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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고양 Jul 29. 2024

의림지 호수에 비친 푸른 하늘 아래

제천-단양 여행기  첫째날

대한민국의 지명에는 유독 '천'으로 끝나는 지명이 많다. 인천, 춘천, 부천, 과천, 서천, 영천, 홍천, 옥천, 순천 등등.. 그 중에서도 가장 푸르른 도시. 제천을 향해 출발한다. 




꽤나 흐린 하늘, 촉촉한 습기를 머금은 공기, 그르릉 하고 낮게 울리는 고양이 울음 소리 처럼 멀리서 들려오는 작은 천둥소리. 여행의 출발 치고는 썩 좋은 날씨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기분은 화창한 봄날이었다. 최근 일에 치여 바빴던 홍귤의 오랜만의 휴가이기도 하고, 둘이서 멀리 여행을 가는 것도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날씨가 흐리다고 해서 기분까지 우중충해지지는 않는다. 특히나 여행은 결국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 소중한 사람과 함께라면 비가 쏟아지는 날씨에도 즐겁게 여행을 할 수 있으리라. 


여행의 본질은 사람마다 다를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여행이란 결국 소중한 사람과의 시간일 뿐이다. 그곳이 늘 가던 동네이던, 처음 가는 여행지이던 큰 차이가 없다. 소중한 사람과 얼마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가. 나에게는 그것이 바로 여행의 본질이다. 그 점을 잊지 않으면 여행은 아주 단순해진다. 함께 가장 즐거울 수 있는 시간을 보낸다. 함께 가장 즐거울 수 있는 곳에서, 함께 가장 즐거운 행동을 하는 것. 단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것들을 할 뿐 바뀌는 건 없다. 평소의 일상과 같이 보내면 된다. 


'여행을 가면 당연히 ~~을 해야지'

'~~에 갔으면 무조건 ~~을 해야지'


이런 강박관념은 이따금 여행을 피곤하게 만든다. 우리의 목적지는 고작 4군데. 두 곳의 독립서점과, 한 곳의 카페, 그리고 맛있는 식당 하나. 이 정도면 우리에게는 완벽한 여행이다



고속도로에 들어서면 잠시 음악을 끈다. 홍귤의 기도시간이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신 부모님의 영향일까. 여행을 떠나는 길이면 홍귤은 항상 잠시 기도를 한다.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도착하기를 바라는 기도를 짧게 한다. 분명 나도 홍귤도 종교와는 거리가 먼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이 시간만큼은 경건한 마음. 지금은 잠시 종교와 거리를 두고 있지만, 우리 둘 다 내면에는 종교적 바탕이 짙게 깔려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기도시간은 생각보다 실제적인 효과가 있다. 조수석에서 홍귤이 열심히 기도를 하는 동안, 나 또한 가만히 마음을 가라앉힌다. 여행으로 조금 들뜬 마음을 붙잡고, 내 옆에 앉은 사람이 나의 소중한 사람임을 다시 한 번 떠올리며 조심히 운전하자는 작은 다짐을 한다. 


누군가는 이런 행동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행동에 심리적인 안정감을 가지게 되기도 한다. 특히 불안감을 자주 느끼는 사람이라면, 이런 의식적인 행동만으로도 충분한 안정감을 가질 수 있다. 나 또한 극도로 이성적인 사람임에도,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데에는 홍귤의 어린시절 이야기가 영향이 컸다. 


어린 시절, 네비게이션이 없어서 조수석에 앉은 사람이 전국지도책을 펼치고 길을 알려주던 때에는 빠지는 길을 한 번 놓치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당황스러운 일이 될 수 있다. 홍귤의 어린 시절 가족끼리 장거리 여행을 갈 때에 가끔 그런 일이 생기면, 아버님께서는 항상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사랑하는 우리 가족들이 모두 함께인데, 어디로 가도 아무 문제 없지. 조금 돌아가면 되는거야'. 뒷 자석에 앉아있던 어린 홍귤에게 그 말은 정말 큰 안심이 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는 나도 운전을 하며 당황하는 기색 없이 언제나 함께 하는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말을 하려고 노력중이다. 



여행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은 사실 차 안에서 홍귤과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하는 시간이지만 매우 사적인 즐거움이니 우리만의 즐거움으로 남겨두려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도착한 제천. 안전 운전을 하느라 조금 천천히 달리다보니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제천에 도착했다. 도착할 때 쯤에는 하늘이 다 개어서, 언제 흐렸냐는 듯이 맑고 청명한 날씨가 되었다. 


제천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용천 막국수'. 이른 아침에 출발했음에도 도착까지 3시간이 걸리다보니 이미 엄청나게 허기가 져 버렸다. 하늘도 너무 맑게 개어버리는 바람에 햇볕이 따가울 정도로 내리쬐는 점심시간. 서둘러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음에도 대기 순번은 37번이다. 처음에는 즐거운 기분 그대로 웃고 장난치며 기다릴 수 있었지만.. 정오의 햇볕은 웃음기 마저도 말려버릴 정도로 가혹했다. 작은 트러블 (사실은 내가 실수했지만 나한테 불리한 이야기므로 생략) 까지 겹치는 바람에 잔뜩 지친 상태로 1시간만에 입장. 


자리를 잡고 앉으니 밖보다는 훨씬 시원하다. 내려간 온도 만큼 같이 내려간 불쾌지수. 그제야 웃는 홍귤과 함께 장난도 치고 웃고 떠들다보니 금새 음식이 나왔다. 시원한 국물을 좋아하는 나를 위한 물 막국수 하나, 매콤새콤한 맛을 좋아하는 홍귤을 위한 비빔 막국수 하나,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수육 작은 거 하나. 심플하고도 완벽한 밥상이 바로 차려졌다. 


홍귤은 태어나서 막국수를 한 번 밖에 안먹어 봤다고 한다. 그 때 먹어본 막국수는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그냥 그런 정도. 그래서 별 기대를 안 하고 왔지만.. 역시 맛집은 맛집. 정말 하나도 안남기고 다 먹어버릴 정도로 정말 맛있게 먹었다고 한다. 체중관리를 위해 최근 계속 식단관리를 하다가 정말 오랜만에 일반식을 먹는 나는 말 할 것도 없이 최고의 맛. 1시간을 기다릴 만 하다며 둘 다 감탄 연발. 


특히 홍귤의 최애 픽은 바로 보쌈이었다. 물에 빠진 고기는 안 먹는다는 홍귤이지만, 이 집의 보쌈은 그런 홍귤의 입맛도 완전히 사로잡아 버렸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보쌈이 정말 완벽하게 홍귤의 취향이었다. 부드러운 부분과 담백한 부분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었는데, 그것이 완전 홍귤의 취향저격. 특히나 아주 얇게 썰어낸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한다. 사실 수육같이 완전히 야들야들한 보쌈을 더 좋아하는 나에게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맛있는건 사실! 


둘 다 다음에는 부모님을 모시고 오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며, 배부르게 가게를 나선다. 



배가 부르니 이제는 제천만의 즐거움을 느낄 차례. 우리의 여행은 항상 독립서점과 함께한다. 전국의 모든 독립서점에 가보는 것이 꿈이라는 홍귤. 나 역시도 책을 꽤나 좋아하기 때문에, 여행지에 가면 항상 그곳의 독립서점들을 돌아보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다. 제천에서 우리가 선택한 서점은 '안녕, 책' 이라는 서점과 '소설(노벨라)' 이라는 서점. 신기할 정도로 외관 인테리어가 닮았지만, 각자 다른 곳에 위치한 서점이다. 베이지색 벽과 갈색 나무 문, 그리고 너머로 보이는 푸른하늘이 너무나도 어울리는 폭의 그림같은 서점들. 내부는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아기자기한 서점이다.


첫 번째 서점이었던 '안녕, 책'은 에세이와 아트북, 그리고 일반 서점에는 쉽게 보기 힘든 자그만 독립서적들이 많았다. 특히 홍귤 취향의 책이 많았던지라, 홍귤이 평소보다 시간을 더 오래 보냈던 곳이기도 하다. 특히 내 관심을 끌었던 부분은 한쪽 책장에 자리잡은 산책에 대한 책들. 그 외에도 책장 분류가 조금 특이하다는 생각을 했던건 책의 장르와는 상관 없이 소재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래서 더 기억에 남았던 서점. 


두 번째 서점이었던 '소설(노벨라)'는 이름 그대로 소설책이 훨씬 더 많은 서점이었다. 물론 소설 말고도, 에세이나 전문 서적들도 있었고, 특이하게도 영어로 된 원서가 꽤 있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점은 책장 한켠을 할애해서 대한독립을 비롯한 역사에 대한 소재로 채워두었다는 점이다. 첫 번째 책방에서도 그렇지만 이렇게 특정 테마를 주제로 책장을 꾸릴 수 있다는 점이 독립서점만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독립서점이 홍귤에게는 책에 대한 갈망과 감성을 채워준다면, 나에게는 글에 대한 갈망과 소재거리를 채워준다. 독립서점의 책들을 둘러보고 있다보면, 일반 서점을 갈 때 보다도 더 글에 대한 갈망이 생긴다. 나도 이런 글들을 쓰고 싶다. 나도 이런 느낌의 이야기를 풀어내 보고 싶다. 그리고 새로운 소재들도 끊임없이 떠오르곤 한다. 


하지만 그렇듯이, 문제는 갈망을 얼마나 해소할 있느냐, 그리고 소재들을 얼마나 풀어낼 있느냐. 결국 진짜로 글을 내느냐가 핵심이다. 언제나 아이디어만 넘쳐흐르고 길게 끌고가지 못하는 약점이 나에게는 있어서, 홍귤은 항상 지점을 안타까워하곤 한다. 하지만 이렇게 여행지마다 끊임없이 독립서점을 가고 있고, 가까운 독립서점들은 여러번 자주 가고 있으니 계속해서 글을 쓰고 싶어지면 점점 쓰게 되리라. 


글을 계속 쓰는 것은 나의 몫으로 넘겨두고, 두 군데의 서점으로 우리 여행의 첫째날은 마무리 된다. 아직 환한 대낮이지만, 건강이 약한 홍귤에게는 이 정도 스케쥴이면 이미 체력이 바닥이다. 또 내일을 즐겁게 보내기 위해서는 가만히 누워 쉬면서 체력을 충천할 필요가 있다. 


홍귤의 이런 모습이 나는 여행을 즐기는 가장 멋진 태도라고 생각한다. 여행지에 왔으니 지쳐 죽더라도 즐기자 라는 마음이 아니라, 완전한 행복을 즐기기 위해서 온전한 휴식을 가지겠다는 마음. 꼭 여행길이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온전한 휴식은 꼭 필요한 것이다. 기회를 놓치면 안된다는 생각에 무리하고 체력을 갈아넣는 것 보다는, 쉬는 것 또한 가장 좋은 기회를 잡는 것이라는 것을 꼭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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