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 공연 후기
돌벽에 벽화를 그리기 시작하며 인류는 '순간'을 '기록'하는 법을 터득했다. 이후 그림 기술의 발전은 흘러가는 모든 시간을 붙잡아 영원한 한 순간으로 만들기 위한 인류의 노력이었다. 사진의 등장과 함께 우리는 보다 사실적인 순간을 담아낼 수 있게 되었고, 더 이상 기억에 의존하지 않아도 과거의 순간을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영상 기술의 발달은 한순간을 넘어 긴 시간의 과거를 기록할 수 있게 되었고 훨씬 더 생생한 순간을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음악이 과거를 불러오는 방식은 그 모든 기술의 발전과는 궤를 달리한다.
그림과 사진, 영상이 과거의 어느 한순간을 떠오르게 만든다면
음악은 나를 과거의 한 순간으로 끌어들인다.
그 시절의 감정으로, 그 시절의 기분으로 빠져들어간다.
음악이 이끄는 방식은 폭력적이다.
저항할 수 없고 거부할 수 없다.
길을 걷다가도 귀를 파고드는 멜로디는 온몸과 마음을 경직시킨다.
나를 두근거리게 만들었던 음악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나를 두근거리게 만든다.
음악이 이끄는 전율의 순간 중에서도 유독 더 독특한 순간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영화음악이다. 영화 음악은 그 영화를 보던 순간의 나를 불러오기도 하지만, 더 거대한 것을 불러오는데, 그건 바로 그 영화의 세계다. 감명 깊게 본 영화의 음악은, 시간이 흐른 뒤 다시 그 음악을 듣기만 해도 그 영화 속 세계가 몰아쳐온다. 그것은 영화를 볼 때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경험이다. 그 세상이 줄 수 있는 가장 감동의 순간에 내가 그 세계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영화 속 음악들을 오케스트라로 들을 기회라니.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2시간의 공연은, 시간이 가는 줄 모를 정도로 빠져들었었다. 완전한 감정적 축제였다.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하모니로 재현되는 익숙한 멜로디는 나를 수많은 세계로 이끌었다.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 앞으로
슈퍼맨과 배트맨, 스파이더맨이 살고 있는 히어로의 세계로
자전거를 타고 날아가는 E.T의 옆으로
심바가 뛰어노는 라이온킹의 초원 위로
대왕오징어와 인어가 살고 있는 호그와트의 호수 위로
그 순간들이 내 안에서 터져 나왔다.
그것은 감동과는 또 다른 느낌.
말 그대로 감정이 터져 나오는 것이었다.
음악은 정말 특별한 힘이 있다.
나는 아직도 멀리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오면 선택받은 아이들의 세상으로 들어가곤 한다. 머릿속에는 가장 좋아하는 ost인 'butterfly'가 올리기 시작한다.
음악은 그런 힘이 있다.
세상이 아무리 발전해도, 음악만큼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는 이유다.