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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잼스 Jan 14. 2024

시골에서 한겨울을 나는 법

음악은 꽃이 되고 책은 잎이 된다

가수 신지훈의 ‘추억은 한 편의 산문집 되어’를 듣는다. 순식간에 마음의 빗장을 풀어버리는 그녀의 음색은 하늘의 축복이다. ‘여자아이들’의 ‘민니’와 ‘우기’의 노랫소리도 마찬가지다. 귀로 들어와 이마 앞에서 머물다가 가슴에 내려앉는다. 나른하고 애잔한 목소리는 온몸에 스며들어 혼자 있는 이의 고독을 부드럽게 다독인다.

     

그 노래가 좋다고 말하는 순간 누군가와 나 사이에는 선율이 흐른다.    

  

긴 겨울밤은 임윤찬과 양인모를 탁자 앞에 데려다 앉혔다. 그들이 연주하는 바흐(Bach)의 ‘3성 리체르카레(Ricercar a3)’나 비토리오 몬티(Vittorio Monti)의 ‘차르다시(Czardas)’에 묻혀 매일 밤 키보드를 두드리는 일이 요즘 일상이다. 음악은 취향에 착 달라붙어 견고한 울타리를 만들고 며칠씩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아니 나 스스로 행복감에 갇힌다고 해야겠다.      


깊은 새벽, 거실의 너른 공간에 부딪히며 되돌아오는 음악을 기쁨으로 만끽한다. 아스라한 멜로디는 구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의 ‘낮잠’에 깃들어 편안하게 누웠다가, 전기(田琦)의 ‘매화초옥도(梅花草屋圖)’ 안으로 살짝 숨는다. 구불구불 시골길 따라 반가운 이가 저기 어디쯤 오고 있다는 착각에 살짝 달뜬다.

     

Gustave Caillebotte <낮잠>,  田琦 <매화초옥도>


이런 <그림의 힘>을 김선현의 책에서 발견한다.      


북클럽에서 만나는 전자책은 시골에 와서 매일 밤 어울리는 친구다. 아련한 선율 속에 이리저리 책장 속을 거닐다가 <말을 부수는 말, 이라영 著>나 <아픔이 마중하는 세계에서,양창모 著>와 같은 책을 만나면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  

    

감히 내 안에 다 담을 수 없는 삶이 있다. 고통스럽지만 비관하지 않는 모습들이 굳어진 내 어깨를 두드리고 간다. 불행에서 비켜선 듯 안도하는 가슴 한 편의 졸렬함이 부끄럽다. 어떤 글은 표현이 담담해서, 너무나 솔직해서, 이제껏 알지 못한 것들을 깨우쳐 줘서 한숨으로 가라앉는다. 느릿느릿 커피 한 포트쯤 비워질 때면, 나는 조금 전과 다른 사람이 된다.    

 

계절이 쉬는 겨울, 음악은 꽃이 되고 책은 잎이 된다.     


마음의 광합성을 한다. 새롭게 발견하는 음색에 전율을 느끼고, 엉덩이를 떼지 못하게 하는 글귀에 빠져든다. 삶의 방향이 여러 갈래임을 노래와 책이 다시 일깨운다. 수천 번을 반복해 연습하고 덜어내고 깎아내는 인고의 시간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싫증과 변덕은 그 앞에 고분고분해진다.

 

까맣게 먼 어느 밤 라디오에 귀 기울이던 십 대의 노랫소리는 이제 예순의 시골 밤을 흘러가고, 살아낸 하나의 산문은 밤새도록 타오르다가 빨갛게 익은 새벽의 잉걸불처럼 나의 겨울을 녹인다. 다시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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