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급식백선생 Aug 09. 2020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지, 오늘도 게으름에게 1패.

나도작가다공모전 -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

브런치를 시작하고 종종 보였던 '나도 작가다 공모전' 태그는 나로 하여금 궁금증을 자아냈다. 

'매번 글을 발행할 때마다 보이는 이 태그는 뭘까?'

우연히 해당 공모전의 공지사항 글을 보게 되었고, 3차 공모전의 마감일이 3일 남짓 남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공모전의 주제는 '나를 나 답게 해주는 것'


주제도 참 멋지지 싶었다. 나를 나 답게 해주는 것이라니. 36년 인생을 살면서 이런 주제를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있던가? 잠깐의 생각과 사색을 하고 지나가는 것과 그것을 글로 남기는 것은 다르다. 한번 거창한 주제에 관해서 정리된 생각을 남기고 싶었다.

'그래 공모전의 주제도 마음에 들고, 내가 이것을 우연히 본 것도 뭔가 계시가 있는 것 아니겠어?'

공모전의 공지사항을 우연히 보았다는 사실에 약간의 운명론을 덧붙여 스스로에게 참가해야겠다는 최면을 걸었다. 


남은 시간은 3일 남짓이었지만, 그래도 시간은 충분하다고 여겼다. 출퇴근 시간 운전하며 음악도 듣지 않고 나를 나답게 해 주는 것은 무엇인지, 수많은 '나다움' 속에서 무엇을 선정하여 글을 써내려 갈 것인지 나름의 깊은 고민을 했더랬다.

'인생의 여러 갈림길에서 결정했던 수많은 선택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결국 지금의 나는 수많은 선택들의 결과 아닌가?'
'5달 전, 우리 아들이 세상에 나오고 나서 이름을 지었던 과정을 써볼까? 인생에서 가장 많은 차별성은 이름에서 나오잖아?'
'이왕이면 남들이 보는 글을 쓸 텐데, 내가 가지고 있는 장점들에 관한 썰을 풀어볼까? 공개적으로 자기 PR도 하고 은근슬쩍 자기 자랑하는 거지 뭐.'
'아니다. 이런저런 작가님들이 같은 주제로 글을 쓸 텐데, 차별성이 없으면 묻히는 것 아닌가? 선생님이라는 직업적인 특성을 살려서 나만의 교육철학에 관해서 이야기해보는 것은 어떨까.'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많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들은 결국 글로 옮겨지지 못했다. 타고난 게으름 때문이리라. 현재 시각 8월 9일 오후 10시 57분. 공모전 마감시각을 1시간 3분 남기고 있다. 미리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있었다. 

금요일 오후, 조퇴를 하고 일찍 집에 와 놓고서는 낮잠을 자지 않았더라면. 

토요일 저녁, 어린 아들을 재우고 휴대폰으로 게임 삼매경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일요일 저녁시간에 1년 만에 만나는 친구들 모임이 있다는 것을 미리 계산하고 행동했더라면 말이다.


이쯤 되니 자포자기다. 공모전에는 참여를 해보고 싶고, 앞서 선정한 글감으로 글을 작성하기에는 시간적인 여유가 부족하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지금 쏟아지는 생각들을 필터링 없이 글로 옮기는 것이다.




'게으름'

그렇다. 나는 무척이나 나태한 사람이다. 나를 구성하는 많은 성격들을 잘게 쪼개어 보면, 어느 한편에 분명히 자리 잡고 있을 녀석이다.


학창 시절 나름 모범적인 학생인 듯 그 시절을 보냈다. 중학교 때부터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한 달 정도 독서실 이용권을 끊어서 저녁 10시쯤까지 있다가 집에 들어오곤 했다. 우리 부모님은 얼마나 대견하셨을까. 하지만 속사정을 알고 나면 속이 좀 쓰리실 거다. 나는 독서실 책상에 앉아서 6시부터 10시까지 4시간 동안이나 라디오만 듣다 집에 갔으니까.


대학교 시절도 마찬가지다. 수능이라는 굴레에서 해방된 이후에는 더욱 자유로워졌고. 게으름은 더 쉽게 나를 지배했다. 조별과제를 함께 하는 친구들에게 '그냥 내 이름 빼고 과제 제출해줘.'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나름 염치는 있었다.) 어머니께서 용하다는 점쟁이에게 받은 '올해 임용고시는 떨어진다.'라는 결과는 굳이 점쟁이에게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우리 학교 동기생들은 모두 알고 있었을 내용이었다.


시간이 지나 이런 나태함은 나를 잠식하여 지금은 발등에 불이 떨어지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다소 자조적인 글이지만, 이 글을 쓰다 보니 참으로 나답다는 생각이 든다. 마감시간을 한 시간 남기고 시작한 즉흥적인 글이라니.

나는 게으른 사람이다.

하지만 그래서 항상 여유가 넘친다. 다른 사람에게는 최후의 보루인 시간까지도 괜찮다고 여기니까.

나는 게으른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임기응변에 강하다. 뭐든 급하게 처리하니 자연스럽게 발전한 능력이다.

나는 게으름 사람이다.

그래서 효율적이다. 일석이조는 눈에 차지 않는다. 일석 사조나 오조쯤 되는 효율이 있어야 움직인다.




누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 글을 읽게 될 사람들의 반응이 눈에 선하다.

'이놈 뭐지?'

그렇다면 더욱 주제에 맞는 글이 아닌가?

게으름이란 녀석이 결국은 남들은 이해 못할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 테니.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타고난자, 노력하는자, 즐기는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