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에 참석하였으나 그 내용에 집중력을 잃어 갈 때쯤.
다이어리 한편에 쓰여있는 질문이 눈에 들어왔다.
'살면서 당신이 후회하는 것 3가지는 무엇인가요?'
줄곧 생각해 오던 주제는 아니었지만,
그 질문을 보자마자 단숨에 3가지 상황을 적어버렸다.
스키장, 전국일주, 강진.
보통, 사람들은 두 가지 측면에서 후회를 하는 것 같다.
1. 자신이 저질러버린 일에 관한 후회
2. 자신이 잡지 못한 기회에 관한 후회
그래서 'XX는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사용되는 것 아닐까?
첫 번째, 자신이 저지른 일에 관한 후회는 결국 스스로의 성향과 선택에 의한 결과이고 그것에 관한 후회는 그 결과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게다가 그런 속성의 후회 목록은 공개적으로 밝히기 어려운 게 많으니 브런치에 글로 남겨둘 수는 없는 일이다.
내가 생각해 낸 후회의 기본 속성은 두 번째에 있었다. 자신이 잡지 못한 기회에 관한 후회는, 뭐랄까. 후회라기보다는 아쉬움에 가깝다. 자신이 강하게 원하던 상황을 나태함이나 나약함 때문에 못하고 지나가 버리는 경우에서 오는 후회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꼭 하고 싶었으나 행동하지 못한 일이 3가지 있다.
1. 스키장 - 20살,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스키장 아르바이트.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사촌 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겨울방학 동안 스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건데 자리가 하나 있다고. 같이 할 생각 없냐고.
무척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두 달 정도 숙식을 제공해주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스키는 실컷 탈 수 있단다. 여러 가지 위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는데, 기회만 잘 맞으면 스키 실력도 수준급으로 갖출 수 있을 것 같았다. 학생 아르바이트에는 최저시급 개념도 없던 그 시절에 겨울 시즌 합쳐 300만 원 정도를 벌 수 있다는 제안도 흥미로웠다.
하지만 결국 그 제안을 수락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겨울방학 동안 대학교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과 술도 좀 마시고 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때 배우고 있던 운동이 있었는데(특공무술), 그것을 중지하고 가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는 핑계였다. 지나고 나면 크게 우선순위가 있는 이유는 아니었는데, 어쨌든 그때는 그런 마음이었다.
지금도 가끔 스키장에 가서 스키를 탈 때마다 잊지 않고 스멀스멀 생각난다.
'그때 거기 갈걸...'
2. 전국일주 - 20대 전체, 매년 여름, 자전거로 하는 전국일주.
나는 그렇다. 유행에 무감각한 척하면서 한편으로는 관심이 많다. 대학교 시절을 즈음해서, 자전거를 타고 전국일주를 하는 게 일종의 유행이었다. 아마도 해외여행이 일반적이지 않던 마지막 시기쯤 되는 듯하다. 그러면 여행의 끝판왕은 자연스레 전국일주로 귀결된다. 게다가 홀로 하는 것이라면 더욱.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순회한 과정을 기록한 블로그가 꽤나 인기 있었고, 어떤 만화가는 자신의 신혼여행을 자전거 전국일주로 선택하고 진행하는 과정을 만화로 그리기도 했다. 서점에 가면 관련된 책들이 몇 권이나 있어서 그곳을 지나칠 때마다 읽어보기도 했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 가족은 친구네 가족(아버지의 절친)과 함께 전국일주 식 여행을 했던 기억이 있다. 두 가족이 차를 타고 5박 6일간 텐트를 차에 싣고 곳곳을 다닌 기억은 지금도 인상적으로 남는다. 전국의 도로망이 복잡하게 펼쳐진 지도책을 보면서 어디쯤 가고 있는지 찾아보는 재미가 있었다.(내비게이션도 없던 시절 아버지께서는 초행길을 어찌 그렇게 잘 다니셨는지...)
어린 시절의 추억 때문인지 몰라도 나의 여행 스타일은 명소구경도 먹방 찍기도 아닌 '지도 밝히기'타입에 가깝다. 처음 보는 장소, 새로운 장소를 두발로 딛는다는 것 자체에 재미를 느끼는 스타일인데 그런 의미에서 자전거 전국일주는 나와 잘 맞는 여행 방식이었을 것이다. 대학시절마다 여름방학이 되면, 군대를 전역하고 나서 도 마음속에 계획은 늘 품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이도 실행하지 못했다. 이런저런 핑계는 많았지만 결국은 나의 게으름과 우유부단함 때문이었다.
3. 강진 - 24살, 임용고시 후 겨울, 친구 학교에서 기간제 하기.
두 번째 임용고시를 치르고 나서였다. 대학시절 둘도 없이 친하게 지내던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기 학교에 갑자기 사정이 생겨 기간제를 구한다고. 한 달 정도 함께 일할 생각이 없냐는 제안이었다. 친구의 근무지는 전남 강진. 땅끝마을 해남 바로 옆에 위치하여 바다를 끼고 있는 자그마한 학교라고 했다. 가장 큰 자랑거리는 바다가 보이는 우레탄 바닥의 농구골대가 있는 학교라는 것이었다. 대학시절 함께 농구동아리 생활을 하며 친하게 지내던 우리에게는 최고의 미끼였던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시골의 한적한 학교에 관한 호기심도 있었고, 초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집 근처의 학교를 다니던 나로서는 독립을 향한 열망도 강한 시기였다. 거기에 친한 친구와 바닷가, 농구골대라고 하면 그 시절의 로망을 모두 갖춘 조건인 것이었다.
하지만 임용고시 2차를 며칠 앞두고 있기도 했고, 너무 먼 거리라 선뜻 대답하기 어려워 2~3일 대답을 망설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못하면 후회할 것 같아서 친구에게 수락의 뜻을 전했는데! 웬걸 그 사이에 이미 보충 인원이 정해졌다고 했다. 며칠의 머뭇거림이 또 기회를 놓치게 한 것이다.
그 친구도 나도 육아에 정신이 없어 부담 없이 만나게 된 것이 몇 년이 지나고 나니 그때 함께 근무할 기회를 놓친 것이 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매일매일 돌이켜보며 사무치게 후회할만한 일들은 아니지만, 알게 모르게 나의 뇌리에 박혀있었나 보다. 다이어리에 적힌 문구를 슬쩍 보고는 이렇게도 지체 없이 생각 날 줄이야. 그때는 젊고 어려서 어떤 기회에는 유통기한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어떤 경험은 그것을 가치 있게 만들어 줄 시기가 있다는 것 말이다.
남은 순간들이라도 후회 없이 만들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지금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분명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순간들이 주위에 가득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