 없었다. 그저 창가 옆의 작은 테이블, 거실의 소파 한 귀퉁이, 편히 엎드려 누울 수 있는 침대 위 중에서 어느 한 곳이라도 상관없었다. 그렇지만 일주일 동안 아무리 집안을 빙빙 돌아보아도 편안하게 있을 곳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사진 속에서는 결코 알 수 없었던 것이 하나 더 있었다. 집 특유의 냄새였다. 집뿐만 아니라 복도를 포함한 이 오래된 주택 건물 전체에서 수돗물의 소독약 같은 냄새가 진동을 했다. 한 냄새를 오랫동안 맡으면 결국 익숙해져 못 느끼게 되기 마련인데, 이 냄새는 일주일을 맡아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 소독약 냄새와 맞지 않아 그랬던 것인지 휴가를 떠나오기 전에 밤을 새우다시피 야근을 해서 인 건지, 이 집에서 머무르는 동안은 내내 감기 몸살을 앓았다.
몇 달 동안 심혈을 기울어 계획했던 피렌체에서 살아보기 계획은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다. 대신 실패한 숙소의 경험이 쌓여서 여행지의 숙소에 대한 나의 기준을 잡아나가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 집을 나와서 피렌체를 떠나기 전 마지막 날 묵었던 호텔에서 전혀 상반된 경험을 했는데, 그 두 공간의 대비된 경험은 Hospitality(접객) 공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를 가져다주었다.
피렌체의 이 작은 셋방에서 지내는 동안 호스트와 마주친 적이 없었다. 첫날도 집을 청소해주는 관리인을 통해 열쇠를 건네받았는데 알아들을 수 없는 이탈리아어로 화장실을 사용할 때 조심할 점에 대해 목청을 높이는 듯하더니, 별안간 혼자 남겨지게 된 것이 체크인에 대한 기억이다. 호텔이었다면 적어도 리셉셔니스트가 사무적인 인사라도 건네줬을 텐데, 왠지 낯선 도시에서 외톨이가 된 기분이었다.
이 집 다음에 묵었던 숙소는 오히려 호텔이었음에도 집과 같은 경험을 주었다. 호텔도 집과 같은 사적인 경험을 줄 수 있으며, 오히려 익숙함과 낯섦의 그 오묘한 경계에 걸쳐있는 환대의 경험이 호텔을 더 매력적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호텔은 체크인의 경험, 공간과 분위기(Ambience), 스태프의 응대까지 하나의 톤 앤 매너로 잘 짜여진 한 편의 영화와 같았다. 내가 여행지에서 기대했던 비일상의 판타지는 그런 것이 아니였나 싶다.
(그 호텔에 대한 경험에 대해 쓴 브런치 글 : 집과 호텔의 경계 )
첫 에어비앤비의 경험에서 살아보는 여행의 쓴 맛을 느껴보고는 나와는 맞지 않다고 생각해서 이후에는 여행지의 숙소 선택지에서 멀리하게 되었지만, 항상 궁금해했던 창 안쪽의 세계에 대한 오래된 호기심의 대가를 지불한 셈이 되었다. 그래서 실패했지만 기억에 남는 여행이다.
나는 여전히 창 너머의 그 세계들이 궁금하다. 집에 거주하는 이의 세계가 담긴 진짜인 삶의 장면들이 궁금해서 아직도 호기심을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Apartamento와 같은 잡지를 뒤적이고, 매거진 B의 ‘The Home’의 발간 소식에 서점으로 달려간다. 내가 가보지 못한 그 공간들을 들여다 본 이야기를 듣는 일에 계속 갈증이 날 것 같다.
여행에 영감을 주었던 것들
그리고 내가 만난 창 너머의 세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