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을 수 없다.'라는 진부하지만 반론의 여지가 없는 명제가 있다. 우리나라의 많은 선생님들은 이 명제에 부합하도록 교사의 질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모임과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교육계에서는 교사의 '전문적 학습공동체' 구성을 장려하고 있다. 교직경력이 10년을 넘어가는 나도 사실은 숱한 '학습공동체'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그 많은 학습공동체는 나에게 어떤 의미가 되었을까?
아래의 내용은 교직생활 10여 년간의 경험을 담은 내용으로, 모든 내용 앞에 '당시'라는 말이 생략되었다고 전제하고 글을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현재와는 다른 내용이 있습니다.
1. 이거 해야 한다는데?
교사 동아리를 만들어야 한대.
그렇게 우리 학교 선생님들에게는 3가지의 선택지가 주어졌다.
기타, 스포츠, 독서토론.
대학시절 통기타 동아리에 속해있던 경험을 들킨 나는 얼떨결에 교직원 기타 동아리의 회장을 맡게 되었다. 기타를 가르쳐주는 것 자체에는 어려울 게 없었으나 문제는 운영에 관한 것이었다. 주 1회 모임을 목표로 매주 선생님들께 참여 독려 쪽지를 보냈지만 큰 뜻이 있어 참여한 동아리가 아니었기에(3개중 하나는 반드시 신청해야 했다.) 반응은 시큰둥했다. 나름의 열정을 보였던 몇몇 선생님들께서도 매주 방과 후에 시간을 내어주기란 쉽지가 않았다. 학교는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그런 곳이니까.
독서토론 모임 하기로 했어요. 학년별로 책 선정해 주세요.
연구 선생님의 교무회의 중 공지사항이었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무회의는 '회의'라는 말이 무색하게 쪽지로 보내는 것보다 조금 더 비중 있는 내용을 공지하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우리 동학년에서는 하나의 책을 선정해야 했었고, 그 책을 선정하는 일 역시 학년 부장 선생님께서 추려낸 3~4권의 책중에서 선택하는 방식이었다. 어느 날 뚝 떨어진 책이 잘 읽힐 리가 있겠나. 매번 독서토론을 하기 전날 급하게 해당 범위를 훑어보고 깊이 있게 읽지 않은 것을 숨기기 위해 무던한 노력을 했더랬다. 학년에서 이루어지는 독서토론은 초반에 몇 마디 책에 관한 내용이 오가다가 결국은 학년의 문제 상황에 관한 이야기로 귀결되었다.
이번 달에 동료장학 실시합니다. 수업계획 제출해 주세요.
학교에서는 정기적인 동료장학이 있다. 평소 교실이라는 벽에 막혀공개하기 쉽지 않은 교실 수업을 동료 선생님들께 공개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행사이다. 물론 이 행사에도 편법은 존재한다.
"오늘 3반 선생님 공개수업하시는 날인가요? 그 시간에는 저도 수업이 있어서요. 사진 찍을 때 연락 주세요."
현실적으로 참여에 어려움이 있어서 공개수업에 참관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래도 시간 맞춰 해당 교실에 들러 사진을 남긴다. 사진은 실적이 되기에.
"어제 수업 협의할 때 실수로 사진을 못 찍었네요. 점심시간에 잠깐 모여주세요."
실수로 협의하는 사진을 못 찍으면 따로 모여 사진을 찍기도 한다. 물론 협의 없이 사진만 찍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위와 같은 상황은 학교에 '의무적으로' 떨어지는 일종의 시스템들이다. 의무적인 시스템은 자발적인 활동에 비하여 참여 의지는 높여주지 못하면서 반드시 어떤 결과를 제출해야 한다. 다양한 겉치레들을 양산하며 실제적인 운영보다는 얼마나 서류를 잘 갖추었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강요된 학교 내의 크고 작은 교사모임들은 몇 컷의 사진과, 일괄적으로 사주는 책, 담당자의 지어낸 보고서로 끝이 나는 것이다.
2. 답답하다. 좀 배울 곳 없나?
학교 현장에서는 교사에게 수많은 역할을 요구한다. 그리고 나 역시도 수많은 역할과 덕목에 부응해야 좋은 교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하여 수많은 부분에서 부족함을 느끼고, 수많은 부분에서 좌절을 겪게 된다.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이나 좌절을 겪게 된 부분은 온라인 연수 시스템을 통해 일부 보완해보려 하지만, 대부분의 온라인 연수는 기초적인 개념을 알려주는 수준이어서 가려운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주지는 못하는 느낌이다. 때문에 집합하여 실시하는 연수를 듣거나, 관련 분야의 교사모임에 참여하거나 하는 식으로 선생님들은 배움의 영역을 넓혀간다.
몇 년 전에 교육과정을 연구하는 학년별 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나는 6학년의 담임을 맡고 있었고 과목별 교육과정을 연구하여 학급에 적용하고, 동시에 같은 학년을 맡아 운영하는 다른 학교의 담임교사들과 함께 생활지도 방안이나 학급운영에 관한 팁을 나누고 싶은 목적이 있었다. 그런데 해당 모임은 당시 한창 논의가 시작되는 중이었던 '교육과정 재구성'을 일찍이 적용해보는 것으로 방향성이 잡혔다. 중요한 논제의 적용과 실천에 관한 모임이 되었지만 애초에 내가 원했던 목적은 달성하지 못하였다.
이후에도 혁신학교, 학교폭력 관련, 디베이트 토론 등 몇몇 모임에 참석할 기회를 가졌으나 기존의 모임 운영에서 내가 원하는 방향과 원하는 방식을 딱 맞게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3. 의지와 방향이 맞게 된다면?
작년에 참여했었던 학습공동체는 이제까지 했었던 모임중 가장 이상적인 모임이었다. 선배의 추천으로 알게 된 '전북혁신교육 네트워크'라고 하는 교사 공동체 안에는 다양한 소모임이 존재하고 있었다. 과목별 교과 연구회, 민주시민교육, 풀뿌리 지역교육, 그림책, 교육정책, 참학력 등등.
10여 년의 교직생활을 거치면서, 항상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교사가 갖추어야 할 수많은 덕목에 항상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직 스스로의 교육철학조차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있는 교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기본으로 돌아가 나의 교육철학부터 단단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참여하게 된 '교사교육과정/교육철학' 소모임은 이야기를 나누는 주제나 모임의 진행방식이 내가 원하던 방식과 아주 잘 맞았다. 한 달에 한번 정도의 정기적인 모임으로, 실천했던 수업내용을 나누고 교육적인 주제로 토론을 실시했었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소모임이었다.
그 소모임에 참여하는 선생님들은 어디에서 근무하시는지 궁금증이 들 정도로 '이상적인' 분들이었다. 교육의 철학도 이미 단단하고, 교육에 임하는 진정성이흘러넘치고, 그것을 현장에서 실천하는 데에도 열정적인 분들.'조금은 성장한 것 같다.'라고 느꼈던 몇 안 되는 순간 중 하나였다.
제대로 운영되는 전문적 학습공동체는 교사의 성장에 유의미한 결과를 준다는 확신이 든다. 다만 자신에게 잘 맞는 공동체를 찾아 참여하는 것이 좋겠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학습공동체 존재의 의의가 되는 말이 아닐까. 혼자보다 조금은 더딜지 몰라도, 분명 꾸준히 뚜벅뚜벅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