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새네요. 틈을 막았다고 자신했는데 그게 아닌가 봐요. 하긴 극한호우에 멀쩡한 게 더 이상하겠죠. 장마가 지나면 선룸 차양을 다시 손봐야겠습니다. 오래된 집은 손이 많이 가요. 사람도 마찬가지잖아요? 스스로 돌볼 수 있을 때가 좋은 거죠. 남의 손을 빌리면 이제 늙었구나 싶을 것 같아요.
여기저기 곰팡이가 피었어요. 장마가 길어지면 겪는 일이에요. 호수가 가깝고 뒤꼍에 냇물이 있어 더 눅눅한 것 같아요. 항상 습도계로 확인하죠. 그렇지만 포자는 숫자보다 빨라요. 얼른 락스를 뿌리고 걸레로 닦아내지만 한눈팔면 금세 또 나타날 거예요. 그래서 한여름에도 오늘처럼 스토브를 켜곤 합니다.
집 안에 거미줄이 보여요. 벌레가 어디로 어떻게 들어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빗물처럼 습기처럼 눈에 띄지 않는 틈을 타겠죠. 밖에서 만나는 크고 화려한 연둣빛 거미면 기겁했을 텐데 검고 눈에 잘 띄지 않을 만큼 작아요. 거미 생존의 기술엔 TPO도 들어가 있나 봅니다. 그저 보이는 대로 걷어낼 밖에요.
나방과 하루살이가 포충기에 걸려 따다닥 소릴 냅니다. 아주 드물게 그리마도 눈에 띄죠. 지금은 없어져 다행이지만 처음 시골집에 왔을 땐 커다란 지네를 보고 기겁을 한 적도 있었죠. 얼마나 많은 벌레와 같이 살고 있는 것인지 가끔 궁금해집니다.
먼데 사는 친구에게 연락이 왔어요. 집을 비운 동안 옥수수밭에 멧돼지가 다녀갔다는 소식입니다. 초토화된 밭을 보며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고라니 정도는 이제 흔한 짐승이지만 그 친구 동네엔 뱀과 너구리도 자주 돌아다닌답니다. 아, 우리 집에도 몇 번 박쥐가 안으로 들어와 혼비백산, 쫓아내느라 소란스러웠던 적이 있었네요.
김을 매요. 성가신 일이죠. 풀은 폭우에도 끄떡없어요. 풀은 저 깊은 바닷속에서 왔잖아요? 제대로 물 만난 거죠. 까마득한 옛 기억에 잠겨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부러 키우는 꽃이나 채소는 흐느적거리고 있지만 말이죠. 녹슨 호미로 풀을 뽑겠다고 끄적거리지만 사실 나도 제풀에 지칩니다.
여우볕에 텃밭으로 갑니다. 오이, 애호박, 고추, 당근, 토마토가 폭우를 견뎠어요. 얼마 전엔 양배추를 모두 걷었고요. 여러 차례 이웃과 나눴어도 늘 밥상엔 제철 채소, 디저트까지 채소예요. 냉큼 열매만 얻기 미안해 시든 잎도 따주고, 그러다가 모기에게 다리도 내줍니다. 내 먹을 것 챙기다가 졸지에 모기 밥이 됐네요.
날씨가 생활을 정합니다. 집안에 갇혔어요. 검푸른 하늘과 축축한 땅, 꿉꿉한 공기와 끝 모를 빗줄기, 바람마저 세게 불면 완전 가택연금이죠. 심심해서 뭘 할까 하다가 오이소박이를 담갔어요. 같은 채소지만 다르게 오래 먹고 싶어서요. 해놓고 나니 내가 기특한 거예요. 살림의 묘미고 즐거움이죠. 그러고 보니 지지고 볶으며 잘살고 있는 것 같네요.
어느 날엔가 아침 새소리가 갑자기 요란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사실 새들은 계속 지저귀고 있었는데 백색소음이 되어 잠시 안 들렸던 거죠. 한낮의 매미 소리, 한밤의 개구리 합창도 귓등으로 흘리곤 합니다. 익숙해지니 안다고 생각하고, 잘 안다고 믿으면 보려 않습니다. 알량한 앎이 눈과 귀를 가리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습니다.
어느덧 시골살이 3년이 넘어섰어요. 그 절반은 5도 2촌이었죠. 주말이면 넓은 마당을 한껏 어지럽히고, 풀꽃, 나무, 벌레와 친해지고, 가볍게 먹거리를 키워 먹는 일이 소풍날의 보물 찾기처럼 느껴졌죠. 어지러운 5도를 뒤로 한 채, 자연에서 맞은 2촌 생활은 단순하고 생기 발랄했습니다.
어떻게 그리 쉽게 가까워질 수 있었을까요? 잊고 살지만, 인간도 자연의 일부입니다. 자연 속에서 자연으로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 본래의 모습이겠죠. 서로 어울리길 원하는 데 거부할 리 없습니다. 사람에 대한 자연의 셈법은 득실, 관계 따위에 있지 않으니까요.
누군가 안부를 물어요. 혼자 지내기에 외롭지 않냐고. 때론 외롭기도 합니다. 그런데 외로워서 좋아요. 고독이 주는 쓸쓸함이 좋아요. 심심하다 싶으면 ‘번잡한 마음이 쉬고 있구나’ 생각해요. 무엇보다 비교하고, 싸우고, ‘그래도 해야지 어떡해’하는 한숨이 사그라들죠. 그러니 고독이 편안해집니다.
토드 로즈(Todd Rose)가 쓴 <평균의 종말>을 읽었어요. 모든 인간의 선천적 특징은 극도의 다양성에 있고, 실제 평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평균은 사고의 편리를 위한 허상’이라는 거죠. 여기 시골 마당엔 ‘적어도 중간쯤 가야’ 하는, 막연한 평균의 중압감은 없습니다. 다양성과 개별성이야말로 자연의 섭리라는 걸 매 순간 자연에서 배우죠.
이제 장마가 끝나면 해야 할 일이 많아질 것 같습니다. 방수, 곰팡이, 거미줄, 잡초... 소박이 담그듯 차근차근하게 해 나가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